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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타자기 Oct 11. 2022

출퇴근 여행 일기 1.

내 인생의 빨간 불


<내 인생의 빨간 불>










아이가 또 아프다.


지난 2주간 메타뉴모바이러스로 두 가지 종류의 해열제를 교차 복용하였음에도 쉽사리 내리지 않던 열.


새로 뚫은 소아과에서 색색의 약병을 받아다 먹고는 열이 드디어 내렸다며 좋아했는데,


기념으로 동네 돼지갈비 집에 가서 갈비도 뜯었는데,


그깟 외출이 뭐라고 덜컥 다시 rsv 바이러스에 걸려버렸다.



지난 연휴 동안 하루 종일 밥밥밥. 플러스 밥밥밥.


그러니까, 한 끼를 두 번씩 차리게 한 이 까다로운 식성의 5세 어린이는 이제는 아예 식욕이 없으시다고 한다.


얼굴이 반 쪽이 된 아이를 보니 마음이 아리지만, 나 역시 죽다 살아나서


다시 rsv 바이러스에 걸린 건지 목이 아프고 눈물 콧물이 쏟아지는데 정말 너무 하다 싶다.



더군다나 이번 주는 코로나 사태 이후 3년 만에 대면 공개 수업이라,


교실 꾸미기며 수업 준비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하거늘,


지난 연휴기간 동안 나는 회사 일은커녕, 그냥 침대에 누워 멍-을 때릴 여유조차도 없었다.


왜? (그건 차차 풀어가기로 하자.)



마침, 친정 엄마가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아이 아침 거리와 점심거리, 그리고 약병을 종류별로 가리키며 신신당부를 한다.


엄마 역시 감기에서 아직 자유롭지 못해서, 나는 콧물과 눈물을 쏟으며 엄마에게 '미안해'를 연발했다.


왜 또 내 머리는 '지성'인지.


하루라도 아침에 감지 않으면 저녁에 이것들끼리 지지고 붙어 난리 부르스를 추는지.


나는 내 머리카락이 머리에 조금 더 남아 있기를 희망하며, 또 조용히 저주하며


머리를 감고는 휘리릭 드라이기로 대충 말리고, 가방을 들고 바람처럼 문을 열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지 않고 계단으로 질주한다.



우다다다다.


질주의 기분. 바람이 내 콧등을 가르는 기분.


아하. 가을이 가고 겨울이 왔구나.


이제 알겠다. 계절의 흐름. 여름의 더위 따위는 24시간 돌아가는 에어컨 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일까 예전보다 겨울이 더 반갑다. 경기도의 겨울은 춥디 춥고, 관리비는 무서우니


추위는 나의 친구다.



대충 시동을 켜고 시계를 보는데, 여전히 지각이다.


단체 카톡방에서는 '와 오늘 연휴 끝이라고 겁나 막히고 좋네 (찡긋)'라는 메시지가 나를 반긴다.


젠장을 연발하며 엑셀레이터를 밟는데, 갑자기 계기판에 '빨간 불'이 뜬다.



'타이어 공기압 경고'



지난달에도, 지 지난달에도 한 번씩 떴던 경고다.


하지만 한 번은 무시하고 그냥 달린 바람에 타이어가 펑크 직전까지 갔고,


그다음은 그냥 온도 차이로 인한 소동으로 밝혀졌다.




그럼 어째야 하나.


아. 모르겠다.




사실 나는 내 인생을 모르겠다.


이 빨간 타이어 경고등처럼,


내 인생에도 빨간 등이 뜬 거 같은데 말이다.


일단 지금 지각이고.


그리고 지금 한 달째 아이와 나는 감기 중이고.


그리고 나는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고 싶어 미치는 -데


살아가야 할 또 다른 인생의 트랙이 있다.


그것도 성실하게 종사해야 할 직장인으로서의 삶.


그리고 24시간 풀타임 잡인 육아도 존재한다.




하루 종일 콧물과 재채기를 해대며 수업을 마치고


공개수업을 준비하다


더 이상 안 되겠어서 짐을 싸서 차로 갔다.


만약에 날씨 때문에 뜬 공기압 경고등이라면.


그냥 제발 그냥 들어가 주길.


나 너랑 씨름할 여유도 시간도 없단다.




시동을 켜자 보이는 고우디 고운 빨간 경고등.


내 인생의 경고등.


한숨과 함께 빨간 불은 파란불로 바뀌었다.


나는 엑셀레이터를 밟았다.


그래 어디 한 번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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