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밸런스 게임이 예능에서 엄청나게 유행했다. 무엇을 선택해도 곤란한 선택지 두 개를 주고 그중에 무조건 한 가지를 고르는 게임이다.
'유명해져서하루도안쉬기 vs 유명하지않는대신매일쉬기'
'사생활 노출 VS 노출로 생활'
'나 빼고 모두 천재인 팀에서 자괴감 느끼기 vs 내가 유일한 희망인 팀에서 소처럼 일하기'
무엇을 골라도 난감하고 썩 그리 마음에 드는 선택지가 없다. 사람들은 곤란한 질문을 받고 그중에서 뭐라도 나은 결정을 내린다. 어떤 선택을 해도 별로인 상황에서조차 고민을 하는 것이 이 게임의 즐거움이다.
밸런스 게임은 인생의 축소판이다. 우리는 매 순간 크고 작은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최선과 차선을 들고 고민하는 경우보단 최악과 차악을 들고 고민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자신의 선택에 만족할 때도 있지만 '그때 왜 그랬지'하며 후회하는 일이 다반사다.
좌로 가면 낭떠러지, 우로 가면 총알받이. 이리로 가면 가시밭길, 저리로 가면 구렁텅이. 올라가면 첩첩산중 내려가면 천길물속. 그러고 보면 마냥 좋기만 한 인생도, 마냥 나쁘기만 한 인생도 없다.
어제는 유아인이 프로포폴 투약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되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퍽이나 자신에 대해 엄격하고 자신만의 철학을 지키며 살고자 고군분투한 연예인으로 알고 있었는데 안타까웠다. 으리으리한 집, 잘생긴 용모, 그리고 유명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다 가지고도 잠 한숨을 편하게 못 자 마취제에 의존하게 된다니. 역시 운명은 얄궂다.
나는 겁쟁이에 비굴한 인간이라 신을 자주 원망한다. 왜 이런 일이 하필 나에게 벌어졌을까 생각하고, 피할 수 있으면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까지 도망친다.
어디선가 그런 글을 읽었다. 벌어질 일들은 다 벌어진다고. 이미 내 인생 책에 다 적혀 있다고.그러니까 도망을 친다고 쓰나미처럼 덮치는 불행을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나는 이 거대한 숙명 앞에 기가 죽기보다는 마음이 가벼워졌다. 원래 인생이 밸런스 게임 같은 것이라서 차악을 고르는 것이 결국 최선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인생사 새옹지마, 진인사대천명이라면 고통에 맞서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으며 내 직관을 따르지 않을 이유는 또 뭐가 있을까?
모든 사람들이 카레맛 똥을 먹을 때 똥맛 카레를 먹은들, 똥을 먹은 사람들이 나를 손가락질할 일도 아니고, 똥맛을 맛보는 내가 세인들을 비웃을 것도 없다. 어떤 선택을 해도 별로인 상황에서조차 고민을 하는 것이 인생의 즐거움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