[내가 번역함. 오타 있으면 댓글.]
어두운 영화관 구석에서 스크린의 여배우를 볼 때면, 그 여배우가 신통찮을 수록 가슴이 두근 거립니다. 일류는 커녕, 나오는 장면도 몇 번 없거나 영화가 시작하고 얼마 안 돼서 죽어버리거나, 언제나 변변찮은 모습으로 등장하거나, 남자에게 결국에는 배신당하는, 그런 여배우들한테 계속 마음이 끌려왔던, 저는 몰래 그런 여배우들을 “글러먹은(ポンコツ—본래 고물ㆍ쓰레기 등을 의미하는 단어다. ) 히로인”이라고 부르며 나홀로 열애를
해왔습니다. 무너져 가는 영화관에서 보기 힘들다는 걸 알면서도 맨 앞자리에 앉아서, 조안나 페펫Joanna Petter(<피와 분노의 강[Blue]>), 바바라 파킨슨Barbara Parkins(<크렘린 레터[The Kremlin Letter]>) , 브리트 에클란드Britt Ekland(<USA 블루스[Stiletto]>) 등등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미녀들을 보면서 은밀하게 가슴을 두근 거렸던 시절이었습니다.
폴 뉴먼이 주연을 한 <허슬러[The Hustler, 로버트 로센, 1962]>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요즘도 변두리의 당구장 벽에는 폴 뉴먼이 큣대를 쥐고 자세를 취하는 사진이 걸려 있을 정도니, 이미 10년도 더 전에 개봉한 이 영화에 사로잡힌 사람이 아주 많았던 것입니다. 이 영화에 출연한 파이퍼 로리라는 여배우는 잊혀지지 않습니다. 파이퍼 로리는 당시 고교생이었던 제게 처음으로 “글러먹은 히로인“의 훌륭함을 알게해줬습니다.
그녀가 등장하는 장면은 별로 많지 않았지만, 뭐랄까 온몸에 슬픔을 품고 있고 게다가 그것을 결코 함부로 드러내지 않는, 그런 갸륵한 느낌이 고스란히 이쪽까지 전해졌습니다. 그녀의 배역은—작가를 꿈꿨던 것처럼 보이지만—지금은 아무런 꿈도 없고 “옛날에 사겼던 할아버지”가 보내주는 돈으로 지내며 늘 술만 마시는 여자입니다. ’미네소타 펫Minnesota Fat’(재키 글린슨)과의 내기 당구에서 진 폴 뉴먼은 빈털털이가 되어 변두리의 바에서 술을 마시고 있습니다. 이미 늦은 밤입니다. 카운터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여자가 있습니다. 나이는 서른을 넘긴 것으로 보입니다. 예쁘장하지만 가녀린 어깨는 어딘가 초라해보입니다. 그런 류의 여자라고 생각한 폴 뉴먼은 술에 취해서 “아가씨, 오늘 잘까요? 같은 식으러 추근덕거리는데요. 그녀는 그냥 듣고 흘려버립니다. 딱히 화내는 것도 아니고, 취한 남자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힐끗 폴 뉴먼 쪽을 볼 뿐입니다. 그후 두 사람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여자 쪽에서 ”이제 들어갈께요”라고 말하며 일어납니다. 좋은 것은 그 다음입니다.
카운터 쪽 바에서 일어난 그녀는 기우뚱하며 순간 비틀거립니다. 순간 폴 뉴먼은 “뭐야 취했나”라는 표정을 짓습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비틀 거리며 계속 걷습니다. 그 모습을 보는 폴 뉴먼의 얼굴에서 점점 웃음기가 가십니다. 그녀는 다리에 장애가 있었던 겁니다. 그 순간부터 그의 마음 속에 그녀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바로 파이퍼 로리였습니다. 너덜너덜해진 인생의 가장자리에 살고 있는 여자. 그러면서도, 그런 상황을 푸념하거나 원망하지도 않고, 그저 조용히 받아들이는 여자. 그리고 자신과 마찬가지로 패배한 남성의 황폐한 마음을,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간호’해주기까지 합니다.
물론 실제 <허슬러>의 장면은 앞에서 말한 것과 다를 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10년도 더 전에 한 번 밖에 보지 않은 영화니까요. 큰 줄거리는 틀리지 않았을 테지만, 디테일한 부분의 ‘사실’은 조금 다를 수도 있습니다. 두 사람은 그 장면에서 헤어지지 않고 어딘가의 호텔에서 잤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은 뭐래도 좋습니다. 방금 서술한 장면이 ‘사실’과는 다를지라도, 제 마음 속에서는 그 장면이 하나의 ‘진실’로 오랜 기간 있어왔습니다. 거칠게 말하자면, 저는 ‘사실보다 진실’이라는 주의에서 세세한 장면의 정확함 같은 건 신경쓰지 않습니다. 흔히 영화에 대해 말하는 사람 중에는, 어떤 장면을 세세한 부분까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쪽을 인정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저는 ‘사실’같은 건 뭐래도 좋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잠깐 파이퍼 로리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파이퍼 로리는 그때까지 유니버설의 공주 스타—우유로 목욕하고 점심에 꽃잎을 먹는 여배우라고 선전했다—로 토니 커티스를 상대로 바그다드의 공주 같은 역할만 해왔습니다. 그러다 잠깐 활동을 멈추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돌연 <허슬러>에 재등장했으니, 우리로서는 감격이 한층 더 컸습니다. 1932년생이니 그때 파이퍼 로리의 나이는 29살이었습니다. 아직 젊은데도 불구하고, 술독에 빠져, 더 이상 인생에 좋은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류의 “글러먹은 히로인”이라 저는 찡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당구에 미친 폴 뉴먼과 함께 살게 되지만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던 그녀는 영화의 말미 욕실에서 면도칼로 자살을 하고 맙니다…….
이 영화에서 그녀가 잠깐 행복해 보였던 장면이 기억에 납니다. 폴 뉴먼과 작은 아파트에 함께 지내게 돼서,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고 재료들을 종이 장바구니에 담아 방으로 돌아오는 장면입니다. 좋은 점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녀의 짧은 인생에서, 그 장면은 너무나 일상적인 장면이라서 오히려 인상 깊었습니다. 아마도 그녀가 몇 년만에 좋아하는 남자를 위해 식사를 만들려고 했던 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후카사쿠 킨지가 <살인마 료타(人斬り与太)>의 마지막 장면에서 히로인인 나기사 마유미가 애인인 스가와라 분타가 살해당하는 것을 보고 장바구니를 든 채 “당신!”하며 달려가는 장면을 봤을 때, 저는, 그 장바구니를 든 모습이 너무도 닮아서 나기사 마유미의 간절한 표정에서 파이퍼 로리를 겹쳐 볼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집단취업으로 도쿄에 올라온 나기사 마유미의 장바구니에는 세키한(おせきはん--일본의 팥밥) 오니기리가 들어 있었다면, 파이퍼 로리 쪽에서는 그때 남자를 위해 어떤 음식을 만들었을지요.
파이퍼 로리 다음으로 고교시절 저를 울린 “글러먹은 히로인”은 역시 폴 뉴먼이 주연을 한 <허드 Hud>(마틴 리드, 1963)에 출연하는 패트리샤 닐입니다. 옛날에는 게리 쿠퍼의 상대역을 맡았던 미녀 배우였지만 (<마천루 Fountainhead>(1949)) 이 영화를 찍을 때는 조금 잊혀지고 있었고 나이가 들었을 때였는데(37세), 오히려 그게 더 좋았던 것도 같습니다. (참고로 패트리샤 닐은 작가 로알드 달의 아내입니다.) 영화 자체도 새로운 시대를 앞두고 과거의 좋았던 서부-텍사스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흑백의 애처로운 만가이기에, 패트리샤 닐도 그에 맞춰 애처로운 여인으로 등장합니다.
과거에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모릅니다. 떠돌이 삶을 사는 그녀는, 지금은 여자가 없는 폴 뉴먼의 목장에서 식사를 준비하거나 빨래를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폴 뉴먼에 애정을 갖고 있긴 하지만, 어느날 밤, 술에 취한 채 억지로 집에 들어온 폴 뉴먼이 그녀를 덮치고 맙니다. 그런 짓을 하지 않더라도 그 둘은 서로 마음이 통하고 있었는데 말이죠. 그렇게 그녀는, 술에 취해 자신의 약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자신을 덮친 폴 뉴먼을 용서히지 않고 목장을 떠납니다. 짐이라고는 가방 하나 뿐. 시골 마을의 버스 정류장에서 어디로 갈지도 정하지 않은 채 그저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이미 인생의 절정을 한참 지났지만 그럼에도 살아가야만 하는, 지겨운, 괴로움.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파이퍼 로리와 마찬가지로—그녀가 그런 삶을 불평을 늘어놓는 것은 아닙니다. 원망을 늘어놓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담담하고 조용하게, 홀로 이따위의 세상을 마주하는 비장함이 있습니다. 우는 소리만 늘어 놓는 그저 그런 주인공보다 훨씬 나은 모습이었습니다.
할리우드 영화라고 하면 사람들은 바로 해피엔딩의 행복한 이야기를 생각하지만, 자세히 보면 결코 그렇지 않고 지금까지 말해온 ‘글러먹은 히로인’도 상당히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아마도 ‘글러먹은 히로인’들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한국전쟁 즈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때부터 강하고 정당한 존 웨인 형에서 패배자(負け犬) 형으로 주인공이 변하기 시작했는데, 그 이행의 배경에는 아마도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미국 사회가 역사적으로 처음으로 ‘패배’를 경험했다는 사정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전쟁 전에도 할리우드의 주인공이 모두 강하고 정당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험프리 보가트, 제임스 캐그니, 에드워드 G. 로빈슨 같은 액션영화의 주인공은 기본적으로 패배자 형인데, 저는 1930년대에 그들이 출연한 것이 정확히 문학에서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과 겹친다고 생각합니다...)
‘글러먹은 히로인’의 선구자로는, 안보투쟁 시기에 개봉한 <달려오는 사람들 Some came running>(빈센트 미넬리)의 셜리 매클레인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지금은 다소 진보적인 정치 활동으로 매력을 잃고 있는 그녀지만, 이 영화에서 소란스러운 동시에 슬픈 ‘글러먹은 히로인’으로서 모습은 훌륭했습니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작은 마을. 전쟁전쟁으로 의욕을 잃은 작가 프랭크 시나트라가 버스를 타고 고향에 돌아옵니다. 그의 친구인 딘 마틴은 알코올 중독자입니다. 시나트라도 황폐해진 삶에 술독에 빠졌지만, 학교에서 선생을 하고 있는 지식인이자 미녀인 마사 하이어를 만나 다시 한 번 인생을 바로잡을 결심을 합니다. 그때 등장하는 것이 술집 접대부인 셜리 매클레인입니다. 그녀는 요란한 화장을 하고 소란스럽고 천박하게 시나트라의 뒤를 쫓아다닙니다. 머리도 둔하고 어느 것 하나 (사랑의 경쟁자 역인-인용자 주) 마사 하이어와는 비슷한 구석이 없습니다. 성가셔 하고 방해꾼 취급을 받아도 셜리 매클레인은 열심히 시나트라를 쫓아다닙니다. 좋은 장면은 그녀가 학교에 ‘라이벌’인 마사 하이어를 방문하는 장면입니다. 그녀는 눈물로 화장이 엉망이 된 채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요, 바보라서 교양도 없는데요. 그래도 열심히 공부할 거예요. 그 사람이 미워하지 않도록 글자도 배울 거예. 그러니까 제게 공부를 가르쳐주세요!”
결국 시나트라는 매클레인의 ‘순정’에 굴복하여 결혼을 하지만, 역시 ‘글러먹은 히로인’에게 행복이 찾아올리는 없죠. 마지막, 밤의 공원에서 회전목마가 화려하게 움직이는 중에 질투에 돌아버린 그녀의 전 정부(情夫)가 시나트라를 향해 쏜 총을 셜리 매클레인이 대신 맞고 쓰러집니다.
파이퍼 로리, 패트리샤 닐, 셜리 매클라인을 봐오면서 저는 ‘할리우드 영화는 항상 밝고 해피엔딩이다’ 같은 신화를 선뜻 믿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할리우드 영화는 반복해서 베드엔딩을 만들어 오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달려오는 사람들>은 영화 그 자체로도 결코 행복한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전쟁후유증’을 겪는 주인공(시나트라)가 사회에 복귀하지 못하고 망연히 서있는 모습을 묘사하는, 그 의기소침하고 암울한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제가 미국 영화를 열심히 보기 시작한 50년대 후반에는 <달려오는 사람들> 이외에도 <군중 속의 얼굴 A Face in the Crowd>(앤디 그리피스, 패트리샤 닐 주연, 엘리아 카잔 감독, 1956), <성공의 달콤한 향기 Sweet smell of success>(버트 랭카스터, 토니 커티스 주연, 알렉산더 맥켄드릭 감독, 1957), <케인 호의 반란 The Caine Mutiny>(호세 페러, 험프리 보가트 주연, 에드워드 드미트릭 감독, 1954), <황금의 팔 The Man with the Golden Arm>(프랭크 시나트라, 킴 노박 주연, 오토 프레밍거 감독, 1955), <상처뿐인 영광>(폴 뉴먼, 살 미네오, 로버트 와이즈 감독, 1956) 같은 어둡고 기운이 나지 않는 영화들이 많았고, 그 즈음의 미국 영화에 매료되어버린 저는 아직도 미국 영화라고 하면, 우울하고 무뚝뚝한 패잔병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어서, 그와 다른, 옛날의 존 포드라던가 고색한 뮤지컬에는 지금까지도 익숙해지지 못하는 ‘후유증’이 있습니다..... 유럽 영화에서도 50년대 후반부터 60년대에 걸쳐 일군의 폴란드 영화(<그림자 Cień>, <지하 수도 Kanał>, <재와 다이아몬드 Popiół i diament>, <야행열차 Pociag>) 또 프랑스에서는 누벨바그보다도 당시의 앙리 조르주 클루조의 <스파이 Les espions> 같은 어두운 영화들에 매료되었던 것도 아마 ‘후유증’의 일부일 것입니다.
‘글러먹은 히로인’은 뉴 아메리칸 시네마 이후 지금은 오히려 미국 영화의 주류를 점하고 있으니 파이퍼 로리, 패트리샤 닐, 셜리 매클레인을 잇는 ‘글러먹은 히로인’의 계보는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술과 장미의 나날 Days of Wine and Roses>의 알코올 중독자 리 레믹, <사막의 방랑자 The Ballad of Cable Hogue>의 명랑한 주부 스텔라 스티븐스, <상처 투성이의 만가 The Grissom Gang>의 변두리의 가수 코나 스티븐스까지. 특히 두 명의 미스 스티븐스는 잊혀지지 않습니다.
<아메리칸 그래피티 American graffiti>에서 근시가 심한 샌님인 찰리 마틴 스미스가 도로를 걷고 있는 캔디 클럭을 꼬시려고 말을 걸지만 전혀 성공하지 못하는 장면이 있는데요. 마지막으로 “너 코니 스미스를 닮았어”라고 말하자, 지금까지 그를 무시하던 캔디 클락이 “정말?”이라며 반색을 하는 장면이 있을 만큼, 62년 즈음(역자 주: <아메리칸 그래피티>의 시대적 배경이다)에 코니 스티븐슨은 청춘 영화의 날라리 공주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그렇지만 제게는 그때의 모습보다 더는 젊지 않은 30대 여성으로 나온 <상처 투성이의 만가>(킴 다비, 스콧 윌슨 주연, 로버트 알드리치 감독, 1971)에 출연한 코니 스티븐슨의 모습이 더 인상적으로 남아있습니다. 실제 코니니 스티븐슨은 이 즈음에 청춘영화에 출연하기에는 한물 간 32살이었습니다. 1930년대 남부의 추레한 클럽의 인기 없는 가수. 사립탐정 로버트 랜싱이 그녀의 애인이자 갱인 토니 무선트를 조사하러 왔습니다. 로버트 랜싱은 그녀에게 “나는 브로드웨이에서 온 에이전트다”라며 신분을 밝힙니다. 성공하지 못한 가수인 코니 스티븐슨의 입장에서는 응대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죠. “혹시나... 나에게도 기회가”라고 생각하는 모습은, ‘글러먹은 히로인’ 슬픔 그 자체입니다. 그런 그녀는 로버트 랜싱이 실은 탐정임을 알게 되자, 결연하게 “나는 개가 아니야! 그 사람에 대해서는 죽어도 말하지 않을 거야! 돌아가!”라고 돌려 보내버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두둔한 토니 무선트를 위해 결국 죽어버리고 맙니다. 코니 스티븐슨은 최근 TV 드라마 <섹스 심블>에서 마릴린 먼로 역할을 맡은 걸로 유명한곤 한데, <상처 투성이의 만가>에서 그녀가 보여준 모습만으로도 저한테는 충분합니다.
그 외에는 최근 <조직 The Outfit>의 카렌 블랙, <배지 373 Badge 373>의 베르나 블룸, <가르시아의 머리 Bring Me the Head of Alfredo Garcia>에서 처음 알게 된 멕시코의 여배우 이셀라 베가... 생각하고 보니 모두 영화의 도중에 죽어버리는 여성들이네요. 또 <딜린저 Dillinger>의 미셸 필립스와 <보위와 키치 Thieves Like Us>의 셜리 듀발도 좋습니다. 오래되고 더러운 의상이나 용품을 사용하고, 세련된 저택이나 향기로운 향수와는 인연이 없습니다. 또 더욱이 강하고 정당한 주인공 같은 것도 그녀들 주변에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현실의 구석에서 살아가는 그녀들은, 그렇지만 결코, 풀이 죽거나 비굴해지는 법이 없습니다.
가령 셜리 듀발은 <보위와 키치> 이전에 <겜블러 McCabe & Mrs. Miller>(워렌 비티, 줄리 크리스티 주연, 로버트 알트만 감독, 1971)에서 산 속 광산 마을의 매춘부 역할을 했습니다. 남편과 함께 그 마을에 흘러 들어와 겨우 집을 마련하고 번듯한 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 남편이 떠돌이에게 살해를 당하고 만 역할이죠. 의지할 데 없는 산속 깊은 곳에서, 여자가 혼자 살아가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은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녀는 제리 크리스티가 경영하는 애매한 집의 창녀가 되고만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조금도 불평하거나 한탄하지 않으며, 손님을 배웅하며 “또 오세요”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녀들 글러먹은 히로인들 정말로, 남자 주인공들보다 훨씬 생기 있고 박력이 넘치지 않습니까. 사실 저는, 자기네들의 행복을 맹렬히 좇으며, 아내ㆍ자식ㆍ가족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책임감 있는 남자 주인공 녀석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도망치기 위해 싸우는 쪽이 더 좋습니다. 싸움 중에는 이기기 위한 싸움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와는 완전히 다른, 이 세상에서 자기 만의 「장소」를 얻기 위한 싸움도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인간 무리를 싫어하거나 분쟁을 싫어하는 녀석들도,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아도 되는 「장소」를 확보하기 위해서 싸우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모순으로 가득한 싸움에 승리 따위가 있을 리 없고, ‘영원한 패배자(負け犬)’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결코 행복할 수 없는 남자들의 곁에 있어 줄 사람들은 바로 ‘글러먹은 히로인’ 밖에 없습니다.
그녀들의 영화는, 미유키좌(みゆき座)나 유라쿠좌(有樂座)같이 깔끔한 영화관보다 신주쿠 로얄 극장(新宿ローヤル劇場) 같은 데서 보면 더 좋습니다. 아주 녹초가 되어 포켓 위스키 따위를 마시며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으는 나를, ‘글러먹은 히로인’들이 격려해주니까요. 결코 설교를 늘어놓는다거나 훈계를 하지 않는 영화 안에서, 단지 그녀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 저 같은 사람은 기운을 회복하게 되는 겁니다.
‘글러먹은 히로인’이라 해도, 그 중에서도 굉장히 활력이 넘치는 ‘글러먹은 누님’들도 있는데요. 이를테면 셜리 노스 같은 누님은, 인생의 구석에 있든 밑바닥에 있든 간에 “내가 있는 곳이 세계의 중심이야!”라고 거들먹 거리는 재미가 있습니다.
셜리 노스는 일본에서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형사 마디간 Madigan>에서는 주제곡을 부르고, <추적자 Lawman>에서는 버트 랭카스터의 옛 애인으로 등장했다.), <돌파구! Charley Varrick>, <조직 The Outfit> 같은 최근의 걸작 액션에서 아주 조금만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그 장면을 완전히 휩쓰는 배역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찰스 브론슨 주연 <브레이크 아웃 Breakout>에서 그다지 예쁘지도 않으면서 지나치게 미인인 척하며 영화의 분위기를 망치는 질 아일랜드를 완전히 압도하며 등장하곤 했습니다. 아까 ‘누님’이라고 운운하긴 했지만, 예전에는 『라이프』의 표지를 장식했던 전직 미녀배우였습니다.(헌책방에서 발견한 1955년 4월 18일자 『라이프』에는 그녀의 당당한 모습이 표지를 장식하고 있고, 제목에는 “마릴린 먼로를 이어 받다!”라고 적혀 있다....) 한동안 활동이 미미했지만, 최근 들어 ‘누님’으로 멋지게 부활한 것이죠. 등장하는 장면이 별로 없지만, 나올 때마다 당당한 모습이 정말 멋집니다.
이를테면 <돌파구!>. 해외로 도망 가려는 월터 매튜가 시골마을에서 위조 여권용 사진을 찍어줄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잡화점의 노인에게 물어본 끝에 뒷골목에서 영업 중인 가게를 간신히 찾아내는데, 그 가게의 사진사가 바로 셜리 노스입니다. 셜리 노스는 당당한 태도로 월터 메튜를 압도하며, 흥정에서도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습니다. 결국 지친 월터 메튜가 “좋아, 당신이 말한 대로 줄게”라고 해 버리죠. 그리고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사탕을 월터 메튜가 하나 집어 들자, 그녀는 바로 이렇게 말하죠. “그 사탕 하나에 500달러야!”
또 <조직>에서는요. 남편이 집을 비운 사이에, 셜리 노스는 젊고 활기찬 조 돈 베이커를 유혹합니다. 제법 나이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꽉 맞는 청바지에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채 말하죠. “애기야, 놀아보지 않을래?” 그렇지만 조 돈 베이커는 정중하게 유혹을 거절합니다. 화가난 셜리 노스 누나는 남편이 돌아오자, “어이, 이 놈이 나를 유혹하려고 했어. 처리해버려!”라고 말합니다. 이를 진짜로 받아들인 남편은 결국 그 남자와 싸움을 시작하죠....
<브레이크 아웃>에서는 낮은 월급을 받는 시골 경찰의 아내이자 돈을 벌기 위해 찰스 브론슨의 탈옥 계획에 동참하는 역입니다. 촌각을 다투는 긴급상황에서, “아, 나 자동차에 중요한 인형을 두고 와버렸네” 같은 상관 없는 말을 하며 웃음을 주는 역할이죠. 그녀는 ‘글러먹은 히로인’ 중에서 완전히 당당하게 행동하는 편이고, 저는 그게 좋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막의 떠돌이 The Ballad of Cable Hogue>의 스텔라 스티븐스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75년 여름, 새로 단장한 신주쿠 로열 극장은, 재개장 직후 <사막의 떠돌이>를 재상영했는데요! 마을의 명랑한 창녀인 스텔라 스티븐스와 수염을 기른 지저분한 서부 남자인 제이슨 로바즈가 등장하는 장면입니다. 어느 밤, 그녀는 말을 타고 남자의 낡은 오두막으로 옵니다. “뭔 일이야, 이렇게 늦은 밤에?” “마을의 선량한 여자들이 ‘따돌리고 공동으로 절교(村八分)’했어. 이제 마을로 돌아갈 수는 없어.” “마을에 선량한 사람이 있을까? 너는 최고의 숙녀인 걸.” 주근깨가 가득한 스텔라 스티븐슨은, 남자의 다정한 말에 눈물을 글썽이며 조용히 중얼거립니다.. “나를 숙녀로 대해준 건 당신이 처음이야.” 이때 그녀의 눈물로 인해, 이 영화는 저에게 페킨파의 영화라기보다는 스텔라 스티븐슨의 영화로서 잊혀지지 않습니다. 마지막 장면, 정말로 숙녀가 되어 돌아온 그녀를 수염 투성이의 제이슨 로바즈가 놀라며 맞이합니다. 그때, 그는 그녀를 맞이하며 정중히 모자를 벗습니다. 아마도 여배우에게도 히비야 (日比谷)의 영화관에만 어울리는 쪽이 있고, 신주쿠 로얄 같은 곳에서만 훌륭히 빛나는 쪽이 있을 것입니다. 제게 어느 쪽이 좋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로얄 쪽입니다. 밤의 마지막 회차, 쓸쓸히 텅 빈 영화관의 구석에서 그녀들의 웃는 얼굴을 보고 있는 사이, 하루 동안의 삭막했던 기분은 사라지고 원기를 되찾고, 다 마신 포켓 위스키 병을 발로 뻥 차버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