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nkwell Apr 18. 2023

반짝반짝 타락하는(2)

<더 글로리>(파트2)를 보고

결국 동은(송혜교)은 가해자들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를 듣지 못했다. 오히려 동은만이 연진의 딸 예솔(오지율)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했을 뿐. 나는 이 사실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 <더 글로리>가 파트1에서 보여준 완성도를 고려한다면 시청자로서도 가해자 캐릭터들의 반성 어린 모습을 기대하는 건 난센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트2를 보는 내내 가해자 중 단 한 명이라도 동은에게 제대로 된 사과를 하길 바랐다. 이게 다 하도영(정성일) 때문이다. 동은의 집에 구두를 신고서 들어갔던 박연진(임지연)과 구두를 벗은 채 들어선 하도영이 마주했기 때문이다. 그 모든 광경을 동은이 지켜봤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예의라곤 없는" 연진이는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예의". 그 사소한 예의 하나에 연진에게 자수할 기회를 주는 게 맞는지 "백 번도 돌아섰었"다가 결국 기회를 주기로 했던 동은의 마음. 16부작 전체로 봤을 땐 스치듯 묘사되었다고 해도 무방한 그 '예의'와 '마음' 때문에 동은의 뒷모습을 계속 돌아보게 만들었다.

어쩌면 동은은 연진이란 오래된 자신의 꿈을 이루고 싶지 않았을지 모른다. 연진이 자백을 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만으로도 손을 털며 제 갈 길을 다시 찾아 나섰을지 모른다. 물론 현남(염혜란)과의 연대와 여정(이도현)과의 연애가 즐거운 나머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잊지 않으려 반쯤 웃고 반쯤 다가갔던 동은을 떠올리면, 복수를 마친 후에 삶의 그림까지 이미 완성한 사람처럼 보이긴 했다. 그렇다 한들 옥상 난간 위에 홀로 다시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는 것까지 쉬웠을 리 없다. 동은의 속내가 내 짐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면 9화, 동은과 연진의 카페 대화 씬은 달리 보인다. 동은이 준 마지막 기회를 연진이 걷어찬 게 아니라 동은이 복수를 멈출 마지막 기회를 연진이 앗아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가해자에서 피해자가 될 줄만 알았던 연진이 영원한 가해자가 되기를 택함으로써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될 줄만 알았던 동은은 영원한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와 데칼코마니를 이루는 게 15-16화에서 보인 영천(이무생)과 여정의 면회 씬이며 이들 역시 영원한 가해자/피해자로서 새로이 각성한다고 볼 수 있다.

어린 동은(정지소)이 현모양처가 꿈이라는 어린 연진(신예은)에게 "내 꿈은 너야."라고 말했던 순간을 다시 되짚어 본다. 너무 섬뜩해서 정확히 무슨 뜻인지 짚고 넘어갈 생각을 못했던 그 말의 의미를 이제는 알겠다. 네가 되어 너를 나처럼 만드는 꿈. 열여덟 자신의 곁에 아무도 없었던 것처럼 지금 너의 곁에 아무도 없게 만드는 꿈. 나의 세상이 너로만 가득했던 것처럼 너의 세상도 나로만 가득하게 만드는 꿈. 결과적으로 동은의 꿈은 반만 이뤄진 셈이다. 연진을 혈혈단신으로 만듦으로써 본인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영원한 피해자가 되었으므로 영원한 가해자인 연진이 되는 것에는 실패했다. 반가운 실패다. 만약 동은이 그마저 성공했다면 자신에게도 좋은 어른들과 친구, 날씨, 신의 개입마저 있었다는 것도 모른 채 스스로를 죽이는 데에도 성공했을 테니까. 동은의 말대로 연진은 신이 도와 형벌만 받은 것 같지만 또 다른 피해자 경란(안소요)의 개입으로 사실상 천벌을 받은 것에 가깝다. 왜 억울해야 하는지 영원히 알지 못할 연진의 꿈은 이제부터 동은이다.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가 되도록 돈 없이는 할 줄 아는 게 없었던 연진은 동은이란 꿈을 반의반도 이루지 못할 게 자명하지만.

열여덟 번의 봄을 보내고 나서야 할머니(손숙)의 "봄에 죽자"란 말이 "봄에 피자"란 뜻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동은에게 열아홉 번째 봄이 찾아왔다. 하지만 할머니에게 보낸 기약 없는 편지에서 느낄 수 있듯 동은은 자신에게 활짝 피어날 봄 같은 건 영영 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예감하는 것 같다. 끔찍한 남편에게서 벗어났지만 "하나밖에 없는 기쁨"인 딸을 곁에 둘 수 없게 된 현남도, 의사라는 신분을 적극 활용해 새로운 칼춤을 추려는 여정도 마찬가지다. 가해자들로부터 복수를 멈출 기회를 빼앗긴 피해자들 머리 위로 햇살이 아닌 먹구름이 드리운 건 그래서 당연하다. 모든 걸 받아들이겠다는 듯 지옥을 향해 걸어가는 동은과 여정, 그리고 이들을 도울 현남의 뒷모습을 기억하려 한다. 잊지 않는 게 그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같다.

작가의 이전글 꽃다발을 읽는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