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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동우 Mar 17. 2023

모차르트형, 형은 나가있어

뒹굴대며 읽는 음악치료 이야기_음악치료 둘러보기_첫 번째

“어떤 음악을 들으면 기분이 좀 나아질까?”

“나한테 맞는 음악은 어떤 거야?”


음악치료사라는 직업을 가진 후 지인들에게 들었던 요청 중 두 번째로 많이 들었던 말이다. 음악치료사에 대한 흔한 오해 중 하나는 치료사는 내담자에게 맞는 음악을 골라주고 내담자는 그 음악을 들으며 내면의 상처를 회복한다는 것이다.


“당신은 모차르트가 어울리는 사람이군요. 이 음악을 하루 세 번 듣는다면 빨리 회복할 수 있을 겁니다. 밥을 먹고 30분 이내에 들으면 효과가 더 좋습니다.”


필자는 이런 능력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몇 번 했다. 아마 돈도 지금보다 잘 벌지 않았을까? 사람을 쓱 보고 음악 처방전을 써 준다니. 멋있지 않은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이런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 것을 음악치료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럼 도대체 음악치료사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음악치료사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한 가지 질문을 하겠다. 과연 사람마다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음악이 있을까? 내 경험에 비추어보면 있다고 말하겠다. 그럼, 질문을 하나 더 던져보자. 음악치료사가 내담자에게 맞는 음악을 골라 줄 수 있는가? 이건 가능할 수도, 불가능할 수도 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이쯤이면 당신은 필자에게 불신감을 느낄 수도 있다.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당신은 배가 아픈 것 같은데 이 약을 줄 수도 있고 안 줄 수도 있어요.”라고 말했다고 생각해 보자. 나 같아도 그 의사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신뢰감이 떨어지기 전에 지금부터 어떤 의미로 한 말인지 천천히 해명해 보고자 한다.


‘이 음악을 들으면 당신의 마음은 더 좋아질 거예요.’


이런 식의 멘트를 사용해 광고하는, 이른바 기능성 음악에 대해서는 한 번쯤은 다들 들어봤을 것이다. 그중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것은 태교 음악이다. 옛날에는 어느 음반 매장을 가던 태교 음악 CD를 파는 코너가 있었다. 태교 음악은 대부분은 잔잔하고 서정적인 클래식 음악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그중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모차르트의 음악이다. 


한때 모차르트 이펙트라는 타이틀을 건 음반들이 유행한 적이 있다. 한 연구실에서 실험을 한 결과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공간지각능력이 유의미하게 향상된다는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 능력이 향상된다니. 게임 속 캐릭터도 이렇게 쉽게 레벨업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당시 모차르트 음악으로 구성된 CD가 많이 팔린 걸 보면 상업적으로는 큰 성공을 거둔 듯하다.


하지만 연구가 인정을 받으려면 첫 연구자 외에 누가 실험해도, 언제든 다시 반복해도 같은 결과가 나와야 한다. 이후 모차르트 이펙트에 대한 궁금증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동일한 연구를 했다. 실험 결과 결국 모차르트 이펙트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왔다. 반대로 오히려 대중음악을 들려주었을 때의 점수가 높게 나온 적도 있고 모차르트 음악을 듣고 점수가 떨어지는 경우가 나오기도 한 것이다. 결국 당시 인기 있었던 모차르트 이펙트는 부족한 연구과 마케팅이 맞아떨어진 결과물로 판명이 났다. 하지만 지금도 인터넷에서는 모차르트 이펙트라는 타이틀을 달고 판매하는 제품이 있다. 후속 연구 결과를 모르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상술이다.


물론 모차르트의 음악을 낮춰 보는 것은 아니다. 그의 음악은 매우 훌륭하다. 하지만 음악을 감상했다고 해서 사람이 변화하지는 않는다. 만일 가능했다면 인류는 지금보다 훨씬 대단한 존재로 거듭나지 않았을까? 자 그럼 이런 의구심이 들 수 있다. 태교 음악은 산모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이쯤 되면 짜증 나는 분도 있을 것이다. ‘이 사람 오늘 좀 이상하네. 아니 그렇게 두루뭉술하게 얘기하면 어떻게 해!’




다시 차근차근 이야기해 보자. 태교 음악이 도움이 되는 것은 모차르트가 작곡했기 때문이 아니다. 태교 음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느리고 서정적인 클래식 음악은 사람의 부교감신경을 자극하여 산모의 마음을 안정시키기 때문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단순히 음악을 들었다는 것만으로 아이의 지능이 향상되거나 획기적인 정서발달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클래식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억지로 졸음을 참아가며 아이를 위해 클래식 음악을 들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평소 좋아하는 장르의 음악을 듣거나 한숨 잠을 청하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된다.


이렇게까지 열심히 음악을 들려줄 필요는 없다. 


과거 논문 준비를 할 때 명상음악이 사람의 심전도 반응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적이 있었다. 본 연구를 시작하기 전 참가자 다섯 명을 대상으로 예비 연구를 진행했다. 당시 준비한 음악은 사람을 진정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었다. 첫 참가자와의 실험은 놀라울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음악을 듣기 전에는 불균형했던 신체 반응이 음악을 듣는 순간에는 급격히 안정되었다. 측정이 끝난 후 연구에 참여한 사람도 음악 감상 시간에 만족했다는 답변을 했다. 다음 참가자도 동일한 반응을 보였다. 잘하면 이대로 논문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세 번째 대상자와 실험했을 때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음악을 듣기 시작하자 오히려 신체 반응이 안 좋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다섯 번째 실험자는 감상 도중 울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하지만 생각보다 이유는 단순했다. 음악을 듣고 신체 반응이 떨어진 사람은 모두 클래식 악기 전공자였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클래식 악기 전공자들은 무수한 시간을 들여 연습한다. 그 과정에서 음악은 단지 감상의 존재가 아닌, 내가 극복해야 할, 넘어서야 할 과제였다. 눈물을 흘렸던 참가자의 경우 하필 실험에서 들려준 음악 중 하나가 자신의 고등학교 입시 연주곡이라고 했다. 그 음악을 듣는 순간 당시 고생했던 기억이 떠올라 자신도 모르게 울컥했다고 한다.


아무리 좋은 음악이라도 듣기 싫은 음악을 억지로 듣는 것은 오히려 스트레스만 쌓인다.


음악치료라는 말을 들으면 보통 사람들은 음악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음악만큼 중요한 건 사람이다. 아무리 좋은 노래도 듣는 사람이 좋다고 느끼지 않으면 그 노래는 좋은 노래가 될 수 없다. 음악치료 현장에서 음악을 고를 때는 치료사가 내담자에게 일방적으로 음악을 골라주지 않는다. 내담자와 치료사가 충분한 이야기를 하고 서로 공감해 가며 함께 음악을 고른다. 치료사는 단순히 방법을 제공하는 사람이 아닌, 소통을 끌어나가야 하는 중재자인 것이다.


가끔 음악치료 프로그램을 할 때 당황스럽게도 내담자가 욕이나 부정적인 가사가 포함된 노래를 고르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청소년이 내담자인 경우 생기는 일이기 때문에 아마 비슷한 이유로 고민하는 부모님도 많을 것이다. 이럴 땐 무조건 그 노래를 듣지 말라고 제지하기보다는 왜 그 노래가 마음에 드는지 함께 이야기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아무 이유 없이 특정 음악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 노래의 어떤 점이 내담자의 정서와 일치했는지 함께 탐색해 나가는 과정에서 자신도 알지 못했던, 내면에 쌓인 분노가 드러나기도 하며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드러나기도 한다. 그것을 끌어내는 것이 음악치료사가 할 일이다.


결론을 정리해 보자. 음악치료라는 것은 치료사, 내담자, 음악이 함께 소통하는 과정이다. 셋 중 하나만 빠져도 음악치료는 성립하지 않는다. 음악치료사는 음악 기술 말고도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방법을 알아야 하는 직업인 것이다. 만일 내담자에게 가장 효율적인 음악 처방전을 만든다면 그 내용은 치료사가 목록을 정해 주는 형식이 아닌, 치료사와 내담자가 함께 소통하고 공감하는 과정에서, 내담자의 내적 이슈를 담은 노래들로 구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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