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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은달 Jan 31. 2023

엄마와 게장


  엄마가 게장을 보내왔다. 받자마자 냉장고에 넣어놓고 며칠 잊고 살았다. 오늘 밥에 비벼먹으려고 꺼내놓으니 시큼하게 쏘는 것이 그새 상했다. 게장은 내 입 속이 아니라 쓰레기봉투로 들어갔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맛있게 잘 먹었노라 거짓말을 했다. 엄마는 요즘 몸이 좋지 않다고 했다. 추운 날씨에 시장에 가서 게를 사고 게장을 담느라 아픈 게 아닐까 내심 미안해졌다.






  엄마는 엄마의 이름으로 불릴 일이 거의 없다. 엄마이거나 누구누구의 엄마이거나 기껏해야 집사님이다. 저번에 엄마와 함께 병원에 간 적이 있다. 엄마 이름 세자를 정확하게 불러주는 은 슬프게도 병원이었다.



  엄마가 우리를 키울 땐 병원에 일이 별로 없었다. 지금은 조금씩 고장 나는 몸을 이끌고 한의원 치과, 내과, 정형외과를 차례로 순방한다. 가장 젊고 건강했던 날에는 이름이 없었다.  늙고 병든 육체를 가지고 나서야 엄마는 엄마의 이름을 찾았다. 나는 엄마의 이름을 뺐으려고 태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은 엄마의 이름을 도둑질한 셈이 되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나는 사도신경을 욀 때면 엄마 생각이 난다. 예수는 인간의 죄를 대속(남의 죄를 대신하여 벌을 받거나 속죄함)하였다. 자신의 죄를 다른 이에게 십자가 지웠기에 인간은 모두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다. 기독교인은 모두 죄인이고 그러므로 쉼 없이 회개해야 한다. 엄마가 되기 전의 어떤 여자, 젊고 건강하고 무수한 가능성으로 가득했던 여자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다. 그리고 나의 엄마로 다시 태어난다. 나의 탄생은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한 어떤 여자에 대한 원죄일지 모른다. 우리는 모두 탄생과 함께 예수가 아니라 어머니에게 죄를 짓는지도 모르겠다.




  쓰레기봉투에 처박힌 게장을 바라본다. 쓰레기봉투에 담긴 건 게장이 아니라 어머니의 모든 노고와 정성이다. 나를 향한 대가 없는 사랑이자 나를 위해 제물로 바쳐진 엄마의 일생이다.

  게장 하나로 나는 죄스럽고 서글퍼졌다. 엄마는 내년에도 게장을 담아 보내올 것이다. 상한 게장을 버리는 일은 너무나 고통스럽기에 다음엔 내가 직접 부모님 댁에 가서 반찬을 챙겨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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