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의 위계

by 이수진

#어른이 주고 싶은 권리, 아이가 받고 싶은 권리 #어린이의 권리


권리의 위계(주인) Hierarchy of rights

“권리를 뺏기면 슬퍼”



*어린이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으로 대체하였습니다.


가람 : 내가 아프면 엄마가 슬픈 거 아니야? 주인이잖아.

나나 : 그래. 엄마 아빠가 우리들의 주인이잖아.

교사 : 엄마 아빠가 너희의 주인이라고?

다롱 : 왜냐하면 엄마는 요리를 해주고 아빠는 돈을 벌어오잖아요.

라니 : 나도 엄마 아빠가 우리 주인인 것 같아. 우리 집에서 가장 나이가 많으니까.

가람 : 토끼도 농부가 키우니까 주인이잖아. 나도 엄마, 아빠가 돌봐주니까 (엄마, 아빠가 나의) 주인이 아닐까?

나나 : 나도 (부모님이) 낳아주시고 길러주시니까 주인이라고 생각했어.

마음 : 난 아닌 것 같아.

나나 : 왜?

마음 : 음... 왜냐하면 자기 몸은 자기꺼잖아. 엄마 아빠는 주인이 아니야.

다롱 : 근데 아빠하고 엄마가 우리 집의 사장이잖아.

마음 : 아니야. 네 주인은 너야.

가람 : 좀 이상해. 그래, 우리는 토끼가 아니잖아.



권리의 주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많은 어린이들은 오랫동안 고민했다.


어느 때는 권리의 주인은 ‘나’라고 생각하는 아이들과 ‘부모님’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첨예하게 대립하기도 했다. 권리는 ‘나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을 때조차 권리가 ‘내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워하기도 했다. 교사는 답답하기도 하고 의아하기도 했다. 왜 ‘나에 대한 것’이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걸까?


이 문제의 답은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어린이들이 혼란을 겪고 있는 지점은 ‘어린이는 어른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것은 어린이들이 아직 어리고, 물리적으로나 경제적인 보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보호’와 ‘의존’ 역시도 어린이가 가질 수 있는 자연스러운 ‘권리’인데, 어느새 어린이의 권리가 어른의 ‘권리’인양 어른이 휘두르는 ‘권위’와 ‘힘’으로 바뀌어 있다는 점이다. 어린이가 당연히 가져야 할 이 권리를 어른은 자신의 힘으로 착각하고, 어린이를 좌지우지하는 근거로 삼아버린다.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권리를 가진 존재라고 말하면서도 어른들은 얼마나 자연스럽게 어린이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는지!


인스타를 비롯한 SNS와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 등 ‘내 아이’이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게 사진과 영상을 올리는 부모가 많다. 심지어 교사들도 그렇다. 예쁜 강아지 사진을 올리는 기분으로, 내 눈에 예쁘니 자랑하고 싶은 마음으로, 큰 고민 없이 아이들의 권리를 침해한다. ‘내 아이’가 아니라 ‘아이라는 존재’라고 생각한다면 성인을 대할 때와 마찬가지로 상대의 생각과 기분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아이라고 모른다고 생각하지 말자. 몰랐으면 싶은 마음은 아닌지, 모를거라는 나의 넢겨짚음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직접 질문해보자. 유치원생 정도만 되어도 아이들은 대답할 수 있다. “네 사진을 아빠/엄마 친구들이 볼 수도 있는 인스타그램에 올려도 되겠니?” 질문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질문을 해야한다는 생각을 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그러니 이렇게 권해본다.


위 대화의 말미에서 가람이는 나의 몸과 마음의 주체를 부모에서 나로 옮겨오는 첫 시도를 한다. 우리는 ‘토끼가 아니다’라는 말은 자신을 주체적인 존재로 인식한 첫걸음이 되어 이후의 어린이들의 권리의식에 큰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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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를 뺏기면 슬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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