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은 훈민정음에서 한글창제의 이유를 밝히는데, 그 핵심은 백성들을 어여삐 여겨 한글은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이 어여삐라는 말엔 여러 가지 감정이 들어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귀여워하는 정도의 느낌보다 조금 더 짙은 감정. 이를테면 안쓰러워서, 자꾸만 마음이 가서 뭐라도 하나 챙겨주고 싶은 그런 마음. 애를 쓰는 모습이 안타까워서 잘됐으면 하고 응원하게 되는 마음 같은 것들.
어떻게 세종대왕은 만백성에게 어여삐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을까. 나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어여쁘다. 그래서 늘 이해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위로받고 싶고 용서받고 싶다.
새삼 뒤돌아보며 후회하게 되는 것이 있다면, 그 어떤 사람도 심지어 가족마저도 온전히 이해하지 않으려 한 것, 사소한 인정에도 인색한 것, 값싼 위로조차 아끼며 산 것, 가슴속 앙금을 황금처럼 여긴 것. 그런 것들이다.
내 스스로가 자신의 이런 부족함을 알기에 많은 시간 고립을 선택하고 정당방위라는 이름으로 가시를 세우고 살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리는 일, 아이를 낳아 사랑으로 기르는 일, 공동체 안에서 삶의 가치를 느끼는 일. 그 모든 것이 나와 영영 동떨어진 삶의 형태일지도 모르고, 아무도 없는 암흑 속에서 홀로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할지도 모른다.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내 삶의 모양을 선택할 수는 없다. 다만 누군가를 어여삐 여기는 마음을 언젠가 갖게 되기를, 누군가의 부족함, 나의 모자람 역시 비난과 교정의 대상이 아니라 어여삐 여겨야 할 사랑의 한 종류임을 깨달을 수 있기를 서원한다.
그렇게 되면 용서하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을 것이며, 사랑하지 못할 것은 또 무엇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