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딘가 고장 나고 부서진 사람이다. 엄마의 뱃속에서 말끔하고 깨끗하게 태어나 전형적인 주입식 교육을 받고 전쟁터 같은 입시를 거쳐 제대로 된 지식인은 몇 없는 지식의 상아탑에서 몇 년을 보내고 사회로 흘러들었다.
매 순간 보이지 않는 칼에 찔리고 잡히지 않는 몽둥이로 맞고 빠져나올 수 없는 늪에서 허우적대다 찢어지고 비틀려 집에 돌아온다. 누군가의 죽음은 이젠 의미도 없이 스쳐 지나가고 상실에 익숙해지는 것을 어른스럽다 다독이며 고통을 훈장처럼 여기는 아수라.
나는 아직 나이를 많이 먹지도 않았는데 마치 백전노장처럼 다리를 절뚝이며 집으로 돌아온다.
나는 내가 다시 태초의 그것처럼 맑고 깨끗해질 수는 없다는 것을 안다. 고장 난 신체를, 무언가 결핍된 정신을, 고통스러운 심장을 그때그때 고치고 동여매고 꿰매며 살아야 한다. 인간성을 잃거나 감각에 무뎌지거나 감정을 잊는 일은 앞으로도 비일비재할 것이므로.
그럴 때마다 글로 써 남겨놓아야 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중요하다 생각하며 살아왔는지. 그리고 무엇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갈 것인지.
예전에는 글을 쓴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이 시끄럽고 더럽혀진 세상에 굳이 내 목소리로 소음을 더하고 공해를 만들 필요가 있을까. 따지고 보면 살아간다는 건 그 자체가 오염이다. 나의 숨은 끊임없이 이산화탄소를 내뿜고 앉은자리마다 갖은 냄새와 분비물을 남긴다. 생명체가 활동한다는 것은 소음을 만들고 쓰레기를 만들고 끝없이 소화시키고 배설한다는 뜻이다.
글쓰기에 필요한 건 그냥 자신감일이지도 모른다. 내 글이 공해 아닐 거라는 믿음, 누군가에게는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신념,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존재할 것이라는 개똥철학.
나는 글을 쓴다. 오로지 그 사실 하나만으로 나는 근거 있게 나를 사랑한다.
좋아하는 책을 읽다 마음에 드는 글귀를 발견하면 일기에 몰래 적어두는 일. 하얀 백지에 구름이 붉게 물들어가는 풍경을 그리는 일. 계절에어울리는 음악을 들으며밀렸던 집안일을 하는 일. 햇볕에 말려 뽀송뽀송해진 이불에 쌓여나도 모르게 스르륵 잠이 드는 일. 풀벌레 소리를 반주삼아 여름의 밤공기를 맡으며 내가 사는 동네를 거니는 그런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