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꿀 / 이룰 권리
가람 : 내 생각에는, 나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 같아.
나리 : 잘 때 꿈을 좋게 꾸고 싶어? (좋은 꿈을 꾸고 싶어?)
가람 : 아니, 어른 돼서.
다정 : 아닌 것 같아. 권리랑 꿈은 다른 것 같아. 꿈은 우리가 꿈꾸는 거지. 현실에 있는 게 아니잖아.
로운 : 진짜로, 진짜로 이뤄질 수도 있잖아.
가람 : 내가 말한 건 뭐냐면 내가 진짜 되고 싶은 꿈을 말이야. 어른이 돼서 (꿈꾸던 것을) 실제로 이루는 권리가 있다는 걸 말하는 거야.
다정 : 아! 그건 권리 같아.
여러분의 어릴 적 꿈을 기억하시는지.
나는 어렸을 때부터 되고 싶은 것이 아주 많은 어린이였다. 하지만 표현하지는 않았다. 내가 기억하는 나의 가장 첫 꿈은, 그러니까 그러낸 것은, 피아니스트였다. 그 다음은 (아주 짧게) 소설가를 꿈꿨고, 다음은 국어 선생님이었다.
나의 꿈의 주인공은 나의 것, 꿈꾸는 것은 나의 권리라고 말하는 어린이들의 대화를 들으며 미소 짓고 있었지만 마음이 아팠다. 왜냐하면 내 꿈은 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유치원생일 때, 정확히 7살일 때 부모참여수업이 있었다. 선생님은 부모님들이 유치원에서 즐거운 경험을 하기를 바랐을 것이고, 여러 가지를 준비했다.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은 나뭇잎 모양의 종이 위에 적혀진 나의 장래희망이 ‘피아니스트’였고, 그것을 본 엄마가 환하게 웃으셨다는 것이다. 나는 엄마의 그 미소를 보기 위해 ‘피아니스트’를 적었다. 그래서 그 날 엄마의 미소를 보며 나도 환하게 웃었던 기억이 난다.
엄마를 웃게 한 ‘피아니스트’는 정확히 말하면 나의 장래희망이 아니었다. 그건 엄마의 꿈이었다. 어린 나를 피아노학원에 보내며 엄마는 몇 번이고 말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동네에 있던 한 부유한 집에서 매일 피아노 연습을 하는 소리가 창문 너머로 들려왔다고. 그걸 골목길에 앉아 매일 들으며 피아노를 배우고 싶었다고. 그러나 이제는 너무 늦어버렸으니, 딸인 내가 대신 피아노를 쳐줬으면 해서 없는 형편에서도 학원을 보내주는 거라고.
나는 어렸지만 엄마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눈치껏 알았다. 요즘엔 어떨는지 모르지만 80년대에 태어난 대한민국의 장녀는 그런 존재다. 엄마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존재. 엄마의 꿈을 대신 이뤄주는 존재.
나는 일곱 살에 시작해서 열 살이 될 때까지 피아노 학원에 다녔다. 수요일은 가장 좋아하는 요일이 되었다. 피아노를 치지 않고 이론 수업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선생님이 그려준 포도송이를 한 번에 서너 개씩 색칠했고, 3년이 지나서야 바이엘을 덮을 수 있었다. 나는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는 피아노 학원이 지독하게 싫었다.
피아노는 싫었지만 글을 읽고 쓰는 것은 너무나 좋았다. 부모님 말에 의하면 유치원에 다니던 내가 어느 순간 글을 뗐고, 집을 굴러다니는 책을 이것저것 읽어 대서 어른들이 읽는 책을 높은 곳에 숨겨두어야 했다고 한다. 얼마 되지 않는 용돈을 모아 나 자신을 위해 산 첫 번째 선물은 인형이 아니라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 외’라는 에메랄드빛 표지를 가진 책이었다. 부모님은 책을 많이 사주지 않았기 때문에(부모님이 책을 싫어하시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책을 꾸준히 읽으셨지만 책을 ‘사서’ 보는 것이 익숙하지 않으신 듯 했다. 그리고 언젠가 엄마에게 여쭤보니 내가 책을 사면 밥을 먹으면서도 책을 보고 어둠 속에서도 책을 보는 등 지나치게 집중하곤 했기 때문에 걱정이 되셨다고 한다.) 학급문고며 학교 도서관의 책을 무지막지하게 먹어댔다. 아니, 읽어댔다. 그리고 어린이날 선물이나 생일선물로 늘 책을 요청하여 한 권씩 나만의 서고를 늘려갔다. 지금도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컬렉션에는 그 시절에 모은 책이 여러 권 꽂혀있다. 그렇게 내 꿈은 소설가가 되었다. 3학년 담임선생님이었던 설OO 선생님이 열심히 책을 읽는 내게 훌륭한 소설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따듯하게 말씀해주셨던 것이 지금도 기억난다.
그러나 소설가의 꿈은 반년도 지나지 않아 국어 선생님이 되었다. 소설가가 꿈이 되었다는 나에게 엄마는 당신이 좋아했던 중학교 시절 국어 선생님에 대해 들려주었다. 선생님과의 추억, 그리고 선생님을 따라 국어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엄마의 꿈을. 내가 책을 좋아하니 마침 잘 되었다며 국어 선생님이 되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나는 국어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엄마의 꿈을 받아들였다. 나는 진심으로 엄마를 사랑했다.
책을 좋아하는 것과 국어를 가르치는 것은 다소 다른 문제였지만 틀릴 것까진 없었다. 나는 무난하게 공부하고, 무난하게 책을 읽으며, 늘 국어는 100점을 맞는 학생으로 청소년기를 보냈다. 어느 순간은 ‘진짜 내 꿈은 무엇일까?’라는 의문도 들었지만 이내 생각 자체를 접었다. 국어 선생님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았고, 그 즈음에는 나를 위해 뭔가 꿈꾸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느꼈다. 나를 위해 헌신한 엄마의 꿈이 내 꿈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느꼈다.
이후에 있었던 모든 일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경험했던 감정들을 모두 나열하는 것은 이 글에서 불필요한 일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유치원에서 근무하는 레지오 교사가 되었다. 아주 잘 치진 않지만 열성적이면서도 즐겁게 매일 피아노를 친다. 특히 ‘독도는 우리땅’을 아주 신명나게 친다! 아이들과 함께 동시를 짓고 동화를 지으며 매일 한 권 이상의 문집을 낸다. 올해 말에는 소설은 아니지만 책이 한 권 나올 예정이다.
지금 내 꿈은 ‘꿈꾸는 선생님, 배워서 남 주는 선생님’이다. 올해는 잠시 교사의 삶을 멈추고 교사교육과 부모교육, 기관 컨설팅을 다니고 있다. 나는 지금 무척 행복하다.
아이들에게 꿈을 물어보면 여러 가지 대답을 한다. 매일 바뀌는 아이도 있고, 꾸준한 아이도 있다. 경찰, 소방관, 군인은 매년 빠지지 않는다. 화가나 소설가, 발레리나와 같은 예술가도 자주 나오고 엄마와 아빠가 되고 싶은 아이들도 늘 많다. 요즘엔 사육사나 유튜브 크리에이티브, 웹툰작가, 아이돌 같이 미디어에서 자주 노출되는 직업도 종종 듣는다. 장래희망 말고 ‘어떤 어른이 되고 싶으니’라고 질문을 하면 처음엔 조금 어려워하지만 이내 다채로운 답이 나온다. 착한 어른, 아이들을 잘 도와주는 어른, 요리를 잘 하는 어른 등 자신들이 생각하는 ‘멋진 어른’에 대해 이야기 한다.
지금 꾸고 있는 꿈이 성인이 돼서도 이어지고 실제로 이루게 될지는 모른다. 그 때의 세상은 지금의 세상과 다를 것이고, 그 때의 아이들은 지금의 아이들과 또한 다를 것이기에. 다만 나는 아이들이 풍성하게 꿈을 꾸고, 앞으로의 삶의 경험 속에서 꿈을 더 넓게 가지고, 배워가고, 선택하고, 즐기기를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그리고 모든 부모들이 아이들이 대신 꿈을 이뤄주기를 바라지 않고, 아이들의 꿈이 이뤄지길 바라며, 동시에 본인의 꿈에 조금 더 가까워지기를 소망한다.
(설마, 2023년에 아이들이 OO가 되는 것이 본인의 꿈이라고 말하는 예스러운 사고방식을 사람들이 아직도 부모 세대로 존재하진 않겠지.)
“나는 과학자가 되고 싶어. 그 꿈은 내 권리야. 내가 되고 싶은 거니까… 어른이 되면 과학자가 될 거야.”
“음… 그런데 공부를 많이 해야지 과학자 권리가 이루어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