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것에 관한 권리
“여러 가지를 먹을 권리가 있어.”
“맛있게 밥을 먹을 권리도 있어.”
장미 : 근데 밥을 잘 안 먹고 장난치면 엄마가 때릴 수도 있어.
들레 : 밥을 골고루 잘 먹으면 안 혼나도 되잖아.
국화 : 처음에 조금만 덜어달라고 하면 어때?
나리 : 나는 밥을 조금만 먹고 싶어.
국화 : 그러면 배고픈데 엄마가 밥을 조금 줬을 때는 조금 더 달라고 하는 권리가 있고, 배가 조금만 고플 때 엄마가 많이 줬을 때는 덜어달라고 할 권리가 있어. 맞지?
나리 : 맞아. 밥을 조금만 먹고 싶으면 덜어달라고 할 권리가 있어.
장미 : 그런데 밥을 너무 조금만 주면 어떡해?
국화 : 그러면 더 달라고 할 권리가 있다니까.
동백 : 밥을 안 먹으면 엄마가 화를 낼 수도 있어.
나리 : 만약에 배가 안 고플 수도 있잖아. 그럴 때는 조금 있다가 먹는다고 하면 될 것 같아.
초롱 : 밥 먹을 때 나를 좀 안 혼냈으면 좋겠어. 엄마가 (음식을) 흘리면 혼내고, 다 주우라고 해서 힘들어.
나리 : 그러면 밥 먹을 때 혼나지 않을 권리가 너한테 필요할 것 같아.
초롱 : 다 먹고 하면 되는데... 맨날 밥 먹고 있는데 하라고 하니까 너무 힘들어. 엄마가 자꾸 시켜.
동백 : 그러면 엄마한테 왜 힘든지 자세히 말해.
초롱 : 힘든데 왜 시키냐고 나도 말 했어.
동백 : 그렇게 엄마한테 반말을 하면 안 돼지. 그러니까 엄마가 화 내지.
들레 : 밥을 빨리 먹을 권리가 필요한 것 같아.
장미 : 근데 빨리 안 먹고 싶거나 빨리 못 먹을 수도 있잖아.
국화 : 그래도 늦게 먹으면 재미있는 것도 못하잖아.
동백 : 그래. 늦게 먹으면 레고를 못할 수도 있고, 그림 그리는 것도 못하니까.
장미 : 그래도 어떤 친구들은 늦게까지 먹을 수밖에 없을 수도 있어.
권리에 대한 대화가 이어지면서 어린이들이 경험하고 있는 생생한 삶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을 수 있었다. 때로 아이들은 교사가 옆에 있다는 것을 잊은 것처럼 보였다. 교사는 어린이의 편이자 어른의 입장에 있으므로 점차 말수가 줄어들었다. ‘먹는 것’이 주제로 떠올랐을 때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가슴이 쿡쿡 찔렸다. 변명을 하고 싶지만 차마 할 수 없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시간의 요구를 더 많이 받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영유아교사라면 2~30분 간격으로 알람이 있는 사람처럼 움직여야한다. 개정누리과정은 어린이들이 놀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더 많이 주도록 격려하지만 그래봐야 교육과정시간의 일부다. 아이들의 등원시간, 식사시간, 특성화교육시간, 현장체험학습, 방과후시간, 각종 행사, 의무교육 등을 일과 중에 꽉꽉 채워넣으려면 여전히 교사들은 시계바늘 위를 달리듯이 살아야 한다.
그런 교사의 ‘일’과 어린이들의 ‘욕구’가 부딪치는 지점은 여러 곳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식사시간이다. 편식하는 아이, 느리게 먹는 아이, 주변을 어지럽히며 먹는 아이 등 각 아이들마다 식사예절이나 습관이 다르고 ‘문제시’되는 경우도 있다.
밥상머리교육을 느긋하게 가르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모르지만 집단생활을 하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한명 한명을 다 도와주기란 정말 어렵다. 식사 이후에는 보통 방과후과정과 특성화교육이 시작되므로 더더욱 시간이 정확하게 지켜져야 하는데 세월아 네월아 하고 있는 어린이를 만나게 된다면? 재촉하고 싶은 마음을 참는 것이 매우 어려워진다.
집이라고 다를 바 없다는 것 안다. 심지어 집은 아이들이 기관보다 편하게 여기므로 더욱 자유분방해진다는 것도 안다. 어린이집에서는 안 그런다던데 집에만 오면 식사시간 내내 자리를 못 지키는 아이들 이야기는 매번 듣고 있고, 숟가락을 스스로 들지 않는 아이나 TV없이 밥을 못 먹는 아이 이야기도 매년 빠지지 않는다.
시계는 째깍째깍 움직이고, 10분 뒤에는 나서야 유치원버스를 탈 수 있는 상황이라면 어느 부모님이든 신경이 예민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창 커야 할 나이의 생체시계도 무시할 수 없다. 편식하는 아이의 부모님의 마음은 불안으로 가득해지곤 한다.
그 모든 것의 바탕에는 아이에 대한 염려와 사랑이 있다는 것을 성인인 나는 알고 있지만, 어린이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오늘 글의 앞부분을 장식한 어린이들의 대화를 다시 살펴보자. 언뜻 보면 식사량과 식사에 소요되는 시간을 두고 불만 가득한 대화로 보인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어린이들도 나름대로의 생각을 가지고 있고, 이 문제에 대해서 무작정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권리’는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식사량을 조절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화’를 시도해보자는 의견은 정말 따듯하다. 권리를 지키는 문제에 있어 그 누구도 자기만의 주장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의견을 나누는 과정을 거칠 필요를 아이들은 느끼고 있었다. (참고로 부디 각 가정에서 어린이들의 시도가 민주적이고 평화적으로 합의에 이르길 바라며 이 대화는 각 가정에 저널로 배부되었다. 이후 몇몇 가정에서는 성공적으로 ‘협의’를 했다고 연락 주셨다.)
또한 ‘식사’가 가지는 의미와 ‘좋은 식사’에 대한 이미지에 어린이들도 합의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골고루 먹어야 된다는 것, 그리고 식사시간을 무한정 길게 가져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어린이들은 오늘 뿐 아니라 전체적인 대화에서 ‘권리’가 ‘의무’와 함께 가야한다는 것을 점점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2017년, 처음 이 글들을 엮어 책을 만들었을 때 제목을 ‘어른들이 주고 싶은 권리’와 ‘어린이들이 받고 싶은 권리’로 지었다. 그 이유는 어린이들이 가져야 한다고 어른들이 주장했던 권리가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합리적이고 거시적인 큰 권리 이면에 어린이들이 자신의 권리를 고민하고 토의하고 실제적인 삶의 형태로 가꿔가는 이야기를 드러내고 싶어서였다. 처음 이 문제를 다루기로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에겐 너무 어려운 주제”라고 했다. 그리고 “아이들은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할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화가 거듭될수록 아이들은 ‘권리와 의무’의 관계를 더 깊이 이해하고, 의견을 나누면서 ‘바른 권리’와 ‘권리가 아닌 고집’을 구분해내는 지혜를 보여주었다.
이 모습을 본 나와 우리반의 저널을 받아 든 부모님들은 당연히 어린이들의 권리를 더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특히 이 ‘먹는 문제’는 매일 우리가 부딪쳤던 문제였다. 아이들의 대화를 기점으로 우리는 이 문제를 다함께 고민할 필요를 느꼈다. 이후의 과정은 따로 기록을 해야 할만큼 아주 긴 이야기로 또 하나의 우리반 프로젝트가 되었다. 수많은 시도와 시행착오를 경험하며 만들어간 ‘아름다운 식탁’ 이야기는 언젠가 나누게 될 기회가 있길 바란다.
다만 오늘 질문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행복이 시작된다고 일컬어지는 여러분의 밥상에는 어떤 권리와 의무, 행복이 쏟아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