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나 [가와모토 사부로 시리즈 재미있나요?]
보고싶지 않지만 ‘직업’상 보지 않으면 안 되는 영화들이 매년 몇 편 있습니다. 이 영화들을 보러갈 때만큼 고된 일도 없습니다. <청춘의 문青春の門>이나 <금환식金環触>같은 초대작들이 그런 영화들인데요, <금환식> 쪽은 아직도 보러갈 기력이 없급니다. <청춘의 문>도 보기가 귀찮아서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며칠 전 나미키자(並木座)에서 보았습니다. 상영시간이 3시간이 넘는 데다 도중에 휴식까지 있는 대장정이라 진이 다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쇼와의 역사를 연표를 따라 읽는 영화인데, 역사의 틈에서 눈이 확 뜨이는 에네르기가 엿보이는 장면이 없습니다. 15년 전쟁(역자 주—중일 전쟁), 전후의 혼란, 한국 전쟁 등의 상투적인 근대 일본의 에피소드가 다뤄지고, 그 시기의 주인공들의 삶이 아기, 소년, 청년의 시대로 깔끔히 구분되어 전해집니다. 국가의 역사와 개인의 역사가 그저 나란히 배치되어 있어 “아, 일본 사람들은 나랏일에 휘말려 고생이 많았겠구나” 정도의 감상밖에 들지 않는 영화였습니다.
같은 전후사를 다룬 작품이라면 <인의 없는 전쟁仁義なき戰い> 시리즈처럼 국가의 역사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오직 자신의 개인사에만 몰두해 살아가는 놈들의 무시무시함에 철저했덤 점이 좋았습니다. 반면 초대작인 <청춘의 문>은 국가의 역사도 살피고, 한편으로는 국가에 휘둘리는 개인사도 살피며 두 가지를 균형있게 살피려는 태도 때문에 박력이 없었습니다. 어떤 인간도 역사와 자신을 동시에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런 것은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부리는 잔꾀일 뿐입니다. 삶의 한 가운데 있는 인간이 자신과 역사를 동시에 바라볼 수 있는 안정된 시점을 가질 리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춘의 문>은 지나치게 차분하고 건조하게 역사와 개인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런 지나친 여유는 역으로 말하면, 현재를 진심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음 인간들의 열정 없음에 불과합니다. ”옛날에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그런 일이 있었고, 저곳에서는 누군가 죽었습니다…“ 옛날 이야기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데 살고 있습니까. 당신들은. 한 번이라도 지금 자신들의 초라한 모습을 돌아본다면, 역사를 그렇게 차분하고 안정된 시점에서 바라보는 일 따웨는 할 수 없을 것 입니다. 너무 많이 천황의 사진을 끄집어내어 시대의 얼굴을 표현하려고 하지만, 마치 신문에서 보는 쇼와사처럼 그저 형식적인 쇼와사 복습에 지나지 않습니다.
“제길, 존나 화나네.“ ”닥쳐, 무슨 지랄하는 소리야” 같은 말들. 신음소리, 고함소리,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픈 소리. 그렇게 온갖 소리와 감정이 뒤섞인 상태에서 역사를 바라본다면, 굳이 <청춘의 문>처럼 쇼와사를 복습하지 않더라도 단 하나의 주먹, 한 방울의 피 만으로도 쇼와사의 모든 것을 담아낼 수 있습니다. 이츠키 히로유키五木寛之 원작, 몇 년에 한 편의 작품만 만드는 우라야마 키리오浦山桐郎가 감독한 <청춘의 문>은, 대하소설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이 영화의 시선은 강물 속에서 휩쓸리고 헤엄치고 있는 사람의 눈이 아니라, 어딘가 높은 곳에서 강 속의 사람들을 내려다 보는 사람의 눈입니다.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고달픔, 애달픔, 슬픔 과는 전혀 무관한 눈입니다. 이런 영화를 보는 날에는, 하루종일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청춘의 문>과는 반대로 무슨 이유에서든지 보지 못하는 영화도 많습니다. 그럴 때는 이번관二番館으로 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양화洋画에 비해 방화邦画는, 완전히 ‘차별’받고 있습니다. 양화는 로드쇼나 이번관에서 놓치더라도, 반드시 ‘명화좌名画座’ 계열의 극장에서 상영되지만, 방화를 상영하는 명화좌는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신바시분카新橋文化, 니시오기명화좌西荻名画座 신주쿠쇼와칸新宿昭和館에서 놓치면 다음 기회를 기다리는 게 매우 어려워집니다. 나의 타치바나 마스미橘ますみ가 출연한 <악당 블루스悪党ブルース>는 개봉 당시(69년) 놓쳐버렸고, 저와 같이 그녀의 팬인 『키네준(키네마준보)』의 사카이 요시오酒井良雄 씨로부터 훌륭한 영화라는 소문만 들었을 뿐입니다. 그럴 때마다 보지 못한 저는 치통을 달고 단무지를 씹는 듯한, 아니 거의 깍두기를 씹는 것처럼 아려오는 것입니다. 개봉 후 5년 이상이 지나 아사쿠사浅草의 영화관에서 세 편 연속 상영 중 한 편으로 기적적으로 상영되었을 때, 『유타카준보ゆたか旬報』의 편집장인 아키모토 테츠지秋本鉄次씨와 함께 볼 수 있었습니다. 실로 6년만의 재회였고, 아사쿠사의 영화관 구석에 앉아 그녀가 나올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물론 그녀는 스타도 뭐도 아니었기에 어느새 조용히 은퇴했고, 소문에 따르면 지금은 평범한 직장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며칠 전, <악당 블루스>의 조감독을 맡았던 야마구치 카즈히코山口和彦 감독을 만날 기회가 있어 그녀의 소식을 물었더니, 야마구치 감독도 잘 모르지만 교토에 돌아갔다고 합니다. “그래도 정말 명랑하고 좋은 아이였어요”라고 야마구치 감독이 말하자, 저는 비로소 안도하며 혼자서 ‘그렇지, 그렇지’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타치바나 마스미뿐만 아니라, 변두리에나 등장하는 조연에 이르기까지 충실한 도에이東映의 남자 배우진에 비해, 확실히 도에이의 여성 배우진은 모두 소규모이고 눈에 띄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언제나 남자의 그늘에 숨듯이 살아가는 그녀들의 은밀한 아름다움이 없었다면, 도에이의 영화도 꽤 지루한 것이 되었을 것입니다. 물론 그녀들의 아름다움이라고 해도 그것은 ‘금이야 옥이야’하며 소중히 자란 여성의 아름다움은 아닙니다. 그녀들은 술집의 여자거나, 막장 유흥가의 아가씨들로,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남자들에게 얻어맞고 희롱당하면서도 그녀들은 늠름하고 당당하게 살아가며, 짧지만 아름답게 타오르고 있습니다. 타치바나 마스미, 카가와 유키에賀川雪絵, 히시미 유리코ひし美ゆり子, 미츠카와 타마요光川環世, 나카지마 유타카中島ゆたか、와타나베 야요이渡辺やよい、코이즈미 요코小泉洋子。혹은 야마우치 에이코山内えみ子, 모리사키 유키森崎由紀、코바야시 치에小林千枝. 이러한 은밀한 히로인들의 분투 없이는 도에이 영화를 이야기할 수가 없습니다. 야마구치 모모에山口百恵나 아키요시 구미코秋吉久美子 같은 사람들(역자 주: 1970년대 일본을 대표하는 스타)이야 아무래도 상관 없지만, 도에이의 히로인들은 앞날은 무언가 신경이 쓰입니다.
도에이의 여배우들은 정말 좋습니다. 모두가 눈에 띄지도 않고, 눈에 띄려고 하지도 않지만, 그렇지만 글러먹은(ポンコツ) 역할을 제대로 소화합니다. 현실의 가장자리에 의연하게 살아가는 글러먹음(ポンコツ)의 우스움과 슬픔은 도에이의 여배우들이 아니라면 절대로 표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고바야시 치에小林千枝,가 있습니다. 그녀도 이미 출연작은 엄청 많지만 언제나 단역뿐이라 전혀 눈에 띄지 않는 배우인데요. 야마우치 에미코山内えみ子 주연의 <전기해파리ネオンくらげ>에서의 고바야시 치에는 잊혀지지 않습니다. 전혀 팔리지 않는 캐치 걸로 무진장 노력하고 있지만 매일 밤, 매일 밤, 손님을 못 잡아 헛수고만 하고 있습니다. 젊은 야마우치 에미코는 돈벌이를 하고 있는데, 고바야시 치에는 선배인데도 써먹을 게 없어서 일거리를 놓치고 있습니다. 결국에는 고용주인 바의 마담 (카와무라 마코川村真構)로부터 “안 팔리는 여자한테 줄 술 따위는 없어”라며 차갑게 무시당하고 맙니다.
고바야시 치에는 그래도 최근에 TV 드라마 <플레이 걸プレイガール>에 고정 출연하게 되었으니, 이제는 차갑게 무시 당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한편, 그녀를 쌀쌀맞게 쫓아냈던 바의 마담 역할을 한 카와무라 마코도 좋았습니다. 아마도 다카라즈카宝塚 출신으로 닛카츠로망포르노日活ロマンポルノ 시대에는 후지타 토시야藤田敏八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도에이의 영화에 나오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왜인지 항상 바의 마담전문으로 나오게 되었고, 그 점이 참 좋았습니다. <폭력가暴力街>(74년, 고샤 히데오五社英雄 감독)에서는 안도 노보루安藤昇의 정부 역할로 기모노 차림이 참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그녀가 가장 좋았던 것은 우메미야 타츠오梅宮辰夫 주연의 <색마랑色魔狼>(73년, 후루하타 야스오)에서였습니다.
우메미야는 운이 좋은 사기꾼으로 일확천금을 꿈꾸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속이고 있습니다. 카와무라 마코는 허름한 바의 마담으로, 언제나 그런 우메미야를 멀리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우메미야는 평소 돈 버는 일에 바빠서 그녀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실패를 하고나서야 처음으로 그녀에게 도움을 구하지만, 그녀는 우메미야를 받아들입니다.
“당신은, 무슨 일이 있을 때만 나에게 오는군요.” 우메미야를 안고, 젖(유방이 아니라 모유 그 자체)를 빨게 해주는 장면은 정말 놀랍게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를 대하는 우메이야의 태도가 지독하여서 마지막에는 우메미야가 고생을 해서 얻은 큰 돈을 모두 빼앗고는 도망가버립니다! 그 전까지가 너무 불쌍했기 때문에, 잘했다, 잘 해냈다고 기쁘게 생각하게 됩니다. 카와무라 마코도 요즘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데요..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합니다.
그 다음으로 좋은 사람은 카가와 유키에賀川雪絵입니다. (도에이의 여배우에 대해 이야기하면 끝도 없이 계속 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처음부터 노출 연기로 이름을 알린 사람입니다. 이시이 테루오石井輝男의 <온천 안마 게이샤>(68년)가 데뷔작이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후에도 노출 연기 전문이었다. 당시는 ‘포르노 여배우’ 같은 김이 새는 호칭은 없었고, 그녀들은 대부분 ‘파렴치 여배우’로 불렸습니다. 그렇게 불리기 시작하면 저는 이미 그녀들을 열렬히 사랑하기 시작했기에, 저는 카가와 유키에와 타치바나 마스미의 레즈비언 콤비 영화들을 자주 보러가곤 했습니다. 그러고는 한동안 카가와 유키에는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는데요. 몇 년만에 그녀를 다시 볼 수 있었던 작품이 1974년의 <당나라 경찰唐獅子警察>(코바야시 아키라小林旭, 와타세 츠네히코渡瀬恒彦, 나카시마 사다오中島貞夫 감독)였는데 거기서도 참 좋았습니다. 그녀의 역은 마이즈루舞鶴에서 도쿄로 집단 취업을 해와서, 지금은 바에서 일을 하는 여자아이였습니다. (그나저나 도에이 영화 속의 여성들은 왜 항상 바나 캬바레에서 일할까요? 도호東宝에서는 항상 아가씨나 여대생이 주인공인데요.) 그녀는 우연히 야쿠자(와타세 츠네히코)를 우연히 도와주게 됩니다. 자세히 보니, 이 남자는 함께 도쿄에 집단 취업을 왔던 동료였습니다. “있지, 나야. 기억 안 나? 다들 사카시타坂下[일본의 지명-옮긴이 주]의 못난이라고 불렀잖아. 사카시타의 못난이라구!” 한때는 ‘파렴치 여배우’였다 해도 주연까지 맡았던 여배우가 태연히 스스로를 ‘못난이’라고 부르다니, 이것을 카가와 유키에의 “성숙”이라고 볼 수는 없을까요? 이 영화에서 그녀는 결국 한 번도 옷을 벗지 않습니다. “모두 나를 버려버리니까. 그래서 이제 버려지는 것도 익숙해져 버렸어.”라고 강한 척 말하면서도, 결국 사랑하게 되어버린 와타세가 남자의 자존심을 걸고 적진에 쳐들어간 뒤, 혼자 덩그러니 방에 남겨져서는 “왜 남자들은 모두 내 곁에서 떠나버리는 거야”라고 무너져 울고 맙니다. 이런 소박한 히로인들을 사랑하게 되면 <청춘의 문>의 당차고 올바른 요시나가 사유리吉永小百合라던가, 온실에서 귀하게 자란 것처럼 보이는 타카하시 케이코関根恵子 따위는 더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됩니다. 카가와 유키에도 그후에 좋은 배역을 얻지 못했지만, <당나라 경찰>은 그녀의 인상깊은 연기로 인해 잊을 수 없는 영화가 되었습니다. 도에이는 그외에도, 미츠카와 타마요光川環世、카노 유우코叶優子、모리사키 유키森崎由紀、등 제가 좋아하는 ‘글러먹은 히로인ポンコツ・ヒロイン’이 잔뜩 끝도 없이 있습니다. 그녀들을 대표해서 마지막으로 히시미 유리코ひし美ゆり子를 등장시켜 보겠습니다.
도에의의 <신 인의 없는 전쟁 2 — 조장의 머리>(75년, 스가와라 분타, 카지 메이코梶芽衣子, 후쿠사와 킨지 감독)에서 히시미 유리코는 한 마디로 훌륭하다라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카지 메이코 따위는 완전히 먹어치워버렸습니다. 남자들 사이에서 치이고 얻어 맞으면서도, 그때마다 두 배, 세 배 더 강인하고 대담하게 되살아나는 이 영화의 히시미 유리코는, 그저 인형 같이 있는 카지 메이코에 비하면 훨씬 더 생생했습니다.
그녀의 역은 악녀입니다. 그녀도 역시 바의 여자인데요. 차례차례 야쿠자 두목들에게 들러붙어 바에서 클럽으로 ‘출세’해나갑니다. 정세판단이 재빠르고, 붙어먹던 남자가 내리막길이다 싶으면 곧바로 ‘차기후보’에게 갈아타버립니다. 처음에 무로타 히데오室田日出男의 오정부였는데요. 무로타가 살아 있을 때부터 다른 ‘보험’을 들어두어, 무로타의 라이벌인 나리타 미키오成田三樹夫와도 동하고 있습니다. 무로타가 살해되자 즉시 나리타에게 갈아탑니다. 그리고 그 나리타가 미키오가 살해되자마자 지체 없이 다음 후보인 오리모토 쥰키이치織本順吉를 노립니다. 뺨을 맞든 괴롭힘을 당하든 약한 소리를 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출세’를 위해 안절부절 애를 쓰는 것은 아닙니다. 그녀의 행동 원리는 오히려 자포자기랄까, 배짱이랄까, 말하자면 니힐리즘에 가깝습니다.
압권은 독고다이一匹狼 스가와라 분타와의 맞대면 장면입니다. 분타가 나리타 미키오를 죽이려고 그녀의 맨션에 들이닥칩니다. 그녀는 방에서 나리타가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권총을 휘둘면서 “간통을 하러 왔다고” 같은 허세를 부리며 분타는 그녀의 방에 들이닥칩니다. 그렇지만, 대스타 분타를 맞상대하면서도 히시미 유리코는 한 발자국도 물러나지 않습니다. “그 사람, 기다렸다가 죽일 셈이죠. 제 눈으로 사람이 죽는 건 보기 싫어요.”라며, 그녀는 분타를 깔보며 술을 마십니다. 이 장면의 기세란, 분타 뿐 아니라 누구라도 압도당할 만합니다. 이윽고 나리타 쪽에서 연락이 와서, 그가 그날 밤 그녀에게 오지 않으리란 점을 알게됩니다. 헛걸음을 한 분타가 권총을 집어넣고 나가려는 때, 히시마 유리코가 그를 잡아 세웁니다. 그리고 하카타 말씨로 말합니다. “아까 당신, 간통하러 왔다고 했잖아. 당신은 뒤에서야, 앞에서야? 나를 어느 쪽에서 품는다는 거야?” 그녀의 압도적인 기세에 분타도 주눅이 들어, 결국 “난 아직 죽기 싫어” 같은 말을 중얼거리며 물러서고 맙니다. 그런 분타의 뒷모습에 히시마가 냉소적인 한 마디를 던집니다. “다들 오래 살고 싶어하더라. 남자들이란--”
두 번, 아니 세 번이어도 좋습니다. 이 영화의 히시마 유리코는 정말 훌륭합니다. 지금까지 등장해온, 약하지만 어쩐지 도에이東映의 글러먹은 히로인ポンコツ・ヒロイン 전체를 그녀가 떠안고는 꿋꿋하게 배짱을 부리고 있습니다. 그녀 역시 원래는 눈에 띄지 않는 여배우였습니다. 주간지에서 누드 그라비아로 자주 보이긴 했지만 배우로서는 전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습니다. <울트라맨>의 여성 대원 역할로 아이들에게는 알려져 있었지만, 도에이의 여배우로서는 제대로 활약한 무대가 없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유일한 것은, 1972년 ‘불량반장’ 시리즈의 15편인 <불량반장-일망타진>(노다 유키오野田幸男 감독)입니다. 이 영화에서 그녀는 아주 멋졌습니다. ‘터키탕(성매매업소-역자 주)’에서 도망쳐 나온 머리가 조금 모자란 소녀. 자신을 도와준 불량반장 일행이 야쿠자와의 결전을 위해 자금을 모으고 있는 것을 보고, 바보는 바보 나름대로 뭔가 느꼈던 것인지 변태 아저씨들을 상대로 ‘성냥팔이 소녀’를 시작합니다. 그 현장을 발견한 불량반장들이 “아직도 이런 짓 하고 있는 거야!”라고 호통치자 그녀는, “그런데 모두가 뭔가 하고 있는데 나만 놀고 있을 순 없었는 걸요”라며 눈물을 흘립니다. 그 영화 한 편으로 저는 그녀의 팬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후에도 그녀는 다른 글러먹은 히로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다지 빛을 보지는 못했지만, 이번 <조장의 머리>에서의 멋진 악녀 연기를 본 후에 저는 너무 행복하고 또 행복해서 <청춘의 문> 띠위를 봤을 때 느꼈던 불쾌감이 한순간에 씻겨나가 버렸습니다.
도에이의 히로인들은 누구든 짧지만 아름답게 불타오릅니다. 그들 각자에게는 각자의 눈물과, 각자의 피가 분명 있습니다. 제가 딱히 ‘짧지만 굵게 사는 편이 길고 가늘게 사는 것보다 낫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지만, 그런 선택조차 할 틈도 없이 다급히 세상을 떠나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인간상을 표현하는 여배우가 도에이에 있는 것이며, 그런 그녀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놈이 있는 것… 따위의 이야기를 그저, 저는 해보고 싶었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