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겨운 이름 K~빌딩!
걱정 인형이라는 것이 있다. 어떤 보험회사에서 만든 마케팅 상품 정도로 알고 있는데, 그 걱정인형들이 나 대신 걱정을 해준다는 개념이다. 나는 걱정인형의 현신. 스스로를 걱정인간이라고 부른다. 그렇다. 나는 걱정이 많다. 내가 그토록 원해서 수업을 듣기로 했었으면서도 개강 날짜가 다가오자 설레임은 조금씩 증발해버리고 꼭 그만큼의 긴장감이 생겼다. 하지만 크게 당황하진 않았다. 나라는 인간과 40년을 가까이 함께 하면서 이것이 어느 정도의 패턴이라는 눈치 정도는 생겼기 때문이다.
어떤 패턴이냐고? 예를 들어보자. 나는 해외여행 노래 노래를 부르다 막상 출국 전날이 되면 모든 것이 귀찮아지고, 왠지 모를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제대로 여행을 할 수는 있을까? 물건을 도둑맞으면 어쩌지? 침대 밖은 위험해! 짐 싸기 싫어!(이게 제일 크긴 하다.) 그러다 막상 공항 입구에 다가서면 가슴이 두근거리며 설레임이 살아난다. 그렇다. 닥치는 순간까지 잡념이 많아져서 그렇지, 결국 닥치면 어떻게든 잘 하게 되어 있는 것. 사십년간의 데이터 베이스를 무시할 순 없다. 두려움과 긴장감은 내 친구라는 스탠스가 생겼고 어느 정도 나의 행동에 대한 예측이 가능하다.
나는 공항입구에 다다랐던 심정으로 주차장에 차를 댔다. 회사에서 여의도까지 가려면 편도 두 시간은 꼼짝없이 운전대를 잡아야만 한다. 운전을 하면서도 나는 마음이 편치 못했다. ’정말 내가 극본을 쓰고 합평이라는 것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제일 나이 많은 거 아냐?’ 별별 잡념들이 생겨났다. 내가 이토록 새가슴이었던가? 나는 애써 마음이 마구 지껄여대는 말들을 무시하며 국회대로 750에 차를 주차했다.
교실에는 딱 봐도 젊은이들이 많이 앉아있었다. 나는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조용히 선생님을 기다렸다. 주변에는 벌써부터 노트북을 열어 심각하게 타자를 두드리는 사람들이 보인다. 왠지 이곳에는 산전수전을 겪어본 사람들이 와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저 20대 시절 시나리오 습작 정도를 끄적여본 게 다다. 그때 문을 열고 활기찬 인사와 함께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선생님은 정말 선한 기운을 팍팍 풍기시는 분이었다. 해사한 웃음과 함께 첫 시간의 긴장을 농담으로 풀어주셨다. 신기하게도 마음이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했다. 짧게 수업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자기 소개시간이 이어졌다. 나는 정말이지 자기소개라는 것을 싫어한다. 뭐라고 얘기를 해야 할지 일단 모르겠고 일단 어색하다. 어쩌다보니 내 차례는 가장 마지막이 되었다.
사람들의 자기소개를 듣다보니 생각보다 연령대가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겉보기에는 나보다 한 참 어려보였는데, 나와 비슷한 또래이거나 나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들도 여럿 있었다. 아이가 셋인 분도 있었고, 통영에서 이 수업을 듣기위해 기차를 타고 온 사람도 있었다. 정말 대단한 열정이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어쩌다 보니 내 차례가 가장 마지막이 되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자기소개다. 나는 우물쭈물하며 입을 움직였다.
“예전에는 쓰고 싶어도 뭘 써야 할지 몰랐다면 지금은 어떻게 쓰는지는 몰라도 쓰고 싶은 건 많이 생겼어요. 그래서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와 같은 욕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틈에 한 번 있고 싶었어요.”
그러자 선생님은 갑작스레 본인이 내 에세이를 직접 심사하고 합격 시켰셨다면서 글을 참 잘 썼다는 말을 해 주셨다. 뜻밖의 칭찬이었다. 첫 날부터 좋은 말을 들으니 정말 글을 잘 쓸 수 있을 것 같았고, 잘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오는 길은 갈 때보다는 덜 막혔다. 나는 흔들리는 서울 시내의 차들의 행렬을 무심히 쳐다보며 악셀레이터를 밟았다. 돌봄과 생계에서 벗어나 지금 이 시간 만큼은 오롯이 스스로를 위해 사용하고 있다는 감각이 좋았다. 순간 어떤 충만함 같은 것이 느껴졌다. 사실 어찌 보면 별 일도 아니었다. 나는 그저 극본가가 된 것도 아니고 유명한 학원에 등록을 했을 뿐이다. 그러나 엄마가 된 지금, 이 단순한 선택 하나를 위해 포기해야 하거나 타협해야 하는 인생의 영역이 매우 커졌다. 그래서 지금이 더욱 소중한 것일지도 모른다.
집에 돌아오니 남편은 아이를 재우려고 애를 쓰고 있었고 거실과 부엌의 일거리들은 쌓여있다. 몸도 피곤하다. 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가볍다. 마치 이 모든 것들을 일사천리로 해 치울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렇다. 역시 모든 건 마음가짐에 달려있다. 스스로의 욕망과 욕구에 얼마나 솔직하게 사느냐에 따라 명암을 달리하지 않을까?
물론 남편은 오늘 만큼은 일찍 퇴근해 평소보다 조금 더 많은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친정 엄마의 도움도 필요하다. 미안함도 느껴진다. 하지만 정작 여기에서 나 자신을 놓치게 된다면, 장차 더 큰 허무와 공허감을 느끼게 될 것만 같다. 물론 이 길이 나와 맞을지 아닐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는 없을 수 있다. 그리고 누가 아는가. 그 속에서 나만의 새로운 길이 또 보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