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일상 묵상 15화

용납과 포용은 미덕이 아니다

용납과 포용은 사회 필수재다

by 제이와이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마음은 갈수록 빈곤해지는 것 같은 세상이다.

기술이 발전했고, 이전보다 노동시간은 줄었지만 사람들이 느끼는 노동의 강도와 피로도는 어쩐지 줄어들지 않은 느낌이다. 그리고 어느 때보다도 개개인의 마음속에 '이익' 중요도는 높아지고, '손해'에 대한 민감도는 높아졌다.

모든 예외적인 사건과, 상황에 대한 정보가 너무 넘쳐나서 생기는 불안이 사회 속에 암처럼 뿌리내리고 있는 듯하다.

'손해인줄 알면서도 손해 보면 바보'라곤 하지만, 모든 개인이 '이득'과 '손해'로 계산기를 두드리며 항상 이득만을 선택하는 삶의 방식만 고집한다면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 세상'은 붕괴될 수밖에 없다.

물론 호구는 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호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것과 동일한 것은 아니다.


갑작스런 사정으로 어느 대학의 교수가 오전에 휴강을 공지했는데 그걸 모르고 학교에 온 학생이 교수에게 교통비를 청구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돈을 지급받는 대가로 무언가를 제공하는 모든 직업은 '서비스직 '이 되어버렸다. 공교육을 제공하는 교사를 '교육자'의 역할에서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마땅이 자신들이 기대하는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부모들도 늘었다.

재밌게도 자신이 돈을 지불하는 입장일때는 상대방이 자신의 기대치에 어긋남 없이 행하기를 바라면서도 막상 돈을 받는 대가로 제공자가 되는 입장에서는 제공한 것의 수준과 상태가 아닌 오직 '시간'만이 돈의 대가가 되길 원한다. 결국 말로는 자신의 입장이 정당함을 주장하기만 모든 것을 '내 이익'중심으로 바라고는 이기적인 마인드가 자신에 대한 이중성을 드러낸다.


많은 사람들이 서비스를 받는 입장에서 언제나 '당연히' '나의 이득'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줘야 한다고 여기는데 이것은 고쳐야 하는 생각이다. 우리는 이미 수많은 편의와 이득을 누리고 있다. 예를 들어 일상에서 온라인으로 주문을 하고 집앞으로 물건을 받을때 '택배' 서비스를 이용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이동하지 않고 물건을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누린다는 것이다. 물론 그 대가로 비용이 지불된다. 하지만 그 지불은 365일 24시간 '단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서비스 제공에 대한 대가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래야 한다고 착각한다. 우리에게 닥친 불편, 손해를 결벽증 환자처럼 감지하고, 피하려는 것은 결국 자신의 마음을 옹졸하게 만들고,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끼치는 길로 이어진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행동과 상대방이 제공하는 결과 사이에는 우리가 보지 못한 '가려진 시간'이 존재한다. 예상되는 것과 다른 결과을 마주했을 때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던지 말든지 '손해 보기 싫어!'라는 생각이 마음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사람은 사실관계, 예측하지 돌발상황의 가능성은 배제하고 손쉽게 오직 상대방이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옥죈다.


살면서 악의적인 피해를 입게 되는 일도 있을 것이고, 그런 일들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나, 기사들도 많다. 하지만 그 경험이 모든 상황을 대변하지 않는다. 살면서 분명히 배려받은 일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배려란 주는 사람의 마음이기 때문에 배려를 받은 사람은 그것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

배려를 주는 사람이 천성적으로 선한 마음을 가져서 그런 행동이 몸에 익은 것일 수도 있겠으나 대부분의 많은 배려들은 자신도 누군가로부터 배려를 받은 기억이 있기에, 그 배려로 인해 긍정적인 힘을 느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상황도 이해할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이다. 그럼 힘이 용납과 포용이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흘러들어 갈 수 있어야 건강한 사회가 유지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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