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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타자기 Oct 12. 2022

출퇴근 여행 일기 2.

작은 우회로 

이른 아침, 아이의 고열로 몇 시간 자지 못하고 머리를 쥐어 싸매며

차에 시동을 건다. 도대체 몇일째인가!

내 기분을 시원하게 바꾸어 줄 노래를 틀어야겠어! 하지만 그런 노래 따윈 없었다.

게다가 오늘은 어제보다 길이 더 막힌다.

하지만 나는 임기응변에 강하기에, 사람들이 잘 모르는 샛길로 얼른 차를 우회했다.

이 길은 평소 다니는 널찍한 4차선 도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좁은 1차선 도로지만,

아름드리나무며, 작은 마을버스가 덜컹거리며 다녀 정겹게 느껴지기도 한다.

평소에는 널찍한 도로가 빠르지만, 오늘 같이 큰 대로가 막히는 날에는 살짝 우회하여 뻥뻥 뚫린 이 1차선 샛길을 다니는 재미가 쏠쏠하다. 운전 중이라 사진을 찍지 못했지만, 무슨 무슨 리 같은 느낌이랄까.

아름드리나무와 텃밭들, 트랙터를 지나쳐 결국엔 다시 큰 대로변으로 좌회전하여 합류해야 할 때에는

아쉽기까지 하다.

여하간, 이 우회 도로 덕분에 나는 적어도 7-8분은 시간을 세이브할 수 있으니 오늘같이 막히는 날에는 참 고마운 도로임에 틀림이 없다.



내일은 공개 수업일.

특수학교에서도 학부모 공개수업을 하냐고 묻는다면?

당연하다고 대답할 수밖에.

교육과정 역시 일반교육과정과 배우는 내용, 제재가 거의 흡사하고 '수준'의 차이를 두었을지언정

별개로 움직이는 것은 많지 않다. (그래서 놓치게 되는 부분도 분명 존재한다.)



우리 반 공개수업 주제는 '다양한 감정'을 구분해서 '표현' 해 보는 것.

특히 자폐성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사람의 표정을 보고 '감정'을 구분해 내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일단 감정을 = 색과 연결하고, 그 감정을 다시 다양한 감각으로 체험해보며,

이를 '이모티콘'이나 '얼굴 표정'과 연결한 다음 '단어'로 표현하는 것으로 수업을 구상했다.



발화를 할 수 있는 아이는 단 한 명.

나는 토킹 버튼이라고 하는 녹음 버튼을 칠판에 붙여 놓고 아이들로 하여금 감정을 구분하여

버튼을 눌러 소리를 내게 할 작정인데, 아이들이 과연 여기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

또 다른 근심거리는 3년 만에 하는 대면 공개수업이라, 학부모를 본 학생들이 갑자기 울거나,

혹은 수업을 거부할 수 있다는 것.

게다가 다감각적인 자극을 제시할 예정이라 아이들이 과민 반응을 보이진 않을지 심히 걱정이 된다.




공개 수업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나는 학창 시절 선생님들이 왜 엄마 아빠가 오는 날에는 유독 만들지 않았던 교재교구를 사용하고,

교실을 광나게 청소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 모습이 위선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는데,

이제 가르치는 입장이 되고 보니 모든 것이 너무나도 잘 이해가 간다.

단 한 번의 수업으로 인해 지워지는 '인상'과 '평가'들에서 심정적으로 자유로워지기란 참 어려운 것.




교재교구를 점검하던 중 다양한 명화 속 사람들의 얼굴 표정에 눈길이 간다.

뭉크의 절규는 그야말로 볼 때마다 소름이 돋고,

웃는 아이를 표현한 그림은 참으로 소박하면서도 기분이 좋아진다.




행복이라는 감정을 아이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난 핸드벨과, 노란색 타조 깃털, 그리고 오간자라고 하는 하늘하늘 한 한복이나 드레스를 만들 때 쓰는 천을 색깔 별로 이어 붙여 만든 천을 준비했다.

청각, 촉각, 시각적으로 행복한 느낌을 아이들이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을까?

오히려 아이들의 감각을 더 예민하고 불안하게 만들지나 않을까.

나 스스로도 예민해져 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차를 잠깐 갓길에 세우고 다이소에 들러 거친 싸구려 수세미 여러 장을 구입했다.

'화'의 감정을 촉감으로 느끼기 위한 구체물이다.

결국, 이 수업은 자신의 감정을 유독 알아차리기 힘들고, 조절하기 어려운

아이들이 스스로 감정을 알아차리고, 타인과 의사소통을 조금이나마 원활하게 하게 위해

준비한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이 수업이 도움이 될까? 효과적인 수업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가슴이 답답해지며 모든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지려는 찰나, 나는 생각을 바꿔보기로 했다.




그래. 과정이 중요한 거지.
아이들하고 수업하면서 '교감'을 하는 것 자체에 집중하자.
한 시간 재미있게 놀아보는 거지.



다시 차에 올라 시동을 켜자 마침 틀어둔 플레이리스트에서 샘 김의 '무기력'이 흘러나온다.

'요즘 왜 이리 무기력한데'로 시작되는 가사가 나를 말해주는 것 같아 핸들에 머리를 찧으려다 생각을 좀 바꿔보기로 한다. 



그래 나의 무기력을 극복할 열쇠는, 부담을 가지지 않는 거야.
아이들이 수업을 잘 받아들이길 바라는 것보다, 순간의 상호작용에 집중하자.
잘 되고 못되고는 없어.
사람에게 집중하는 게 먼저야.
그게 의사소통의 기본이잖아.




샛길로 우회했던 아침의 나를 떠올리며,

생각의 방향을 큰 신작로에서 작은 우회로로 바꾸어 본다.

아직 부담은 느껴지지만, 약간의 여유는 확보한 것 같다.



#에세이 #출퇴근 #워킹맘 #글쓰기 #공감 에세이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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