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함께 할 권리
“아빠 엄마랑 같이 있을 권리가 있어.”
“가족이랑 같이 있는 권리? 좋은 것 같아.”
“가족이랑 같이 있을 때 기분이 안 좋을 때도 있지만 기분이 좋을 때가 더 많아.”
7살 어린이들을 맡을 때면 졸업에 즈음해서 항상 ‘졸업이야기’라는 책을 만들었다. 책에 담긴 구체적인 내용은 해마다 조금씩 달랐지만 각 아이들의 이야기를 한 쪽씩 담았다. 아이들의 사진, 그림, 인터뷰 내용 등을 담은 문집에 가까운 책이다.
인터뷰 내용으로는 ‘유치원에서 가장 즐거웠던 순간’, ‘초등학교에 간 내 모습을 상상한다면’,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 등이 있는데, ‘내 보물 1호’에 대한 질문은 빼놓지 않고 물어보았다. 이후에 책을 보며 유치원 생활을 돌아보았을 때 “이 때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은 ‘( )’였구나.”라고 말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즐거워하곤 했다.
포켓몬스터 카드, 터닝메카드 로봇, 내가 그린 그림과 같은 대답을 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가장 많은 아이들이 답했던 것은 ‘친구’, ‘선생님’과 같은 사람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어떤 대답이 가장 많이 나왔을까?
눈치 챘겠지만 ‘가족’이었다. 아빠, 엄마, 동생, 언니, 오빠, 형, 누나.
7살이면 만5세. 세상에 태어나 이제 막 5년의 삶을 산 아이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돈도 명예도 아닌 가족이다. 아이들도 안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항상 행복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아이들도 나름대로의 인생의 결을 만들어가는 때라 부모님과 자주 부딪친다. 오죽하면 미운 네 살, 쥐어박고 싶은 일곱 살이라고 뼈 있는 농담을 하겠는가. (사실 이 말은 굉장히 순화된 버전이고, 실제 7살 어머니가 상담하며 말했던 것은… 차마 글로 쓸 수가 없다.)
부모님만 힘든 것이 아니다. 아이들도 할 말이 아주 많다.
“수현이 때문에 미치겠어!”
기현(가명.7살)이가 버럭 소리를 지른 것은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각자에게 나눠준 감정 카드 중 분노 카드를 탁 내려놓는 기현이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기현이를 ‘미칠 지경’으로 만든 것은 다름 아닌 기현이의 네 살 된 동생 수현(물론 가명. 4살)이다.
“왜? 수현이가 어쨌길래?”
교사와 친구들이 궁금해하자 기현이가 이것저것 에피소드를 풀어놓는다. 애써서 정리한 장난감 통을 넘어뜨리거나 기현이가 소중하게 여기는 책을 찢기도 하고 밥도 잘 안 먹는단다. 기현이가 조금만 뭐라고 하면 바로 앙-하고 울어버려서 기현이만 혼나기 일쑤고, 오빠라고 봐줘야 하는 게 너무 많아서 ‘나도 어린이인데 너무하다’고 생각된단다.
얘기하다가 속상한 마음이 울컥 올라왔는지 콧물을 훌쩍이다가 결국 눈물도 한 방울 뚝 떨어뜨린다.
“야~ 내 동생도 똑! 같! 아!”
“우리 엄마도 맨날 나한테만 뭐라고 하고, 내 동생은 어리니까 이해해야 된대.”
너도 나도 기현이 편에 서서 말하는데, 동생 입장인 아이들은 눈치만 보고 입을 꾹~ 다물고 있다. 누나 입장인 교사도 기현이 편을 들어 말을 얹고 싶지만 동생인 어린이들 눈치가 보여 같이 입을 꾹~ 다물었다.
‘동생’들의 만행에 대해 이야기하던 아이들이 어느새 ‘동생 편’을 드는 부모님이며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듣고만 있던 ‘동생들’도 덩달아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속상함을 말하기 시작했다. 은근슬쩍 손윗 형제에 대한 불만도 나온다. 말리지 않으면 하루종일 가족 뒷담화를 할 기세다. 이런 날을 기다리고 있었나? 한참을 가족 이야기를 한 다음에서야 아이들의 감정은 가라앉았다.
얘, 얘들아. 그래도 너희들 가족을 사랑하지…?
살짝 비밀 이야기를 하자면 기현이가 적어낸 가장 소중한 보물은 ‘수현이’였다. 수현이 때문에 못 살겠다고, 미치겠다고 말하면서도 어딜 가든 수현이 손을 꼭 잡고 다니는 것은 기현이라는 것을 교사도 엄마도 알고 있다. 그러니 한 번씩 친구들과 투덜거리는 것 정도는 봐줘야지.
세상이 갈수록 삭막해진다고 한다.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약해진다는 말도 들린다. (이건 마흔에 성큼 다가 온 내가 어렸을 때부터 듣던 소리인데 대체 얼마나 약해진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는 가족이 하늘이자, 땅이다. 아이들이 발붙일 곳, 미래를 꿈꾸는 바탕이 된다. 가장 소중한 보물이자 안식처이다. 가족과 함께 하는 것은 아이들의 권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가족이 무너지는 사례들이 주변에서 자주 들린다. 부모의 선택으로 아이들의 권리가 박탈되기도 하고 사고며 전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서는 그저 안타까울 뿐이지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라면 아이들의 권리를 위해 어른들이 행복한 가정을 위해 더 노력해야하지 않을까?
인터넷 글을 보면 조금만 자존심이 상하면 바로 갈라서라는 댓글 판사들이 너무나 많다. 부모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면서 개인을 더 앞세우기도 한다. 부모이기 때문에 아이를 위해 무조건적인 희생을 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부모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부모가 아이를 선택한 것이기에 아이들의 권리에 대해 한 번 더 고려하고 지켜주는 것이 우리의 의무가 아닌가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