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에 걸쳐 연단되고 싶은 성품이 있다면 내게는 '겸손'과 '온유'이다.
높은 지위에 있거나 인생에서 큰 고점을 이뤘음에도 겸손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가진 생각과 그들의 행동을 볼 때마다 참 닮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겸손이 마음속에 베여 있는 사람은 자랑하지 않고,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할 줄 알고, 타인을 낮게 여기지 않고, 누구에게서나 어떤 상황에 놓여 있어도 배우려 하고 감사해한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자신의 부족함을 가리기 위해 자신이 이전에 무엇을 이뤘는지,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지나간 자랑거리를 내세우거나, 교묘하게 타인의 부족한 부분에 집중되도록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건강하지 못한 자아가 가진 못난 방어기제가 드러나는 것뿐이다. 그래서 아무리 가리려고 한들, 그런 행동은 사람들의 레이더망에 포착되어 오히려 더 못난 사람으로 여겨진다.
온유함은, 상황과 타인에 대해 사려 깊게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이다. 사려 깊게 생각하고 배려하려면 당연하게도 '인내'가 뒤따른다. 그리고 온유에는 긍휼과 용납함이 들어있다. 온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상대방이 부족하거나 실수를 해도 분을 내면서 자신이 화낼 권리를 정당화하거나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모독하는 오만을 부리지 않는다.
성경에 '온유함'에 대한 많은 구절들이 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민수기 12장 3절
성경을 읽다 보면 사건 중심으로 기억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흔히 모세 이야기에서 기억하는 모세의 모습은 담대한 행동력이 있을 뿐만이 아니라 성품적으로 '욱'하는 면도 있는 사람이다.
이집트에서 이집트 왕자로 입양되어 자랐던 모세가 자기 민족인 이스라엘 노예생활 중 감독관에게 폭력을 당하는 모습을 보고 그 감독관을 살해했다. 그리고 출애굽을 통해 광야길에서 백성들이 하나님이 지켜주시는 상황을 직접적으로 목도하고 경험했음에도 돌아서면 우상숭배와 힘들다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모습에 분노하며, 지팡이로 반석을 쳐서 물을 낼 때도 그 분노로 인해 하나님이 모세만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 없게 막으셨다. 그런데 성경은 모세의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다고 한다.
'하나님의 열심'이라는 책을 읽다 보면 모세가 처음부터 담대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평생에 걸쳐 인도하시면서 다듬어지고 단련되어 간 것이다. 예수님을 제외하고는 성경 인물 모두가 처음부터, 날 때부터 완성된 성품을 보여주는 경우는 없었다. 모세의 '온유한 성품'에 대한 평가도 그렇게 다듬어진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신약성경으로 넘어오면 온유함에 대한 가르침들이 더 풍성하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태복음 11장 29절
-- 고난의 짐을 짊어지고도 예수님으로부터 온유와 겸손을 배우면 마음이 평안할 수 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고린도전서 13장 4절
--이 말씀은 결혼식 주례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구절이다. 온유함은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될 수 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라디아서 5장 23절
--성령의 9가지 열매에도 '온유함'이 있다. 성령의 9가지 열매는 독립적이지 않다. 서로 다 연결되어 있다. 온유함 또한 나머지 8가지 성령과 별개로 열매맺을 수 있는 성품이 아니다.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디모데후서 2장 24절
--사람을 가리며 선별적으로 온유함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 대해서 '참으며' 온유하도록 하는 것이 진짜 온유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