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운명
“배고파.”
누군가 득무의 손을 잡아당겨 보니 형철이다. 그새 키가 많이 큰 형철이 득무의 치마폭에 들어선다. 득무는 형철을 안아 올리고는 부엌으로 향한다. 득무는 간밤 재원이 한 이야기를 생각한다.
‘사흘 뒤 평양으로 가는 차가 올 거요.’
‘평양이요?!’
재원은 답하지 않았다. 득무는 어떻게 이 많은 땅을 버리고 북으로 간다는 것인지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루가 다르게 폭격이 심해지고, 미군이 위에서부터 밀고 내려온다는 소문도 있는데 늙은 부모와 처자식을 데리고 북으로 올라가는 길이 험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득무는 괜스레 재원이 농을 친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형철은 이제 득무를 꽤나 따른다. 득무는 떠주는 밥술을 입을 짝 벌리고 받아먹는 형철이 참새같이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였다. 사립문을 열고 며칠 전 논에서 그녀에게 이상득과 대한청년회의 관계를 캐물었던 남자가 들어선다.
“이상득 씨 계시오?”
“… 그렇기는 한데.”
그 소리에 상득은 대청에 나와 선다. 마당에 선 안혁상을 내려다보는 상득의 눈빛이 엄하고 날카롭다.
“나를 찾아오셨어? 무슨 일이오?”
상득의 위엄 있는 목소리. 안혁상은 그에 질세라 목소리를 높인다.
“금일 열 두 시까지 인민위원회로 나오시오!”
혁상을 실은 지프차가 먼지를 내며 떠났다.
재원은 사무실 창밖에 일렬로 서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살폈다. 누군가는 애원을 하고, 어떤 이는 눈물만 흘리고 서 있다. 더러는 다 포기한 채 무표정으로 하늘만 바라본다. 재원은 할당된 선고문 뭉치를 다시 리드미컬하게 넘긴다. 그러다 그의 손이 한 이름 위에 멈추었다.
[피선고자 이상득]
재원의 눈이 커진다. 그는 다급히 행렬 가운데에서 자기 아버지의 얼굴을 찾아본다. 곧 그의 시선은 하얀 두루마기를 입은 한 노인네에게 멈춘다. 상득이었다. 그때 혁상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아이고 성실하기도 하셔라.
이동무 좀 쉬엄쉬엄 일하셔야지.”
재원은 벌떡 일어나 혁상에게 다가서 그의 멱살을 잡는다.
“내가 우리 아버지는 대한청년회와 아무 관계가 없다 그랬지?”
혁상보다 키가와 풍채가 큰 재원이기에 그는 덥석 재원의 손에 들리고 만다.
“아아아. 무슨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이것부터 좀 놓고 말하게나.”
혁상의 여전히 재원은 분이 풀리지 않는다. 주변 동무들의 시선이 모두 그들에게 향해있다.
“아니이. 왜 그 얘기를 먼저 얘기하고 싶어서 안달인가. 내가 겨우 덮어둔 것을. 에헴.”
안혁상이 조용히 재원에게 빈정대며 뇌까리기 시작한다. 재원의 입술이 마구 떨리기 시작한다.
“생각해 보게. 자네 아버지는 지주로서 토지 몰수 대상이야. 이는 당의 명령이지.”
그 말에 재원은 머리가 아득해진다. 손아귀에 힘이 빠지고 혁상은 주변을 보라는 듯 매무새를 가다듬는다.
그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시모 김 씨, 득무와 형철, 재원은 한 자리에 둘러앉아 아무런 말도 없이 밥을 먹었다. 날이 더워 마루 평상에 나름의 진수성찬이 펼쳐졌다. 시원한 밤바람이 마당을 감싼다. 그러나 형철을 제외하고는 모두 모래알을 씹는 듯한 표정이다.
상득은 사랑방 안에 누워 꼼짝을 하지 않고 있다. 그가 먹고 살길이 묘연했던 어린 채훈을 동네 경찰 정보원으로 추천한 것도 사실이었다. 상득이 조상 대대로 평택 동리의 유지이자 지주 노릇을 한 것도 맞다. 원래였다면 상득은 즉결처분을 당하거나 심하면 고문이나 구금을 당하여도 이상할 일은 아니다. 아들이 당원인 덕분에 토지 몰수 정도로 끝난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목숨을 부지한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득은 조상 대대로 땅을 지키며 땅과 함께 살아온 한산 이 씨 가문의 역사가 자신의 대에서 끊어지고 말았다는 것이 원통하고 죄스러워 밥술을 뜨기는커녕 달 아래 얼굴을 드러내기도 민망하다. 더욱이 아들 덕분에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는 하나, 자식이 믿고 달려드는 그놈의 사상 때문에 이 사달이 난 것이 다 제 탓인 것 같아 천지가 뒤집어지는 기분이다.
“아버지.”
답이 없는 상득을 부르는 재원의 마음도 타들어가는 것만 같다. 사실상 토지 몰수는 정해진 수순이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다. 하지만 상득은 기근이 들었을 때에는 곡식 창고를 열어주었고, 가지고 있던 논 밭 역시 동리 사람들이 함께 일구며 그 소출을 나누어 왔다. 채훈을 도와준 것도 먹고살 길을 열어주기 위해서이지 않았던가.
오늘 인민위원회인 동리 국민학교 앞마당에 서 있던 상득의 모습은 죄인 중의 죄인 같았다. 재원은 늘 그런 행색을 한 이들을 지나쳐 사무실로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가 선언문을 재빠르게 낭독하곤 했었다. 동네 일면식이 있는 사람들이 처분이나 처형을 받을 때조차 흔들리지 않았던 그가 역사의 죄인이라는 반동분자들 가운데 상득을 찾아내었을 때,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
혁상이 자신을 늘 도련님이라 놀려대었을 때, 그가 괜스레 용심을 부리고, 질투심이 과하다고만 생각한 재원이었다. 그러나 실상은 그의 말이 일부분 맞았는지도 몰랐다. 오늘 혁상의 선고문 낭독과 함께 한산 이 씨의 모든 토지가 몰수 당한 이후 상득은 축 처진 어깨로 국민학교 운동장 한편에 서서 처분을 기다렸다.
재원은 그런 상득에게 달려갈 수 없었다. 보는 눈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재원의 속에서 뜨거운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정말 혁상의 말대로 자신은 태생부터 공산주의를 따르기엔 무리가 있는지도 몰랐다. 평등하게 모든 것을 같게 나눈다는 것은 더 이상 내가 특별할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뜻한다. 특권의식, 안정감,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보이지 않는 유산을 모두 버리고 그저 무명의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것에 어떠한 반항감도 없다면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마음이 흔들린다. 중심을 잡을 수가 없다. 평양에 간들 나는 남쪽에서 올라온 무명 씨일 뿐이지 않을까. 아무리 평등한 사회라 하더라도 특권의식을 가지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마치 나처럼.’
재원은 입이 썼다. 자신이 싫었다. 그때 득무가 대야에 물을 받아 온다.
“서방님 피곤하실텐디 씻으셔유.”
득무의 목소리에 재원은 정신이 난다. 비록 사기결혼처럼 한 혼례이지만, 바로 앞에서 폭격이 있어나 친한 이가 그 폭격에 목숨을 잃었지만 득무는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제 앞에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낸다. 득무는 억척스러울 정도로 씩씩한 사람이다. 그 억척스러움이 주는 생명력.
“근디 평양 가는 차 진짜로 오남유? 그 짝에 가면 집도 주고 차도 주고 먹을 것도 짝으로 갖다 주는 거 맞아유?”
순진무구한 득무의 말에 재원은 피식 웃음이 터진다.
“아니 왜 웃어유? 지는 심각헌디.”
재원은 득무의 손을 잡는다.
“평양. 가고 싶소?”
“….”
득무는 한참을 생각한다 말한다.
“어디든 상관 없슈.”
그 말에 재원 얼굴에 어두움이 가시고 곧 박꽃같이 밝은 얼굴이 찾아온다. 득무는 달빛 아래이긴 하지만 제 서방이 참 고와 보인다고 생각한다. 득무는 괜스레 부끄러워 퉁퉁 부은 제 손을 앞치마 뒤로 감추며 말한다.
“쩌기 뭐야. 계란 몇 알 주영이네 집어다 줬슈. 평양 가기 전에 안 쓰는 옷하고 그릇하고는 조금 남겨주고 가고 싶어유. 지난번 그 집 가보니께 밥그릇도 변변한 게 없는 게 영 거시기혀서. 어차피 여기 있으면 다 박살 나지 않것슈?”
“그럴까?”
득무의 말에 재원이 기분 좋게 웃는다.
“아니 그럴까는 뭐에유? 애매하게.”
달이 밝았다. 공습경보가 울리기 시작한다. 이제는 밤이 되어도 폭격이 간간히 있다. 득무와 재원은 서둘러 방 안으로 들어선다. 형택은 세상모르게 잠이 들었다. 세상은 전쟁 중인데 여전히 뻐꾸기 소리는 평택 동리 뒷산을 묵묵히 울린다.
“대단허이. 이동무 다시 봤소.”
동리 인민위원회 위원장 박영삼이 재원을 향해 악수를 청하며 걸어온다. 재원은 멋쩍게 그의 손을 잡는다. 무슨 일인가 하니 어제 상득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었다. 제 아무리 당원이라지만 자신의 친 아버지까지 공평하게 판결대에 세우기란 어려운 이라며 박영삼은 재원을 치켜세운다. 평소라면 박영삼이 그를 알아보고 먼저 말을 걸어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을 터. 이상하게 재원의 마음 한편이 깨진 유리창 사이로 겨울바람이 조금씩 불어 들어오는 것처럼 스산해진다.
“모레 차가 오오. 식솔들이 탈 자리는 있을 거요.”
“가는 길은…”
“그리 편하다고 할 순 없으나 강원도 쪽으로 해서 가면 괜찮을 거요.”
영삼은 재원의 어깨들 두드리고 밖으로 나간다. 모두가 다 북으로 이동 명령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평택에서도 소수의 당원만이 군용 트럭에 탈 특혜를 입을 수 있었다. 재원의 불알친구이자 당원인 강민재 역시 평양 이동 명령을 듣고 크게 기뻐하고 있었다.
민재는 재원에게 담배 한 개비를 내밀었다. 재원은 담배를 훅 빨아들이며 능선을 바라보았다. 나고 자란 평택 동리의 산등성이가 보인다. 여기를 떠나 새로운 곳으로 가서 혁명을 시작할 마음에 기쁨과 벅참이 동시에 들어차야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깊게 가라앉아 차분해진다. 재원은 집에 몸져누운 상득이 걱정된다. 아침마저 거부하고 자리에 들어 누운 아버지를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그때였다.
“이 나쁜 놈들아아!!!!!”
밖에서 누군가 찢어지게 소리를 질러댄다.
“또 시작이구만.”
민재는 마지막 담배 모금을 빨고는 재원의 등을 두드리며 들어가자고 신호한다. 웅성거림, 싸움 소리, 총성, 자지러지는 울음소리는 늘상 매일같이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오늘따라 들려오는 찌르는 듯한 울음소리는 재원의 발걸음을 멈춰 세운다. 어디선가 들어봄직한 낯익은 목소리. 재원이 돌아본다. 총칼을 든 무장 인민군이 한 소녀를 막아 세우고 있다. 주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