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의 권리 : 방해받지 않을 권리(혼자의 권리)

by 이수진

방해받지 않을 권리(혼자의 권리)


“내가 공부할 때 동생이 방해를 안 하면 좋겠어!”

“나는 내 방에 안 들어오면 좋겠어. 내 방에서 자꾸 물건을 부수는 게 싫어.”

“우리를 방해하지 않을 권리가 있어야 돼.”

“OO동생이 OO를 때리지 않을 권리.”

“혼자서 숙제하고, 혼자 놀 권리가 있어.”

“나는 동생이 나를 괴롭히지 않을 권리가 점점 생기고 있어.”




자, 부모님들, 그리고 선생님들! 갑작스럽지만 진실게임(A.K.A. 손병호 게임) 한 번 해볼까요? 모두 오른손(혹은 왼손)의 손가락을 모두 펼치시고, 해당되는 문장이 나올 때마다 손가락을 하나씩 접는 거예요.


첫 번째. 나는 아이에게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야지.”라고 말한 적이 있다, 접으세요.

두 번째. 나는 혼자 놀고 있는 아이에게 “OO(또래 혹은 형제)랑 같이 놀자.”고 권한 적 있다, 접으세요.

세 번째. 나는 아이에게 “동생을 잘 돌봐줘야지.” 혹은 “동생이니까 봐줘야지.”라고 한 적 있다, 접으세요.

네 번째. 나는 아이가 혼자 놀았다고 하면 마음이 불안해진다, 접으세요.


다섯 번째...문장은 언젠가 이야기할게요. 네 개의 손가락을 접은 채로 ‘이건 대체 뭔 문장들이지’하며 불안해하실 분들이 있을 것 같아서요.





여러분 마음의 안녕을 위하여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이미 손가락을 네 개를 접고 있다. 그리고 여러분께 말하지 않은 다섯 번째 문장에 손가락을 접을까 말까 고민하고 있다. 나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서 말하건대, 저 모든 것은 결코 나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먼저 나는 교사이기 이전에 옛 아이로서, 그리고 맏딸로서 저 말들에 이미 익숙한 사람이다. 80년대에 태어난 누나, 그것도 귀한 남동생을 가진 누나에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생을 잘 챙기라고 말하는지 모른다. 지금까지도 나는 종종 누나가 잘 되어야 동생이 잘 된다는 말을 듣고, 동생은 영원한 집안의 막내이자 아기인 것처럼 대하는 어른들이 계신다. (그 아기는 지금 180cm가 넘는 키에 0.1t의 무게를 가지고 있다. 하루라도 깎지 않으면 수염이 덥수룩해지는 내일 모레 중년이다.) 그래서 오랜 시간동안 사이좋게 지내라, 혼자 있는 친구에게 먼저 말을 걸어라, 동생은 잘 보살펴야한다는 등의 말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들릴 지 깊게 생각해 보지 못했다.


다음으로, 나는 진심으로 아이들을 염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저 말들을 했다.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세요.”라는 말에서 어떤 문제를 찾을 수 있는가. 당연한 것이 아닌가.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친하게 지내는 것은 교육자로서, 혹은 부모로서 당연하게 할 말이다.


다만 ‘사이좋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설명할 수 있는가? 스스로에게 질문해보라. 적어도 나는 답하면 답할수록 ‘사이좋다’는 것은 몹시 추상적이거나 혹은 매우 이상적인 말로 들린다. 심지어 내가 타인과 사이좋게 지내기로 선택하고 그렇게 말과 행동한다하더라도 모든 친구들이 나와 사이좋게 지내려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모든 이들과 사이가 좋아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마 아이들보다 어른인 우리가 더 잘 알고 있지 않을까? 게다가 우리는 많은 사회경험 속에서 아이들보다 훨씬 많은 사회적 기술을 가지고 있을 테니까.


그리고 또 하나. 혼자 있는 아이를 보면 마음이 불편해지는 이유는 뭘까? 교사생활을 하며 아주 오랫동안 이 상황을 ‘문제가 있다’고 보는 사람들을 만났다. 부모님들, 선생님들, 심지어 어린이들 스스로도. 어쩌면 그건 이 사회가 가지고 있는 편견일지도 모른다. 개인주의가 팽배하다지만 아직도 한국은 집단주의적 성향이 있다.


물론 요즘은 이전보다 좋아지긴 했다. 특히 (개인적 호불호를 떠나) MBTI가 유행하게 되면서 더욱 그렇다. 내향인들이 이해받는 세상이 되었달까. 그렇지만 혼자 있는 아이들은 어떻게든 짝을 만들어주고 싶고, 둘만 다니는 아이들에겐 더 큰 그룹을 만들어주고 싶고, 많은 아이들이 관심을 보이는 것에 우리 아이도 관심을 보였으면 하는 것은 여전한 흐름이다.


아마 그것은 우리 아이가 소외되고, 마음이 다치고, 관계를 잘 못 맺게 될까봐 염려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 관심 때문일 것이다. ‘함께’를 의식적으로 권유하는 세상에 대해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함께하지 않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아이들이 ‘혼자 있을 권리’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당황스러웠다. 아이들도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다는 것을, 방해받지 않고 싶다는 것을 아는 것과 표현하는 것은 좀 다른 문제다. 누군가 말하면 ‘물론 그렇지.’라고 답했을만한 문제지만 내가 스스로 말한 적은 그다지 없었다. 하지만 물론 그렇다. 아이들도 혼자 있을 권리가 있고, 몰입하고 있을 때 방해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아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때에도 방해받지 않고 싶을 수 있다. 어른들이 그런 것처럼.


가장 문제는 가정에서 동생이 있는 아이들이 침해받고 있는 권리이다. 너무나 쉽게 ‘너는 언니니까, 오빠니까, 형이니까, 누나니까’ 동생을 기다려줘야 하고 참아줘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은가?


물론 아기들에 대한 배려 역시 아기들이 가진 권리이다. 모르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그것은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자라 말귀를 알아듣게 되었을 때도 여전히 동생은 배려 받아야하고 손위 아이들은 배려해야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권리가 아니라고 말한다.


또한 아이들이 혼자 있을 권리, 혹은 내 물건을 지킬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한다. 한 아이가 말했다. “매일 매일 동생한테 양보할 수는 없어. 그러면 내 권리는 언제 오는 거야?” 아이의 권리는 물론 어른들이 보장해주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어린이들의 권리를 지켜 줄 ‘의무’가 있는 교사, 그리고 부모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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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이 있으면 다른 사람이 소리 질러도 방해가 안 돼. 나는 조용하고 싶을 때도 있어서 벽이 꼭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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