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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은달 Feb 01. 2023

공무원의 출장

  면(面)으로 출장을 가다 사고가 날 뻔했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까 말까 한 좁은 길을 고양이 한 마리가 천천히 가로지르며 걸어가고 있었다. 간발의 차이로 급정거를 한 나의 중고차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나는 잔뜩 경직된 어깨를 주무르며 고양이가 무사히 길을 건너기를 기다렸다. ‘하마터면 칠 뻔했잖아’, 들릴 리 없는 하소연을 했다.     



  노란 털이 듬성듬성한 고양이는 딱 봐도 괴팍한 노인같이 생겼다. 갈빗대가 드러나 비쩍 마른 몸매에 뱃가죽이 축 늘어졌다. 긴 세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애꾸눈에 꼬리도 휘어져 괴상하다. 비루한 몰골에 비해 녀석의 태도는 흡사 영국 근위병 같다. 절도 있는 걸음은 우아하고 리드미컬하다. 고개를 빳빳하게 쳐들고 내 쪽을 흘끗 보는 표정은 근엄하기까지 하다. 마치 왕의 행차에 무엄하게 끼어들기라도 한 것처럼 나를 내려다본다.     

  



  무거운 마음으로 출장지로 향하던 나는 이 뜻밖의 만남이 하루 종일 마음에 남았다. 노란 애꾸 고양이의 세월에 대해 생각했다. 풍족하게 밥을 먹은 날도 있었을 것이고 며칠을 주린 날도 있었을 것이다. 다른 고양이들과 영역을 다투다 몸에 크고 작은 상처가 생겼을 테고 어쩜 그 왼쪽 눈도 그러다 잃었을 게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엔 조그만 나뭇잎을 처마 삼아 비를 피하고, 무더운 여름엔 마른 목을 침으로 축이며 그늘에 몸을 뉘었을 것이다. 오늘처럼 차에 치일 뻔한 적이 수십 번, 몰래 쓰레기통을 뒤지다 사람들에게 쫓긴 날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그래도 녀석은 그런 날들에 개의치 않고 살아간다. 무심한 시선과 꼿꼿한 자태를 유지하면서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다. ‘그런 일로 종종거리며 품위를 떨어뜨리다니 인간아, 인간아.’      



  출장을 다니다 보면 길 위의 다양한 동물들을 만난다. 거리의 고양이들이란 보통 다 저 놈 같다. 쉽게 곁을 내주거나 상냥한 표정을 짓는 법이 없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불평을 갖는 놈들 역시 없다. 추우면 추운 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굶주린 날에도 비굴하게 조아리지 않고 배가 부른 날에도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이라고들 한다. 지금 이 순간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 즉 ‘현존감’으로 세상을 사는 것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란다. 길고양이들은 언제나 이 순간을 산다. 그들에게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어차피 다가온다. 손에 쥐어진 건 지금뿐이기에 고양이들은 한결같이 우아하고 양보 없이 쟁투한다.     



  나는 내가 여러모로 길고양이보다 괜찮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나는 앞발 대신 팔이 있고 뭉툭한 발가락대신 손가락이 있고 지능은 말할 것도 없이 높다. 나에게는 음악을 듣고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취향이 있고, 게임을 하고 유튜브를 보는 쾌락이 허용된다. 나의 일상은 최첨단 과학 기술에 둘러싸여 있고 교통수단은 빠르고 편리하다. 먹고 싶은 걸 핸드폰으로 주문하면 1시간 뒤에 집 앞에 음식이 와 있는 세상에 산다. 길냥이들의 눈앞에 츄르가 배송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으니 모로 보나 내 인생이 훨씬 풍족하고 편리하고 안전하다.     



  그런데 왜 나는 고양이들처럼 아무렇지 않은 태도로 살아가지 못할까? 작은 일에도 쉽게 고개를 떨구고, 금방 나가떨어진다. 그러니까 이건 피지컬 싸움이 아닌 것이다. 멘탈 싸움에서 고양이와 지다니 만물의 영장으로서 여간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니다. 나는 자존심을 버리고 고양이들을 바라본다. ‘오늘만 살아, 지금만 살아. 너나 나나 지금밖에 없는 건 다 똑같다고, 이 모자란 인간아.’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다.    



[동물은] 이처럼 아침부터 저녁까지 매일매일(중략) 순간이라는 말뚝에 짧게 묶인 채 살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우울도 권태도 느끼지 않는다. 이런 걸 보면 인간은 어처구니가 없다. 왜냐하면 그는 동물들 앞에서 인간임을 자랑하면서도 동물이 지니고 있는 행복에 부러운 듯한 시선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도 동물처럼 권태도 고통도 없이 살고 싶은 것이다.
-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서울대 박찬국 교수의 하이데거 명강의)」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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