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기억을 소환하며
(대학생의 취업 준비에 이어서)
내게 서류통과를 알려온 회사는 대기업의 IT계열사(A사)로, 3차 면접까지 진행되는 곳이었다.
그 당시 여러 대기업에서 실험적인 면접들을 많이 했더랬다.
특히 금융권으로 간 친구들을 보면, 지금 시대(?)에는 이해할 수 없는 '술자리 면접' 같은 것들도 있었고,
1박 2일 합숙 면접을 하는 곳도 있었다. 내가 들어본 일반 기업 면접 후기 중에서, 내가 경험한 면접만큼 특이한 면접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1차 면접>
1차 면접에는 4명이 함께 들어갔고, 그 앞에는 5명 정도 되는 면접관이 앉아 있었다.
면접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떨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유는 면접 내내 나에게 주어진 질문은 공통질문인 '자기소개'와 그 외 한 가지밖에 없었고 나머지 모든 질문은 다른 면접후보자들에게 쏟아졌기 때문이었다. '내 이력서가 다른 후보자들에 비해 그저 그랬나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 후 면접결과 메일을 받았다. 1차 면접 통과와 함께 2차 면접 안내가 적혀 있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줄 기회가 없었는데 왜 통과가 되었는지 알 수 없어 2차 면접 준비를 위한 감을 잡을 수 없었다.
<2차 면접>
2차 면접에는 3명이 함께 들어갔던 것 같다. 이번에도 나에게 질문이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어떻게든 나를 어필할 기회를 만들려고 살피는 중 면접관이 내 옆에 앉은 후보자에게 최근 이슈 되는 시사 내용을 물었고, 그 친구가 답변을 마쳤다. 그러자 면접관이 혹시 이 생각과 다른 생각을 '영어'로 말해볼 사람이 있냐고 물었다.
잠깐 정적이 흐른 후, 내가 손을 들고 답하겠다고 했다. 영어는 전혀 유창하지 않았지만 내 생각을 어떻게든 풀어냈다. 면접관의 표정을 살폈지만 딱히 흡족해하지도, 탐탁지 않아 보이지도 않아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을 수 없었다. 그게 면접 질문이 오가는 중 내 목소리를 낸 유일한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면접이 끝나려 하자 누가 묻지도 않았지만 다시 손을 들었다. '회사와 직무에 대해 궁금한 게 있는데 질문드려도 될까요?"
이건 내가 준비해 간 멘트였다. 면접관들은 궁금한 것에 대해 질문을 해보라 하였다.
그룹사의 비즈니스가 트렌드와 함께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는 내 생각을 깔고 그런 배경을 고려했을 때 그룹사 내에서 해당 회사의 역할과, 그룹사의 성장에 따라 해당 회사에 지원한 직무가 가질 역할에 대한 목표와 기대가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을 했다. 면접관들이 답변을 상세히 해주셨는데 사실 내게는 답변보다 그 질문을 통해 지원자로서의 내 관심과 열의를 그들에게 보여주었다는 것이 중요했다.
면접장을 나오는데 역시나 2차 면접도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한 것이 확신이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특정 후보자에게 질문 공세가 연속적으로 쏟아졌었는데 나에게는 아무도 관심이 없어서 그냥 그 자리에 멀뚱멀뚱 앉아있는 채로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느껴졌었기에.
일주일 후, 2차 면접 결과 메일을 받았다. 2차 면접을 통과했다는 내용과, 최종 면접인 2박 3일 합숙면접에 대한 안내였다. 당시에는 왜 통과되었는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지만 나중에 선배들에게 물어보니, 자소서에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거나, 통과시키는 게 맞을지 애매한 후보자에게 질문이 집중되는 편이며, 확신이 있는 후보자에게는 질문을 적게 한다고 했다.
<2박 3일 합숙면접-최종면접>
2박 3일간 무슨 면접을 한단 말인가. 인터넷을 통해서도 후기를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합숙면접장에는 총 13명의 후보자들이 모였다. 그리고 그 인원은 3명으로 구성된 3개의 조와 4명으로 구성된 1개의 조로 편성되었다.
첫 번째 미션은, 조별로 의상 콘셉트를 기획하고, 동대문 시장에서 옷감을 구해 옷을 디자인한 후, 그 옷과 함께 기획안을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패션유통그룹의 IT회사 면접을 지원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경영학을 전공한 나를 제외한 나머지 12명의 후보자들은 대부분 전산전자, 컴퓨터공학 등의 이공계 전공자들이고 그들 역시 IT회사의 IT직무를 지원한 사람들이었다. 모두에게 동등하게 당황스러운 과제였지만 어쩌겠는가. 모두 바로 조별로 모여 미션에 뛰어들었다.
오래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우리 조는 어떤 논리로 그 결론에 도달했는진 모르겠으나 25~35세의 커리어우먼을 타깃으로 한 사이버틱한 의상 콘셉트를 기획의 줄기로 잡았고, 바로 동대문으로 갔다. 사이버틱한 느낌을 주는 옷감을 찾기 위해 돌아다니다가 빛을 받으면 은색 빛의 광택이 나는 파스텔 녹색의 옷감을 발견했다. 옷감을 떼고, 바느질세트, 재단용 가위를 구매해서 자리로 돌아왔다. 시간에 쫓기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역할 분담을 했다. 한 명은 PT용 기획서와 발표를 준비하고, 두 명은 옷을 제작(?)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IT직무를 지원한 사람들이었다. 초등학교 때 배운 바느질을 가끔 구멍 난 양말을 기울 때나 썼지 면접자리에서 쓰게 될 줄 누가 알았는가. 반팔의상을 만들기 위해 천을 반으로 접고, 접힌 부분에 초크로 반원을 그린 후 가위로 오려냈다. 그리고 양옆에 팔이 들어갈 부분을 몸통과 떨어질 수 있게 자르고, 앞/뒷 면이 될 옷의 가장자리를 꿰매었다. 엉망진창인 바느질이지만 반팔 의상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것을 입고, 면접관들과 후보자들 앞을 지나가며 일종의 '패션쇼'를 해야 했다. 의상의 크기로 보아 입을 수 있는 건 여자인 나 밖에 없었다.
제작한 반팔 천(?)을 옷위로 덧입었다. 다른 조원이 준비한 기획안이 스크린 위에 쏘아지면서 누가 봐도 이상한 패션 콘셉트를 설득하기 위한 PT가 시작되었고, 나는 고개를 들고, 한 손을 허리에 얹은 후 반원으로 앉아 있는 청중들 앞을 느릿하게 거닐었다.
이 면접 기간에는 자신을 세뇌시켜야 했다. 나는 뭐든지 해내야 하고,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얼굴에 철판을 깔고 손발이 오그라들 순간을 견뎌내야 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 뒤로 이어지는 면접들은 이런 것들이었다.
1) 사업기획서 작성하기(조별): 총 3시간이 주어지며, 그중 인터넷 검색 시간은 1시간만 주어지며, 그 이후에는 인터넷 없이 사업기획서 완성해야 함
2) 사업기획서 작성 중 개인과제 하기: 사업기획서에 올인하고 있는데 갑자기 개인 돌발과제가 있음.
30페이지 정도 되는 얇은 책을 읽고 한 장 요약하기(사업기획서 작성하는 3시간 내에 같이 끝내야 함)
3) 기사 핵심 내용 정리하기(개인): IT트렌드와 관련된 어떤 심층기사가 제공되었는데 그걸 10분간 읽고 핵심 내용이 무엇인지 1분(정확히 몇 분이었는지 기억은 안 남) 내로 설명하기.
사실 IT를 '잘' 알지 못했던 나는 그 당시 떠오르는 PaaS, SaaS의 개념을 그날 처음 기사 내용으로 접했다. 기사의 내용을 봐도 내가 이해를 맞게 한 것인지 확신이 없어서 발표할 때 '제가 IT전공이 아니라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이라는 밑밥을 깔고 시작했는데, 설명이 끝나자 면접관 한분이 잘 정리했다고 본인이 이해한 것에 대해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고 말해주셨다.
4) 물건 팔기: 내가 지금 가진 물건 중 하나를 선택해서 면접관들 앞에 세일즈 하기.
(즉, 해당 물건이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영업하라는 것)
나는 볼펜 한 자루를 팔았다. 여러 차례의 설득을 펼친 끝에 사겠다고 손을 들어주는 면접관이 한분 계셨다.
5) 찬반토론: 2개의 조가 찬/반 역할을 정한 후 조원들이 차례대로 상대방 조원과 1:1로 맞붙으며 논지를 주장하는 방식인데, 토론을 하는 중에 갑자기 찬/반 입장을 바꾸라고 한다.
그 외에도 면접과정이 더 있었는데 이 내용들은 모두 1박 2일에 걸쳐서 진행되었는데 이 중 어떤 것들을 첫째 날 하고, 어떤 것들을 둘째 날 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첫째 날은 의상제작+패션쇼뿐만 아니라 더 큰 충격이 남아있었다.
때는 저녁 10시 50분 경이되었을 때였다. 첫째 날의 마지막 면접이라고 생각했던 미션이 끝나고, 이제 하루의 일정이 끝나나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면접관 중 한 명이 어제가 무슨 날인줄 아냐면서, 수능 날이라고 했다.
그래서 수능과 관련한 오늘의 마지막 미션이 남았다고 했다. 그것은 바로 수능에 출제된 영어 시험을 푸는 것이었다. 비몽사몽간에 풀었을 것 같지만 면접의 일환이었기 때문에 긴장감을 가지고 할 수밖에 없었다.
영어 수능 미션까지 다 끝나고 나서야 1일 차 면접 일정이 종료되었다.
+놀랍게도 면접이 끝날 때 알게 된 사실은 이날 친 내 수능영어 결과가 만점이었다는 것이다. 살면서 수능 모의고사 영어조차도 만점을 받아본 일이 없다. 대학생 때 다녀온 어학연수 기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는 것에 새삼 보람찬 마음이 들었다. (03화 22살, 필리핀에서의 어학연수)
2박 3일 마지막 날 면접은 바로 '미니 체육대회'였다. 단체 줄넘기, 2인 3각 달리기, 피구 등이 있었다. 그리고 이 미니 체육대회의 확장판을 입사 후 경험하며 다시 한번 놀란다. 회사가 체육대회에 얼마나 진심인지... 나와 내 동기들은 전문 치어리더팀으로부터 치어리딩 안무를 배우게 된다. 그리고 경기에서 능력을 한번 발휘한 이력이 있는 직원은 해외 끝장나가 있는 동안에도 연락이 와 체육대회 전 최종 연습 기간에 맞추어 입국해 달라는 요청이 올 정도였다.
모든 면접이 끝나고, 시상이 있었는데 면접관들 투표에 내가 MVP로 뽑혔다. 극내향형인 나는 면접 기간 동안 다른 면접후보자들이나 면접관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거는 등 사교적인 모습을 보이지도 못했고, 나서서 주목받는 행동을 보여준 적도 없었다. 다만, 면접기간 동안 그 과정과 경쟁을 '즐겼던'것 같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스스로를 세뇌시켜 모든 면접 과정을 다 격파해 버리겠다는 승부욕이 결과에 영향을 준 것도 있는 것 같다. 파란만장한 면접과정 끝에 4명의 동기와 함께 최종합격의 결승선을 통과했다.
이 회사의 이런 스파르타 형태의 면접은 내 이전 선배 기수와, 내 기수를 끝으로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래서 내 동기들은 고강도의 업무 환경 속에서도 꽤 긴 시간을 함께 단단하게 버텨낼 수 있는 사람들로 뽑혔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