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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준희 Sep 20. 2023

음악은 나의 삶을 빛나게 한다 / 열 번째

스즈키 히데미, 바로크 첼리스트이며 교육자

 최인아책방에서 장인의 숨결 - 스즈키 히데미 렉쳐 리사이틀을 한다고 인스타그램에 나온 것을 보고 얼른 예매를 했다. 거트카페서울이 대관해서 여는 프로그램이었는데 거트카페서울은 바로크 음악이 바흐시대에는 현악기에 양의 창자로 만든 거트현을 사용했고 카페에서 커피 칸타타가 초연될 정도로 대중과 소통하였다는 점에 착안하여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그런 취지에서 책방에 모여 음악을 듣고 히데미 선생님이 쓰신 책의 렉쳐 콘서트를 열게 된 것이다. 최인아책방에서 하자는 의견은 히데미 선생님이 직접 제안하셨다고 한다.


 큰 키의 단정한 노신사가 높은 천장까지 가득 책이 쌓인 책장을 옆에 두고서 바흐 이전의 시대에 만들어진 악기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연주했다. 거트현은 요즘 쓰는 줄보다 둔한 듯하면서 작은 소리가 나는데 히데미 선생님은 정확하게 물 흐르듯 연주했다. 고정핀을 사용하지 않고 양 무릎사이에 첼로를 낀 채로 짧고 끝이 뾰족한 바로크 활을 재빠르게 움직이면서 연주했다. 코 앞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던 나의 자리는 축복받은 자리였다. 두 번째 줄이었지만 아무도 나의 시야를 가리지 않았다. 앞에 앉은 사람이 연주 중에 연주곡목이 쓰인 종이를 들고 보려는 걸 난 손을 내밀어 눌러 버렸다. 그렇게 나의 시야는 확보되었다. 

 

 그가 연주하는 첼로는 크레모나 악기공방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안드레아 아마티가 만든 악기이다. 아마티는 1500년부터 1577년까지 살았는데 아마도 아마티가 프랑스 왕가를 위해 만들었을 거라고 한다. 악기의 허리 부분엔 바로크 스타일의 그림이 그려져 있고 몸통에는 커다란 글씨로 글귀가 새겨져 있다. '그분께서 온 세상을 가득 채우실 때까지...'였는 지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기막힌 두 문장이었다. 아마도 아마티가 같은 시기에 만든 악기 중에서 소리가 나는 유일한 악기일 것이라고 한다. 남아있는 악기들은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렇게도 오래된 악기가 잘 보존되어 온 것도 놀랍고 그 악기를 삼십 년 동안 혼신을 다해 연주해서 감동을 주며, 최고 경지의 음악을 들려주는 히데미 선생님도 놀랍다.

 

 히데미 선생님이 쓴 책은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여섯 곡을 강의한 마스터클래스 시리즈를 묶은 내용이다. 책에는 여섯 모음곡 악보도 끼워져 있는데 피아노 악보와는 달리 반주파트가 없는 첼로악보여서 노래 부르듯이 한 손으로 또는 양손으로 연주해 보면 듣기만 하던 것과는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 같다. 악기를 능숙하게 연주하는데만 골몰한 분이 아니고 악기의 역사와 그 시대의 연주와 해석을 어떻게 이 시대에 풀어나갈 것인지 고민하며 살아온 분이어서 음악을 바라보는 시각이 특별한 것 같다. 평생을 바로크 음악과 함께한 외길 인생을 사셨다.


 스즈키 히데미

 바로크 첼리스트

 고베 출생(1957)

 브뤼셀 왕립음악원 최초의 바로크 첼로 교수 역임(1994~2000)

 바흐 콜레기움 재팬의 창립 멤버이자 수석 첼리스트(1990~2014)

 현) 동경 국립 예술대학(고음악과), 동경 음악대학 첼로 교수

 고베시 체임버 오케스트라 음악감독(2021~ )


 공연시작 전에 거트 카페 서울에서 예약확인 문자를 보내면서 히데미 선생님께 질문할 내용이 있으면 이메일을 보내달라고 해서 보냈는데 빠듯한 일정으로 인해 히데미 선생님께 질문이 전달되지 못했고 대신 거트 카페 서울 대표님이신 이현정 선생님이 연주 후에 답변을 주셨다. 다음은 이메일로 주고받은 내용이다.


   

   안녕하세요. 9월 17일 최인아책방 공연을 예약한 000입니다.

   질문 내용은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과 골드베르그 변주곡을 즐겨 연주하는데요.

   그때마다 드는 의문점은 악보에 강약이나 템포의 지시가 하나도 없는 점입니다.

   바로크 음악에 이런 변화를 주면 안 되는 걸까요.

   니콜라스 아르농쿠르의 <바로크 음악은 '말'한다>에서 바흐와 동시대를 살았던 음악가들이 

   바흐를 비웃었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악보에 악상들을

   적어놓은 바흐에게 다 아는 것을 왜 적느냐고 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바로크 시대 음악에도 음악에 변화를 주며 연주했지만 악보에 적어 놓지를 않아서

   전해지지 않은 것일까요.


   히데미 선생님은 어떻게 연주하시나요.


   선생님의 첼로소리를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안녕하세요, 000님.

                    먼저, 신속하게 메일을 확인하지 못하여 000님의 질문을 전달하지 못한 부분, 사과드립니다.

                    일정이 너무 빡빡하다 보니 일처리가 미숙했습니다.


                    어제 공연 마치고 궁금해하셨던 내용에 대해 제 의견을 드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스즈키 히데미 선생님께 여쭤보고 싶으셨던  부분이니 제가 잠시 후에 공항에 모셔다 드릴 때,

                    한 번 여쭤보겠습니다.


                    어제 좋은 시간 보내셨는지요?

                    함께 자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거트 카페 서울



   안녕하세요, 이현정 선생님.

   어제의 연주는 감동이 가득한 공연이었습니다.

   제가 축복받은 자리에 앉아 있어서

   히데미 선생님이 잡고 있는 첼로의 현과 활이 닿으면서 소리가 나는 장면을 

   바로 앞에서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공연장에서도 경험할 수 없었던 놀라운 시간이었습니다.

   그 아름다운 악기와 활을 바라보며 

   그렇게 오래된 악기에서 음악을 불러내시는 히데미 선생님이

   마법사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현정 선생님과의 듀엣은

   또 다른 풍부함을 주었습니다.

   다시 경험하고 싶은 행복한 시간을 마련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현장에서 다 팔려서 가져오지 못한 책은 주문을 했습니다.

   책을 받으면 천천히 읽으면서 바로크 음악에 빠져들어 보겠습니다.



 바로크 시대의 악기로 바로크 음악을 연주한다는 것은 고리타분한 시도가 아니고 어쩌면 가장 신선한 도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많은 의문점을 안고서 도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연주자와 청중은 최선이 무엇일까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될 것이고 그 과정을 통해 귀중한 뭔가를 찾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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