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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준희 Oct 19. 2023

음악은 나의 삶을 빛나게 한다 / 열한 번째

피아니스트 선우예권과 라흐마니노프

 선우예권의 피아노 리사이틀을 보고 왔다. 난 그가 선택하는 레퍼토리가 참 좋다. 그리고 사람들과 섞여 인연을 엮어가는 모습이 보기 좋다. 그는 클래식음악이 일부의 전유물이 아니고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기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하곤 한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를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우승한 것을 계기로 대중에 알려졌지만 그는 서울예고를 다니다가 전액장학금을 받으며 커티스 음악원에 입학했고 그 이후에도 미국과 독일의 명문음대를 다니며 실력을 쌓아가고 있다. 그는 음악만을 바라보며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그가 선택하는 프로그램은 대중을 모으기 쉬운 곡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의도가 당당하게 드러나는 곡이다. 10월 18일 예술의 전당에서 라흐마니노프를 주제로 펼쳐진 공연에서 첫 곡은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을 브람스가 왼손을 위한 샤콘느 d단조로 편곡한 곡이었다. 그는 의자에 앉은 후 오른손을 뒤쪽으로 두고서 왼손만으로 샤콘느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공연장의 모든 사람이 숨을 죽이고 그의 연주에 집중했다. 바이올린은 피아노와 달리 반주를 할 수 없는 악기이니까 한 손으로 연주하도록 편곡했을 것이다. 샤콘느는 현란하게 음이 흘러가는 곡인데 활로 긋는 수많은 음들을 손가락으로 눌러갔다. 그 자리에는 위대한 요한 세바스찬 바흐와 놀라운 요하네스 브람스가 머물러 있었다. 난 그들의 영혼이 무대를 휘감는 것을 온 마음으로 느끼며 울컥했다. 그리곤 온몸으로 바흐의 슬픔과 브람스의 슬픔을 그리고 선우예권의 슬픔을 알아버리고 말았다.


 선우예권은 곡을 대할 때 작곡가를 우선 생각한다고 했다. 그가 해 온 인터뷰들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자기를 내세우려고 하기보다 작곡가의 의도를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애쓴다는 걸 알 수 있다.


 두 번째 곡은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건반을 위한 파르티타 2번 c단조였다. 신포니아, 알르망드, 쿠랑트, 사라방드, 론도, 카프리치오 이렇게 여섯 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바흐는 원래 건반 연습용으로 파르티타를 작곡했다고 하지만 그 곡이 지닌 불가사의한 정신세계를 가늠하기도 어렵다. 나에게 있어서 바흐처럼 서정적인 음악은 없다.


 인터미션 후 2부에는 라흐마니노프의 변주곡 두 곡을 연주했다. 처음 곡은 바로크 시대 작곡가인 코렐리가 ‘라 폴리아’ 선율에서 따온 주제를 테마로 라흐마니노프가 우주만큼 폭넓고 화려하게 변주를 한 곡이었다.

 ‘라 폴리아’는 바로크 시대 작곡가들이 즐겨 연주했던 선율로 포르투갈에서 15세기 무렵에 생겨났다고 한다. 귀에 익숙한 선율인데 코렐리의 것이 가장 유명해서 ‘코렐리 테마’라고 불린다. 흥얼거리면서 따라 할 수 있는 선율이다. 그렇게 단순한 선율을 라흐마니노프는 무궁무진하게 변주를 했다.


 두 번째 곡은 쇼팽의 c단조 전주곡을 테마로 비장하게 연주했다. 처음엔 원곡이 장송행진곡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만큼 단순하고 묵직한 가락으로 시작했는데 점점 쇼팽의 화려한 기교를 담아내도록 진화해 갔다. 쇼팽인데 라흐마니노프이고 라흐마니노프지만 쇼팽인 그런 곡이었다.


 전체 레퍼토리가 단조로 이루어져 슬픈듯했지만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는 귀한 공연이었다.


 앙코르공연을 하러 나올 때 마이크를 들고 나와서 어눌한 말투로 이야기를 했다. 연주하는 자신보다 더 집중을 해주어서 감사하다고 했다. 그건 맞는 말이었다. 청중의 몰입도는 예술의 전당의 여느 공연과는 차별화되었다. 수준 높은 청중이었고 다른 몇몇 클래식 연주자들이 아이돌 같은 인기몰이를 받는 것과는 비교가 된다.

 앙코르곡으로 연주회날이 생일인 지인을 위해서 ‘해피 버스데이 투 유’를 연주한 후 슈만의 ‘헌정’을 들려주었다. 세 번째 곡은 이번에 새로 낸 음반에 수록된 곡인 라흐마니노프의 전주곡 g단조를 들려주었다. 다른 한 곡을 더 연주해서 네 곡의 앙코르곡을 들려주었다.


 자기만의 스토리가 담긴 곡선정에다가 뛰어난 연주 그리고 청중과의 소통에도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 참 아름다운 연주자다. 선우예권이 나아가는 길을 난 옆에서 따라가며 박수를 보낼 것이다. 그는 언제나 나의 마음을 기쁨으로 채워주기 때문이다. 다음 연주가 벌써 기다려진다. 그의 앨범을 한 장의 씨디만 꽂을 수 있는 내 차 플레이어에 넣어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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