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말을 쓰고 들을 권리

by 이수진

#어른이 주고 싶은 권리, 아이가 받고 싶은 권리 #어린이의 권리



“내 동생이 나한테 욕을 하면 너무 기분 나빠.”

“예쁜 말을 쓰고 예쁜 말을 들었으면 좋겠어.”

“예쁜 말을 듣는 것도 우리 권리야.”

“예쁜 말을 하는 건? 그것도 우리 권리잖아.”

“맞아. ‘사랑해’ 이런 거.”





어린이들과 생활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 것이다.


어린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얼마나 예쁜지. 때때로 그 작은 입술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지만 사용하지 않는, 혹은 잃어버린 말을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볕이 좋은 날, 바깥놀이를 하던 때였다. 아이들은 저마다 놀이에 열중이었다. 모래를 파서 웅덩이를 만들기도 하고, 체에 모래를 걸러 ‘고운 모래’를 만들기도 했다. 나뭇잎을 돌멩이로 찧어 요리를 하는 아이도 있었다.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며 까르륵 까르륵 웃는 소리를 들으면서 나도 볕을 쬐고 있었다.


그 때 한 아이가 다가와 뭔가를 불쑥 내밀었다. 토끼풀 꽃을 여러 가닥 엮은 꽃다발이었다. 얼마나 만지작거렸는지 꽃 하나는 시들하니 누워있었다. 아이는 시들한 꽃은 쏙 빼고 나머지를 다시 쭈욱 들이밀었다.


20231103_223920.png


“떤땡님, 내가 선물 주께요.”

“우와! 너~무 예쁘다. 정말 고마워.”

“떤땡님이랑 꽃이랑 똑같아요. 예뻐요.”


그날은 아침부터 유독 지쳤던 목요일이었다.


목요일이라는 요일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나 업무적으로 시달려 아이들과 같이 놀 기운도 없던 날이었다. 볕을 쬐고 있는 것만으로도 시시각각 힘이 빠져나가는 기분이었으니까.


아직 혀 짧은 소리를 내는 아이가 건네 준 그 꽃다발에 울컥 눈물이 날 뻔 한 것은 단지 그것이 꽃이라서가 아니었다. 지치고 힘든 어른인 나를 꽃처럼 봐주는 그 따듯한 눈빛과 한 마디 말 덕분이었다.


어느 날은 애써 웃으며 하루를 보내고 아이들을 배웅한 다음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선생님이든 엄마든 아빠든… 그런 날은 언제고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아주 조금의 쉼표가 필요한 그런 날 말이다. 그렇지만 어디 멀리 떠날 수도, 혼자 오랜 시간을 쓸 수도 없는 그 틈에 우리는 그저 팔 사이에 얼굴을 파묻곤 한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려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보는데 몰래 이 쪽으로 다가오던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베시시 웃는다. 집에 간 줄 알았더니 유치원 놀이터에서 놀다가 잠깐 들어 온 모양이었다. 뭐라 말 할 기운도 없어서 그저 같이 베시시 웃었더니 아이가 살금살금 다가왔다. 또래보다 작은 그 아이는 또래보다 큰 내 앉은 키보다도 작다. 살그머니 다가 온 아이가 까치발을 하고는 겨우 내 귓가에 입을 올렸다.


“나 선생님 금방 보고 싶어서 또 왔어요.”


소곤소곤 귓가에 속삭이더니 그 작은 손이 포개고 있는 내 팔 사이로 쏙 들어왔다가 나갔다. 뭔가 딸그락하고 책상에 떨어져 보니 마이쮸 한 조각이다.


10분 전에 하원했는데 금방 보고 싶어서 또 왔다는 아이는 마지막으로 베시시 웃고는 손을 흔들고 교실에서 나갔다. 다시 엎드려 마이쮸를 만지작거리는데, 어쩐지 웃음이 난다. 계속.


(결국 이 마이쮸는 아까워서 못 먹고 있었는데, 한 주 뒤에 놀러 온 옆반 선생님이 홀랑 먹어버렸다.)


우리 아이가 미운 말을 쓴다며 걱정하는 부모님들도 계신다. 태권도장에서 형님들에게 배운 말, 유튜브에서 배운 말, 하루하루 자라면서 세상에서 배워 온 미운 말에 속상해하신다. 그렇다면 미운 말을 쓰는 아이를 타박하기보다 예쁜 말을 들을 수 있도록 기도하고, 예쁜 말을 들려주고, 예쁜 말들의 아름다움을 느끼도록 기억하여 돌려주어야 하지 않을까?


나도 그 예쁜 말들을 지켜주고 싶다. 아이들이 말하는 ‘예쁜 말을 할 권리’ 그리고 ‘예쁜 말을 들을 권리’를 지켜주고 싶다. 아이들에게 예쁘게 말하렴, 말하는 어른이 아니라 예쁘게 말해서 예쁜 말을 하고 싶게 만들고 싶다. 예쁜 말에 대한 권리를 지켜준다는 것은, 결국 아이들의 예쁜 삶의 권리를 지켜주는 것이기에.


noname01.jpg

“사랑해” (“응”)

“고마워. 그리고 내 말 들어줘서 고마워.”


keyword
토요일 연재
이전 04화쉼의 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