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번째 이야기
-오영-
[어이, 연락 없는 친구. 나 호주 간다]
[여기는 퀸즐랜드다 오바! 카불쳐라는 딸기 농장에 입성]
[씨발씨발씨발씨발 누가 여기 헬불쳐라고 하던데 진짜 드럽게 힘듦]
[몸도 흐물흐물, 마음도 흐물흐물 매가리를 잃어버리는 중]
[내 인생에 더 이상 딸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쩜 너는 한결같이 답장이 없니]
[헬불쳐와 안녕까지 D-10]
[내일이면 시드니, 우리 금방 만나?]
이영이 내게 보낸 이메일 제목이다.
“쳇, 내가 메일만 안 보냈지, 연락을 안 했냐?” 그냥 카톡으로 간단하게 주고받으면 될걸 이영은 언제나 이메일로 보냈다. 그것도 아주 길게. 무슨 소설을 쓰는 건지 제목 빼고 본문만 모두 모아도 장편소설 하나는 뚝딱 완성할 수 있을 것 같다. 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지만 만약 그렇다면 자가 출판이라도 생각해 보라고 해야겠다.
이영이 호주로 온다는 메일을 받고 나는 간단하게 답장했다.
[내 핸드폰 번호 041*-***-*** 도착하면 연락해. 만나러 갈게]
사실 그게 유일한 답장이었다. 뭐, 그 이후로는 이영의 메일을 받고 나는 카톡으로 간단하게 답장했으니까.
[친구들한테 물어보니 워홀사이에 헬불쳐 개빡세기로 유명하더라. 고생해]
[ㅋㅋ 살아서 돌아오길]
[괜찮냐?]
[호주 딸기 원래 드럽게 맛없다]
[뭔소리래. 카톡으로 답장하잖아. 너 바보?]
[곧이네]
[웰컴 투 시드니. 도착하면 보자]
이영은 나를 이렇게 말했다.
“누가 회계 전공 아니랄까 봐 드럽게 경제적이다. 너. 할 말은 다 하는데 짧기는 또 얼마나 짧은지. 가성비 대박이야. 데이터 아껴서 상 받겠다 너.”
이영은 시드니에 도착하고 아주 작은 테이크어웨이 스시집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포장 손님이 대부분이지만 매장 한쪽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작은 빨간색 원형 테이블 3개는 늘 새로운 손님을 맞느라 먼지 쌓일 일이 없었다. 이영은 헬불처에서 만난 동지가 소개시켜 줬다며 좋아했다. 스시집에서 이영은 정신없이 바빴다. 반다나를 쓴 사장과 이모님 그리고 이영, 이렇게 세 사람이 일하는데 호흡이 잘 맞았다. 정말 잘 짜인 프로그램을 보는 것 같았다. 반다나 사장님은 카운터를 보면서 서빙하고, 주문받은 요리는 타고 난 손맛 이모님의 마법을 거쳐 손님들에게 나왔다. 이영은 사이사이 갖은 스시 롤을 말고, 다양하기가 끝도 없는 도시락을 싸고, 온갖 메뉴에 들어가는 튀김을 했다. 또 모든 순서 사이사이에 빨갛고 동그란 테이블로 가서 손님들이 남기고 간 그릇들을 정리했다. 설거지는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세 사람 중 잠깐이라도 여유가 생긴 사람이 보이지 않는 손놀림으로 뚝딱 해치웠다.
나는 종종 친구들을 데리고 이영이 일하는 스시집으로 놀러 갔는데 그때마다 입을 벌리고 한없이 그들을 쳐다보곤 했다. 마치 불멍이나 물멍을 때리는 것처럼.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왠지 머릿속이 텅 비어버리고 내 속에서 응어리지고 있던 뭔가가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묘하게 나를 중독시키는 사람들. 내가 그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면 친구들이 나를 툭툭 건드리며 놀렸다.
“너 왜 멍때리고 있어? 어디 보는 거야? 저기 뭐 있어?”
“야~ 입가에서 침 떨어지겠다.”
“근데 신기하지? 나도 자꾸 멍~하며 같이 쳐다보게 돼. 나는 오영이 왜 그러는지 알 것 같아.”라고 내게 동조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마법인가?
이영과 타고난 손맛 이모님 그리고 반다나 사장님은 그들을 멍~하니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묘한 힐링을 주는 이상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 같았다.
스시집을 함께 드나드는 친구들은 다양했다. 대학교 친구들, 교회 친구들, 한인회 청년들. 거의 내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영을 소개했다. 우리는 한국에서 마치 운명처럼 우연히 만났지만, 너무 잘 맞는 친구라고 모두 알고 있었다. 심지어 나의 부모님조차도. 이영이 내 언니라는 사실은 오직 나 혼자서만 알고 있는 비밀이 되었다. 이영도 몰랐으니까. 언젠가 내가 말하지 않았다면 아마 그녀는 끝까지 모르지 않았을까?
나와 가장 많이 이영을 만나러 간 친구들은 대학교 친구들이었는데 그들 중에 늘 닉이 함께 있었다. 닉은 대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친하게 지내게 된 친구였다. 말하지 않아도 눈빛만으로 내 기분을 알아채서 먼저 세심하게 배려해주는 남사친. 닉에게 나는 언제나 친구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던 건 그가 내게 자연스레 애인들을 소개해 주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다. 바람둥이는 아니었다. 그의 연애는 매번 깊었고, 헤어질 때도 끝맺음을 잘하는지 그의 X들은 쿨하게 친구로 곁에 남았다.
닉은 이영을 좋아했다. 이영이 웃는 모습을 좋아했고, 그녀의 유머에 늘 깔깔 웃었다. 뭐, 생각보다 내게는 그리 웃기지 않았는데도 늘 닉은 배꼽을 잡고 웃고 있었다. 이영의 영어 실력이 유창해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단연 닉 때문이었다.
가끔 내가 일이 있어서 먼저 가야 할 때도 닉은 종종 남아서 이영을 도와주곤 했다. 손맛 이모님도 반다나 사장님도 닉이 남아 있겠다고 하면 환호성을 질렀다. 이영은 그저 웃을 뿐 딱히 닉을 더 좋아한다는 느낌은 주지 않았다. 일부러 그랬던 걸까?
지난달 내 생일 파티 때 나는 친구들을 모두 우리 집으로 초대했다. 나는 술과 안주를 준비했고, 포트락 파티였기에 친구들이 하나씩 음식을 가져왔다. 닉은 가장 좋아하는 타코 집에서 혀가 얼얼해지게 매운 나초를 사 와서 우리를 경악시켰다. 그날 엄청나게 매운 타코가 있다는 사실을 들은 이영은 친구들에게 호기롭게 외쳤었다.
“나는 한국 토박이니까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매운 음식을 가장 잘 먹는 사람을 뽑아 보라면 단연 나일 거야. 그러니 닉의 나초는 나한테 아무것도 아닐걸?”
의기양양한 미소와 함께 나초를 한 입 크게 입에 넣은 이영은 그 후로 한 시간 동안이나 눈물과 콧물 범벅이었다. 닉이 사 온 나초는 정말 매웠다. 특히 내 생일이라고 나초에 하바네로를 잔뜩 넣은 것이다. 이영은 당연히 몰랐던 사실이었다. 너무 울어 눈이 팅팅 부은 이영은 잔뜩 부어오른 입술로 닉에게 말했다.
“나는 진짜 한국 사람들이 매운 음식을 가장 잘 먹는다고 생각했어. 미안해 닉. 내 말은 완전 백 퍼센트 오류야.”
눈물 콧물 짜며 울다 웃다 하는 이영을 세상에 이보다 더 귀여운 사람은 없다는 듯이 보는 닉의 두 눈을 나는 보았다.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영은 내 쪽 테이블에 앉아 있었고 닉은 내 맞은편에 앉아서 이영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그가 느끼는 감정이 숨김없이 내 마음에 들어와 창이 되어 꽂히고 상처를 냈다. 나였으면 했다. 지금 이영을 바라보는 그 눈빛이 도달하는 사람이 나였으면 했다. 닉을 만나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쭉. 나는 바랬다. 하지만 티를 내지 않았다. 닉이 몰랐으면 했다. 친구로라도 옆에 있고 싶었으니까. 내 마음을 모르는 닉은 그저 한없이 이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부터 함께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자면 내 마음 생채기에 소금을 들이붓는 느낌이었다. 티를 내지 않고 두 사람을 마주하는 상황은 내 마음에 더 어두운 그늘을 드리웠다.
이영이 점점 미워졌다.
이영이 내 언니라는 사실이, 내가 그녀를 찾아낸 장본인이라는 사실이, 나 때문에 이영이 닉을 만났다는 사실이 서서히 나를 지옥의 늪으로 밀어 넣었다.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을 도무지 맨정신으로 마주할 수가 없어진 나는 서서히 자발적으로 두 사람과 거리를 두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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