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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은달 Feb 08. 2023

작가도 뭣도 아니지만 글을 씁니다

  


  나는 항상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의 꿈이 점점 명확해지고 나 자신의 초상이 점점 뚜렷해질 무렵 돈도 같이 떨어져 갔다.


  나의 거취를 걱정하는 부모님의 얼굴을 보니 글이나 그림, 음악 같은 이야기가 꿈처럼 아득다. 아침이면 일어나 이력서를 쓰고 잠들었다가 다음날이면 또다시 채용공고를 뒤지는 일을 반복다.


  몇 달 전만 해도 그림을 그리고 책을 쓸 날이 목전에 온 듯 가슴이 부풀어 올랐었는데 생계는 꿈보다 힘이 셌다.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기란 어려운 이다. 그러나 현실의 문제 한두 개만 나를 짓눌러도 이토록 쉽게 멀어질 수 있다는 것 또한 진실이다.




  서른의 나는 그리 젊지도 그리 늙지도 못하였다. 젊음의 패기는 사그라졌지만 노련미라 부를 만한 것도 없다. 지나온 세월들을 돌이켜 자부할 만한 능력이라면 이젠 내가 누군지 조금 알겠다는 것. 이제 스스로에게 공언한다. 나답게 살겠다. 그대로의 나로 살겠다. 


  나는 글을 쓴다. 일기장에, 수첩에, 스마트폰에. 아무것도 없다 해도 쓰다 버린 이면지모나미 펜만 있으면 나는 글을 쓴다. 나는 작가도 아니고 뭣도 아니지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만든다.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아직 실패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던지다 보면 언젠가 박을 터뜨리는 콩주머니 놀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 콩주머니에는 한계가 없으니 박과 붙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오늘 쓴 글이 좀 형편이 없고 여전히 사람들 관심 밖이라도 내일은 내일의 콩주머니를 던 수 있는 소소한 배짱이 솟아오른다.


모든 책 중에서 나는 오직 피로 쓴 책만을 사랑한다. 피로 쓰라. 그러면 그대는 알게 되리라. 피가 정신임을.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프리드리히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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