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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동우 Jan 19. 2024

조금만 더 버텨보렴 아가야

엄마 사슴벌레의 마지막 모성애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다. 필자를 아는 사람은 오래 전 일인데 어떻게 그 당시 일인것을 확신할 수 있는지 의구심을 품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일은 절대 잊을 수 없다. 어린 나이에 포켓몬보다, 무서운 괴담보다도 더욱 충격을 준 사건이 있었던 날이니까.


여름방학이 끝나고 우리는 저마다 방학숙제를 제출했다. 학교에서는 교실 하나를 비워 그중 초등학생치고 열심히 했다 싶은 것을 모아 전시를 했다. 세계 여러 나라의 동전을 수집한 사람도 있었고 방학 전부를 우표 수집에 투자한 녀석도 있었다. 자신의 그림 솜씨를 뽐내는 사람도, 글을 쓴 원고를 제출한 학생도 있었다. 고만고만한 과제들 사이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커다란 곤충 표본이었다. 


곤충 표본은 그 많은 생물을 어디서 구했는지 참으로 대단하다고 할 수 밖에 없던 물건이었다. 수업 시간에 배웠던 수많은 곤충은 물론 난생 처음 보는 생명체가 스티로폼에 고정된 채 교실 한 쪽 면을 꽉 채우고 있었다. 아마 그 과제를 한 학생은 어마어마한 고생을 했으리라.


전시회는 날마다 성황이었다. 당시는 인터넷도 없고 비디오 게임기를 가진 친구도 몇 없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나도 최소한 다섯 번은 그 전시를 보러 갔던 기억이 난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전시를 보던 내 뒷편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악! 이게 뭐야!"


소리를 지른 사람 앞에는 앞서 말했던 으리으리한 곤충 표본이 있었다. 그 사람은 마침 사슴벌레 표본 앞에 서 있었다. 전시장에 있던 몇몇 사람들은 소리를 지른 사람 옆으로 다가갔다. 그 사람이 보고 있던 것은 표본에 있는 암컷 사슴벌레였다.


암컷 사슴벌레는 수컷에 비해 뿔이 작았다. 크기는 성인의 엄지손가락만 했으며 껍질은 형광등의 빛을 받아 검게 빛나고 있었다. 곤충은 머리, 가슴, 배로 나뉘어 있다고 배웠다. 머리는 작고 배 부분이 가장 컸다. 그리고 그 사슴벌레의 가슴 부분에는 가늘고 긴 그리고 튼튼해 보이는 은색 핀이 꽂혀 있었다. 핀은 사슴벌레의 배를 관통하여 바닥에 있는 스티로폼에 몸체를 움직이지 못하게 단단히 고정시켰다. 그런데 그 사슴벌레의 아래에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멀리서 보면 점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작은 무엇인가가. 그리고 그것은 꼬물꼬물 움직이고 있었다. 한 두 마리가 아니였다. 여러 마리의 점이, 아니 여러 마리의 작은 사슴벌레가, 더 자세히 말하면 아직 사슴벌레가 되지 못한 알에서 갓 부화한 생명체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들은 살아 있었다. 비명을 들은 선생님이 모습을 보고 책받침으로 작은 사슴벌레들을 조심스럽게 집어 밖에 놓아주었다. 모인 사람들은 금새 흩어졌지만 몇몇 사람들은 차마 앞에서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곤충 표본을 만든 학생은 알을 밴 암컷 사슴벌레를 잡아 은색 핀으로 흰 스티로폼 위에 박아 넣었을 것이다. 그 사슴벌레는 죽지 않았다. 생명체의 본능인지 엄마가 가진 힘인지는 알 수 없지만 사슴벌레는 움직이지 못한 채로 자신의 아이들이 깨어날 때까지 알을 품고 버텼던 것이다. 세포에 불과한 자신의 알이 하나의 생명으로 거듭날 때까지 그녀는 인내했다. 그리고 마침내 성공했다.


아기 사슴벌레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그 이후로 나는 그 어떤 표본을 보고서도 아름답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박물관이나 전시장에 매달린 생명체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건 생명이 가진 억척스러움, 그리고 모든 어머니라는 생명체에 대한 경외감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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