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글 Dec 02. 2023

잘 지내고 있나요?

목적 없는 안부 인사가 고맙다.

잘 지내고 있느냐고, 친구가 오랜만에 안부를 물어오며 말했다.


“뭐 보증이나 이런 게 필요해서 그런 건 아니야. 결혼하는 것도 아니야. 그냥”


그냥.


생각나서 연락했다고.

그냥이라는 말이 이렇게 고맙고 반가운 말이었던가?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과 연락하고 지내는 일이 점점 어려워진다. 각자의 바쁜 생활 속에 집중해 살다 서서히 멀어져 연락이 끊긴 친구들도 많다.


나는 사람을 참 좋아해서, 그만큼 애틋함이 남아 있기에 종종 그들을 생각하고, 잘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도 들곤 하지만 그럼에도 선뜻 연락하는 것이 쉽지 않다. 자주 시간에 쫓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아마 나뿐만은 아닐 거란 걸 잘 알기에 이런 연락이 더더욱 고맙게 느껴진다.


반면에 그토록 사람 좋아하는 내가 단호하게 연을 끊을 수밖에 없는 상황들도 생겨났다.






어느 주말 친구를 만나러 가는 지하철 안에서 걸려온 전화를 무심코 받자, 회사에서 나를 잘 따르던 동생 A가 다급한 부탁을 청해왔다. 그때의 난 바쁜 사회에 갓 적응해 동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꽤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때 묻지 않았었고, 세상 물정에 어두웠고, 사람을 잘 믿었다. 그래서 휴대폰 명의를 빌려주는 것쯤은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일을 잊고 지내는 동안 A는 회사를 그만뒀고, 그로부터 몇 개월 후였던가. 생전 처음 집으로 채권추심 독촉 안내장이 날아왔다. 당연히 내가 사용하는 통신사가 아니었다. A는 금방 명의변경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요금납부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태도에 화가 나서 빠르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A에게 연락했다.



A는 곧 해결할 거라고 말했지만 상황은 점점 심각해졌다. 되려 명의자 본인인 내 번호로 지속적인 미납 안내 연락이 오는 바람에 나는 여러 달 동안 사용하지도 않은 휴대폰 요금을 지불할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회사에서 명품을 자랑하고 계속 무얼 사고 싶어 하고 사들이던 그 애의 씀씀이를 떠올렸다. 얘 진짜 큰일 날 애다. 진지하게 걱정이 되어 화 안 낼 테니 만나자고 설득해서 어렵게 자리를 만들었다. 만나서 밥은 조용히 먹이고, 커피를 마시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듣고 보니 어린 나이에 가정 형편도 좋지 않은데, 벌써부터 빚도 꽤 있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는 네가 잘 모르고 상황이 힘들었던 건 맞으니 내가 도와준 셈 칠게. 너 벌써부터 그러면 진짜 큰일 난다, 앞으로를 진지하게 계획해 봐. 이제부터라도 잘하면 돼. A는 면목없다는 듯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손가락 걸고 약속까지 하며 헤어졌지만, 변하는 건 없었다.


친구와 술 한잔 하며 내 친구 얘긴데.. 얘를 어쩌면 좋지, 하며 조용히 고민을 털어놓았다. 불같은 성격의 친구는 내 이야기임을 눈치챘고 그 X 누구냐며, 쫓아가서 한 대 때려줄까, 당장 고소하라며 화를 냈다.


A와 연락이 닿지 않아 그 애와 친하게 지내던 Y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들리는 이야기는 더 가관이었다. 소소하게 여러 차례 빌려준 돈부터 시작해서 정수기 렌탈비용까지 꼬박꼬박 내주고 있지만 자의로 제공했으니 기부한 셈 치겠다고 했다. 기가 찼다. 그냥 얘랑은 시간, 감정 낭비할 필요도 없고 싹을 잘라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휴대폰 해지할게. 다신 연락하지 마. 잘 지내.”


그제야 A는 본의 아니게 미안하다며 언젠가는 꼭 갚을 거라는 답변을 보내왔고, 나는 갚을 필요 없다고, 다른 누구한테라도 절대 피해 주지 말라고, 혹여라도 마주치면 그땐 가만두지 않겠다는 말을 끝으로 A를 내 인생에서 완전히 차단해 버렸다. 저주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저 더 이상 나빠지지 않고 누군가에게 피해나 주지 말고 잘 지내기를 바랐다.


점심시간에 휴대폰 대리점에 가서 그새 늘어난 요금을 추가로 결제한 후, 회선을 해지했다.




그러고 나서 며칠 후 뜬금없이 M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누나, 소식 들었어. 걔 미친 거 아니야??”

“뭐야. 네가 어떻게 알아. 혹시 Y한테 들었어?”


창피해서 내 친구들한테도 못한 이야기를 고새 Y가 3자에게 전했고, 퇴사 후 딱히 연락도 없다가 모른 척했어도 되었을 걸 굳이 내게 이야기하는 M의 심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기분이 나빴지만, 뭐 Y랑 M이랑 더 친하니까 나한테 들은 이야기 둘이 했을 수도 있겠지. 말한 내 잘못이 크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보통 때는 연락을 하지 않던 M의 이런 메시지는 참으로 뜬금없는 것이었다.


“그래 그랬지. 근데 이제 다 끝난 일이니까 더 이상 이야기 하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네..”



그런데, 이어지는 M의 말.. 은 나를 더 화나게 만들었다. 어떤 말을 했을까?




“응 알겠어. 당연하지. 걱정 마!


근데 혹시 나 돈 좀 빌려줄 수 있어..?”




M이 뇌가 참 맑은 아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이런 상황에 이런 전개로 이어서 하는 말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뜬금없이 날아온 돌에 머리를 아주 세게 맞은 것 같았다. 머릿속에서 온갖 욕들이 한참 동안 폭죽처럼 터졌다. 가까스로 참고 한마디의 말만 남기고 바로 차단해 버렸다.


“꺼져..”


갑자기 인생이 피곤해졌다. 너희 셋 다 다신 보지 않는 걸로..


그로부터 몇 년이 흐르고 인스타그램 계정을 누군가 팔로워 해서 보니, A였다. 와, 어마어마한 XX이네.. 그래, 이런 애한테 화내는 에너지도 아깝다. 생각하지 말자. 그냥 차단.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살이 어려울 땐 서로 돕고 살아야겠지만 기본적인 예의는 갖춰야 했다. A는 본인이 벌인 일을 신경 쓰지 않고 나몰라라 했으며, M은 그 이야기를 시작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그때로서는 화가 앞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후에도 노력여부에 상관없이 관계에 실망하는 일들은 꽤 많이 일어났지만, 그렇다고 사람에 질리고, 사람이 다 싫어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좋은 사람들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고 생각하기에. 해로운 사람은 일종의 스팸 메시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나에게 있어 아무런 의미도 없고, 신경 끄면 아무런 영향력도 나에게 행사할 수 없는 딱 그런 존재인 걸로 생각하면 된다.




“하글이~ 낼 겁나 춥대~

낼 입을 옷 젤루 따스운 걸로 세팅해 놓고 자~“


내겐 뜬금없이 이런 연락을 주는 친구들이 더 많다. 소중한 사람들에게 잘하는 것에 더 에너지를 쓰고 싶다.


되려 연락을 자주 못하는 편인 내가 오래간만에 친구들에게 연락할 때 이렇게 인사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SNS 피드를 구경하다 본 짤을 예시로 첨부한다.




 



  

   



작가의 이전글 요즘 글을 쓰면서 생각한 것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