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에 견학가기 전 나눈 대화에서 발견한 어린이의 권리
“견학 갔을 때 거기서 시끄럽게 할 권리는 없어.”
파랑 - 우리는 전시관에서 전시를 볼 수 있는 권리가 있어.
노랑 - 나는 박물관에서 자유시간을 보내면 좋겠어.
파랑 - 글쎄... 우리한테 그럴 권리는 없는 것 같은데.
초록 - 그래. 그건 우리 권리가 아닌 것 같아. 자유를 보낸다 해도 좀 아닌 것 같아.
노랑 - 그러면 약속을 하면 되지. 다른 데 안 가고 어떤 곳에서만 보는 거야.
파랑 - 그러면 선생님이 박물관에서 자유를 주고, (시간이 되면) 우리가 다시 모여야 해. 너무 시간이 많으면 모두 다 어디로 아무데나 가버리니까 정해진 시간이 있어야 되는 게 내 생각이야. 보고 싶은 걸 보면 다시 와야 돼.
보라 - 또 그럴 때 내가 궁금한 게 있으면 자유롭게 물어볼 수 있는 권리가 있어.
분홍 - 음... 나는 박물관에서 소리를 안 지르는 게 권리인 것 같아. 다른 사람이 만약에 소리를 지르고 그러면 다른 사람들한테 방해가 되니까 자세히 못 볼 수도 있잖아.
파랑 - 근데 그건 약속 아니야?
보라 - 맞아. 그건 권리가 아니라 배려나 질서인 것 같아. 왜냐하면 소리를 지르면 다른 사람이 피해를 받을 수 있으니까.
위 대화는 박물관에 현장체험학습을 가기 전 아이들이 나눈 대화이다.
어린이들이 공공장소에서의 예절과 자신의 권리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잘 드러난다. 일곱 살 어린이들에게도 예의와 질서는 당연하고 익숙한 것이다. 한편으로 예의와 질서의 범주와 다른 우리의 권리에 대한 생각이 점점 깨어나고 있는 것도 보인다.
전시관에서 자유시간을 보낼 권리, 궁금한 게 생기면 물어볼 수 있는 권리가 대표적이다.
혹시 여러분은 미술관, 박물관 등에서 어린이집, 유치원에서 견학을 나온 어린이들을 만난 적이 있는가? 아이들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떠올려 보자. 아마 선생님이 앞이나 앞뒤로 서고 그 사이에서 어린이들이 한 줄 혹은 손을 잡고 두 줄로 서서 함께 이동하는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어린이들이 줄을 서서 이동하는 모습은 이 외에도 산책길이나 삽화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귀여운 어린이들이 질서정연하게 다니는 모습이 흡족한 어른도 있을 것이다. 나도 이 대화를 듣기 전까지는 안전과 질서를 위해 당연한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린이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그것은 “어른이 주고 싶은” 것이 아니었나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은 사실 우리가 아이에게 기대하는 권리라기보다는 의무에 가깝지만, 어떤 어른도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한줄 기차로 다니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제가 생긴다.
물론 아주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이동하며 관람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동선이 제한되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어른들은 자신의 취향과 생각에 따라서 어떤 작품 앞에서는 오래 머물고, 어떤 작품은 그냥 지나치기도 한다. 지나갔다가도 다시 보고 싶은 작품으로 돌아와 감상하기도 하고, 전시회의 성격에 따라 플래시 없이 사진을 찍거나 드로잉이 가능하다면 자유롭게 감상을 기록하기도 한다.
안전과 시간상의 문제라고 지나쳤던 이 문제를 두고 사실 내가 아이들을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혹시 어른이 제한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작품을 감상하지 않고 마음대로 전시관을 이탈하거나 작품을 훼손시키게 될 것이라는 염려가 바탕에 있지 않은가? 위험에 빠지거나 혹은 어떠한 문제를 일으키게 될 존재라고 생각하여 마땅한 권리를 제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고민 끝에 나는 어린이들 모두에게 대화를 요청했다. 우리는 박물관을 가기 전에 박물관에서의 공공질서와 아이들이 견학에서 기대하고 있는 것, 그리고 교사가 기대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를 하며 어린이들을 더욱 신뢰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공공장소에서의 예절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우리가 보게 될 전시에 대한 소개를 듣고 나름대로의 계획을 세울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자라있었다.
이후 2017년 햇살반 어린이들을 시작으로 내가 맡은 모든 반의 어린이들은 미술관, 박물관 등에서 자유롭게 관람할 권리를 발휘하게 되었다. 각 관에서 어린이들과 교사는 다함께 한줄로 서서 이동하며(두 줄로 세우면 바깥쪽에 선 아이들에겐 전시가 잘 보이지 않으므로) 빠르게 둘러본다. 그리고 교사는 입구에 서서 전체를 조망하고, 아이들은 각자의 취미에 따라 작품을 다시 관람한다. 천천히 걸어서 이동하기, 시끄럽게 하지 않기, 혼자서 밖으로 나가지 않기. 세 가지의 약속을 지키면 아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곳에 원하는 만큼 머물러도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약속된 시간(규모와 상황에 따라 5분~20분 정도)이 되면 오늘의 시간지킴이로 선정된 어린이가 천천히 다니며 친구들을 불러 모은다. 그렇게 모두가 모이면 다음 관으로 이동하여 반복한다.
때로 나는 사전에 전시를 주관하는 쪽과 연락하여 어린이들이 드로잉을 해도 괜찮은지 물어보기도 했다. 어린이들이 관람을 하는 시간은 대체로 평일 오전이기 때문에 관람객이 적으므로 거의 모든 곳에서 허락했다. 아이들은 관람을 하며 마음에 드는 작품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가방에서 크로키북과 도구를 꺼내 모사하기도 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아이들은 자신의 권리가 지켜지는 경험과 자신이 원하는 만큼 몰입할 수 있는 권리를 발휘하는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위와 같은 경험은 단순히 아이들이 권리를 발휘했다는 사회적 경험에서 끝나지 않았다. 아이들의 성장과도 연결되었다. 아이들은 몰입의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우리가 본 것, 경험한 것에 대해서 친구, 가족과 함께 더 깊은 대화를 하고, 유치원에 돌아와서 또 다른 재료로 표상해보기도 하며 자신의 배움을 중첩하고 날카롭게 만들기도 했다.
요즘은 이전보다 훨씬 아이들의 경험을 존중하고 권리를 배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이들만을 위한 체험적이고 이해가 쉬운 전시도 늘어나고 있다. 물론 좋은 현상이지만, 이미 있는 사회적 물결 안에서도 아이들이 편안하게 거할 수 있도록 인정해주었으면 좋겠다. 어른들이 어린이들을 위한다며 한껏 침범하고 있는 또다른 권리는 무엇이 있는지 돌아보는 오늘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