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은 없지만, 안부는 묻고 싶어서

~이 되는, 엄마가, 물살/스파이글쓰기

by 슈가정원

언제부터였을까.

글을 쓰는 사람이 되는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

까마득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끝에는 학교 대회에서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나에게 닿는다.



내가 어릴 때, 국민학교 시절에는 매년 그림 그리기, 글짓기, 서예로 대회가 열렸다. 나는 80년대 생이지만 사교육을 받은 적이 거의 없다. 찢어지게 가난하지는 않았지만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기도 빠듯한 살림이었던 시절이었다.



일반적인 교과 공부를 위한 학원은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재능을 뽐내야 하는, 타고난 재능이 있지 않은 이상 사교육을 받으면 평균 이상은 받을 수 있던 그림과 피아노는 간절히 원했던 어린 시절의 나는 지금도 선명하다. 왜 학교는 매해 이런 행사를 통해 어린 나를 짓밟는지 늘 화가 났고 형편을 알고 있지만 학원에 보내달라고 말하는 나를 애써 외면하거나 달래던 엄마가 미웠다.



그랬다. 나는 아무것도 잘하는 것이 없었다. 재능조차 없었다. 이런 내가 참여할 수 있는 부분은 오로지 사교육이 거의 전무하던 글짓기 부문이었고, 이 분야 역시 재능이 없어서 상을 받아 본 적은 국민학교 때는 없었다. 그럼에도 괜찮았다. 한글만 쓸 줄 알면 원고지 몇 장 정도는 시간 안에 써서 제출하는 방식은 모두가 동등하다고 생각했으니까. 미술처럼 시작점부터가 다르지 않으니까. 어린 나이에도 억울한 사람은 없다고 여겼던 것이다.



이 생활은 중고등 때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조금씩 글을 쓰는 요령을 스스로 터득하고 도서관과 책대여점을 오가며 읽어 나간 도서들의 힘으로 문장이 다듬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고등학교 1학년 때, 방송부 다음으로 경쟁률이 높았던 교지편집부에 합격을 하면서, 아무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며 지낸 내가 '어쩌면 글 쓰는 것이 나의 작은 재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그리고 이 계기는 물살을 타고 대학에서 3년 동안 학보사에서 학생 기자라는 이름의 배에 오를 수 있게 해 주었다.



나는 이 한 가닥의 희망이 나를 버티게 해 준 힘이 되었음을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나의 자존감을 높여준 소중한 자산과도 같은 글쓰기이기에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기록을 위한 쓰기보다는 나를 증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글쓰기를 이어나가고 있다. 그래서일까. 꾸준히, 치열한 마음으로 글을 대하고 있지는 않다. 나의 컨디션과 시간 그리고 목적이 있을 때만 펜이나 키보드를 찾아 끄적이고 있다.



지난주 나크작에서 함께 글을 쓰는 한 분이 벌써 4권의 책을 쓰셔서 우리 모임에서 '작가 간담회'를 열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의 말 중 하나가 나에게 강력하게 다가와 잊히지 않는다.


글이 안 써진다는 것보다는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컸다. 미루지 않는 병적인 나의 성격도 한몫을 했다.



내가 왜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말을 하면서도 꾸준히 해오지 못하는지 그녀가 정확히 알려준 것이다. 나는 '쓰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하지 않았다. 매일 무언가를 적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내 자존감이 조금 내려앉을 때, 그 틈을 채우는 용도로 글쓰기를 이용하고 있으니까 결과물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면서 스스로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며 안도하고 머물고 있다.



그런데 문득 의문이 든다. 글을 쓰는 사람은 반드시 활화산 같은 갈망을 품고 있어야 하는 걸까. 나처럼 그저 삶의 틈을 메우고, 무너진 마음을 다독이기 위해 쓰는 행위의 방식은 틀린 것일까.



이번 주부터 3개월 간 오프라인으로 진행되는 글쓰기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매주 한 편의 글을 쓰는 수업이라고 생각한 것과 달리, 에세이를 쓰기 위한 다양한 준비운동을 배우며 최종적으로 하나의 글을 완성해서 개인 문집으로 만들어주는 방식이라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오히려 나다운 수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투쟁'같은 글쓰기가 아니라 하나하나 흩어진 나를 챙기며 '안부'를 묻듯 페이지를 채워가는 것.



지금껏 나의 삶은 단 한 번도 불타오르는 열정인 적은 없었다. 뭉근하게 유지하는 숯 같은 온기를 품은 채 살아온 것처럼 글쓰기도 삶의 모습을 닮은 것뿐이다. 결국 글쓰기는 삶을 닮아가는 과정이다. 내 삶이 격정적인 투쟁이 아니었듯, 내 글 역시 나다운 호흡으로 채워질 때 비로소 진실성을 담게 된다. 뜨겁지 않아도 좋다.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고 품은 채, 내 삶의 안부를 묻는 한 줄을 쓰는 것에 만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