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은 지난 일에 대해 영화와 같은 감상을 늘어놓는다. 마치 흑백 영화 속 오드리 헵번을 떠올리듯이 아련하고 빛나게. 나에겐 고통인 과거가 누군가에겐 그리운 추억 혹은 철없던 시절 정도로 여겨진다. 누군가가 눈물로 지운 과거를 나 역시 아름다운 기억으로 포장해 뒀을까 두렵다.
쓸데없는 감상에 젖어 추억하는 과거 따위는 내게 없다. 늘 먹이사슬의 최하위에서 이리저리 도망 다니기 바빴던 나에게 그런 사치스러운 기억은 없다. 앞으로도 영원히 내 인생에 동창회 같은 스릴러무비는 없다.
반추는 나의 단점이다.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별로이기만 하다. 매일매일 쌓여가는 어제들이 내 숨통을 조인다. 무수한 손들이 땅에서 기어 나와 발목을 잡는다. 아무리 버둥대도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는 듯이.
연락처를 사진을 흔적들을 지우고 또 지워도 다음날이면 간척지처럼 또 뭔가가 퇴적한다. 잊고자 해도 잊혀지지 않으니 계속 고통에 몸부림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