씩씩한 당신 (6)

살아간다는 것

by 여름타자기

7. 살아간다는 것.




7월 말 평택 동리에 폭격이 시작되었다. 득무는 겨우 기어서 집 안으로 들어섰다. 다행히 이상득씨네 집은 무사했다. 형철을 보고 있었던 주영은 아이를 꼭 끌어안고 방구석에서 사색이 되어 있었다. 여전히 귀는 먹먹하고 사방은 조용하다.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득무는 주영에게 형철이와 꼼짝 말고 방 안에만 있으라 이르고는 다시 밖으로 나와 옆 방의 시모와 시부를 확인했다. 그들은 살아있었다. 득무는 고무신을 거꾸로 신은지도 모른 채 사립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높은 지대에서 바라본 마을의 모습은 말이 아니었다. 잿더미가 되어 있는 집들, 슬레이트 지붕이 무너진 창고, 피어오르는 연기가 보였다. 다행히 주영의 집은 폭격되지 않았다. 득무는 내달렸다. 김천네가 마당에서 울고 있다. 그런데 김천네 옆으로 있어야 할 명자의 집이 없다. 득무는 마당에 들어섰다. 웅덩이들. 연기들. 그리고 폭삭 내려앉은 집더미. 명자와 고모가 죽어있었다.


그날 오후 재원과 인민복을 입은 앳된 남자 몇 사람이 뒷산 양지바른 곳에 빠르게 땅을 팠다. 득무는 함께 삽을 들었다. 주변 사람들이 말렸지만 막무가내였다. 해가 지기 전 그들은 뒷산 구덩이에 명자와 고모를 묻었다. 관도 없었다. 주영은 형철을 업고 닭똥 같은 눈물을 계속 쏟았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온 후 재원은 멍하니 허공만 보는 득무를 보며 어렵사리 말을 건넨다.


“밤에는 안심하오. 어두우니 폭격도 쉽지 않을 거요.”


득무가 입을 열었다.


“저희도 피란 갑시다. 부산이든 대구든 걸어서라도 갑시다.”


득무의 말에 재원은 헛기침을 하며 등을 돌려 눕는다. 득무는 생각한다. 어차피 나중에 죽으나 지금 죽으나 사람이란 죽을 운명에서 달아날 순 없지만 개죽음은 되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오늘 아침 명자의 발랄했던 목소리며 얼굴이 자꾸만 생각난다. 그리고 구덩이에 누운 명자의 얼굴. 그리고 고모의 모습. 삶은 언제나 우리에게 새로운 풍파를 주지만 씩씩한 마음으로 이를 받아내었던 지난날들이었다. 그건 아마 득무가 본인의 어머니로부터 받은 유일한 자산일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화가 난다. 얼마 전 평택 동리로 밀고 내려온 피란민들에 섞여 함께 내려갔다면 이런 일들은 없었을 것이다. 고모가 만일 다치지 않아서 명자도 함께 부산에 갔더라면. 내 남편이 당원이니 너도 안심하라고 말했던 순간들이 자꾸만 되풀이되어 머릿속에 떠오른다. 득무는 이불에 고개를 깊게 파묻었다. 깊은 외로움과 슬픔이 그녀를 덮쳐왔다.


다음 날 득무는 일어나 소세를 하고 마당을 쓸었다. 그리고 시아버지 청주 한 병을 벽장에서 꺼내어 뒷산을 올랐다. 절을 하고 명자와 고모가 묻힌 곳에 술을 쏟아부었다. 다시 산을 내려와 밥을 짓고 형철이를 깨끗하게 목욕시켰다. 가족들과 아침밥을 먹고, 상을 치운 후 아랫집 주영, 시모와 함께 여느 때와 같이 밭으로 나갔다. 목이 막히면 숭늉을 벌컥벌컥 들이켰고, 중간중간 앞치마에 코를 풀었다. 형철이 보채기 시작하자 그를 업었다.


“채훈이는 대구로 빨리 잘 갔네. 너도 내려가.”


무심하게 건넨 말에 주영의 손이 잠시 멈칫한다. 그때였다. 밭일을 하는 세 사람 앞에 지프차가 멈춘다. 인민복을 입은 사람이 내린다.


“이상득 씨 가족 되는 분들 이시오?”

“네 그런데요. 무슨 일 있슈?”


시모가 일어선다.


“이상득 씨가 이 동네 대한청년회랑 관련이 있다는 제보가 있었소.”


시모의 표정이 얼어붙는다.


“…그. 그런 적 없어요!!”

“박채훈. 어린놈이 이 동네 경찰들 정보원이더군. 추천인이 이상득 씨라던데. 대한청년단은 마을 유지가 보증을 서주지 않으면 들어갈 수가 없다는 거 잘 알지 않소.”


주영의 손이 파르르 떨린다. 형철은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영의 팔을 자꾸 당기며 놀아달라고 조른다.


“… 일단은 이상득은 저희 아버님이 맞는데, 남편이 저녁때 집에 오니까 그때 소상히 물어보세요. 저희 남편이 이재원이라고 당원이유. 대한청년회랑 즈이 집이랑 관련이 있을 수가 없는 게 당연하지 않겠소?”


그는 득무를 노려보다 지프차를 타고 떠난다. 시모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주영의 눈에서 눈물이 툭 하니 떨어진다. 진동과 함께 굉음이 메아리쳐 들려온다. 다시 폭격이다. 그들은 순간적으로 납작 바닥에 엎드린다. 바람이 분다. 향긋한 들깨 줄기가 바람에 따라 흔들린다. 형철이 울며 일어서려 하자 득무가 그를 꼭 껴안는다. 먼지 같은 목숨이었고 죽음이 흔했지만 살고자 하는 본능은 그보다 더 강했다.










찌는 듯한 여름 한 철, 인민군은 계속 남하하며 세력을 키워갔다. 그만큼 재원의 역할도 커졌다. 그런 그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바로 노동자 출신의 당원들이었다. 실상 재원이 남로당원만 아니었다면 지역 유지인 그의 집안의 재산은 몰수의 대상이고, 구금이 될 수도 있었다.


재원 역시 미묘한 신경전을 느꼈다. 그럴수록 재원은 사상에 충성도를 증명하기 위하여, 안면이 있는 이들이 붙잡혀 와도 반동 활동을 했다면 봐주지 않았으며 설사 그들이 즉결처분 대상이 되어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선고문을 읽어나갔다.


가끔 과거를 청산한다는 명목 하에 트집 잡기 식 색출을 하거나 개인 이득을 취하는 모습을 볼 때 재원은 참지 않았다. 그는 충실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체제에 충실할수록 그의 마음속에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이 커져갔다.


모두에게 있는 그 확신. 그것이 그에게는 없었다. 최초 만주에서 학문으로 접한 이 사상은 확신보다는 의심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그에게는 호기심의 대상이었던 공산주의가 지금은 절대적인 기준이 되어 많은 것의 가능성을 막아버리는 듯한 답답함도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일제시기 친일을 했던 이들이 그대로 경찰과 국군, 기득권이 되었던 해방 직후의 혼란을 떠올리면 재원은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 오늘 어떤 사람이 채훈이가 경찰 정보원이람서… 아버님이 보증을 서서 대한 청년 뭐이 된 거 아니냐고 즈이를 찾아왔써유.”

“그게 정말이오?”


재원의 눈이 커진다.

상득은 재원을 방으로 조용히 부른다.



“우리도 탈이 나기 전에 떠나자.”


“아버지. 제가 해결할 테니 걱정 마시고…”


“예끼 이놈아! 내가 너 만주에 사업하라고 보냈지, 시뻘겋게 물들어오라고 보낸 줄 아느냐? 우리 땅덩이도 많은데, 그거 다 몰수당하는 건 이제 시간문제야. 네놈이 제 아무리 한 자리 차지 한다고 해도, 결국은 저 사람들 사상이 그렇지 않으냐. 농사꾼이 땅이 없으면 죽은 거나 마찬가지야. 조상 대대로 물려온 땅을 어떻게 저놈들에게 갖다 바치느냔 말이다.”


“땅을 갖다 바치는 게 아니고요…”


“이놈아! 정신을 좀 차려! 내 이름이 거론된 걸 보면 너도 무사하지 못할 수도 있어! 채훈이네가 해방되고 먹고살 길이 없으니, 내가 보증을 서서 대한청년단을 활동하게 한 것인데. 그 나 어린 아 새끼가 뭔 사상이 있고, 반동분자라고 찾아 죽이겠다고 집집이 다 뒤지고 다닌다냐?”


“채훈이를요? 그 아이는 지금 대구에…”



재원이 놀라 묻는다.


“글쎄. 그렇게 말을 해도, 그 집에서 남자아이가 돌아다니는 걸 누가 봤다고 이상한 밀고를 한 모양이다.”

“… 그럴 리가요. 제가 처리할게요. 걱정 마세요.”





“앗! 따거”


뜨겁고 붉은 피가 득무의 엄지에서 솟구쳤다. 형철의 옷을 기우다 그만 바늘에 찔리고 만 것이었다. 새까맣게 말라버린 속이라고 생각했는데 이토록 통통한 피가 흘러내리다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때 방문이 열리고 주영이 들어선다.


“…아짐니. 아까징끼(오징어뼈를 말려 간 연고) 있어요?”

“어마 깜짝아! 주영아…이 밤에 아까징끼는 왜 찾아?”


주영의 머리가 온통 땀으로 젖어있다.


“그… 그냥 필요해서”

“잠깐 기다려봐.”


아까징끼를 찾아 득무는 주영에게 건넨다.


“괜찮은 거지?”

“…아짐니. 사실은…”

“응?”

“사실은 즈이 오라버니가 산에 숨어 있다 다쳤는데 왼 다리가 구더기 천지에 곧 죽을 거 같아유.”

“뭐? 채훈이가 왔어?”


득무는 어두운 밤길을 형철을 업고 숨을 죽이며 주영과 길을 나섰다. 밤에는 인민군이 각 집을 순찰하며 혹시나 반동분자가 있는지, 숨거나 도망간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는지 찾아내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었다. 남자들은 가까운 부대로 차출하여 다리 건설이며 부역을 시키는 일을 시키는 통에 각 집들은 항상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어머나 세상에…”


주영의 낡은 집 옆 작은 창고 안 장작 뒤로 반쯤 송장이 된 채훈이 누워 있었다. 먹지 못해 반쪽이 된 채훈의 앙상한 다리의 상처는 심하게 곪아 냄새가 났고 구더기가 끓었다.


“아까징끼로는 안돼.”


득무는 주영에게 뜨거운 물을 끓이라 이르고, 무명 앞치마를 찢어 구더기를 한 마리씩 잡아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술을 조금씩 상처에 부어 소독했다. 채훈은 넋이 나가 소리도 내지 않았다. 처치가 어느 정도 끝나자 득무는 주영에게 가져온 감자를 삶아 으깨고 물에 개어 채훈의 입에 넣어주라고 일렀다.


“아짐니 고마워유. 어서 가보셔유.”


주영이 작게 말했다.


“발각되서 죽거나, 다리 때문에 죽거나. 여기가 제일 위험하다.”

“갈 데가 없어유.”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다. 몇 일만 우리집 창고에 안에 숨어있어.”

“안돼요.”


주영이 사색이 된다. 채훈은 그렇게 몇일 간 득무네 슬레이트 창고 안에 깊숙이 숨어있었다. 다행히 시모, 시부 모두 눈치채지 못하였다. 몸을 추스린 채훈은 바람처럼 사라졌다. 득무는 주영에게 채훈이 어디로 갔냐고 묻지 않았다. 9월 중순이었다.







재원이 인민위원회 팻말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이때 안혁상이 건물 안에서 나와 재원 앞에 선다. 재원은 품에서 담배를 꺼내 혁상에게 내민다.


“귀하신 도련님이 주는 귀한 담배로군.”

“이보게 안동무! 자네가 나에 대해선 누구보다 잘 알지 않나.”

“잘 알지.”

“놀리지 말게.”

“…자네 아버지 건은 묻어 두겠네.”

“확실히 해두겠네. 우리 아버님은 사상과는 거리가 먼 분이야.”


안혁상은 피식 웃더니 담배 연기를 허공에 흩뿌린다.


“이동무. 사흘 뒤에 차가 오네. 북으로 가는 군용 트럭.”


재원은 그 말에 짐짓 놀라지만 대답은 하지 않는다.


“좀 더 큰 일을 도모해야 하지 않겠나.”

“인천에서부터 미군놈들이 휩쓸고 내려온다는데 어떻게 위로 올라가나.”

“더 늦어지면 힘드네. 나와 김동무는 결심했네”

“…”

“못 가겠단 말을 하고 변절하는 건 아니겠지? 하기사 이곳에 가진 게 여적지 많으니.”


그의 말에 가시가 있다. 노동자 출신인 안혁상. 그는 권력욕이 많은 인물로 재원에게 늘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 얼마전 이상득과 채훈의 관계를 따지며 득무를 찾아온 것도 그다. 혁상은 재원이 마치 북으로 가는 것을 겁내하는 걸 알았다는 듯 그는 재원에게 이주를 제안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재원은 어떻게 하면 노쇠한 부모님을 설득해 고향을 떠나게 할 수 있을지 곰곰히 생각한다. 무엇보다 조상 대대로 내려온 땅을 버리고 평양으로 가자는 말에 상득이 어떻게 반응할지 눈에 훤히 보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재원은 평양이라는 말을 몇 번이고 되뇌었다. 혁명의 심장. 그곳에 가게 된다면 자신의 삶도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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