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처럼 Jan 22. 2019

사실 난, 엄마를 미워해

엄마 좀 미워해 본 딸들에게

왜 엄마와의 관계가 문제가 되죠?


나긋한 상담사의 태도에 마음을 놓았는데, 이내 불편해졌다. 살면서 이런저런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잘 극복했고, 지금은 잘 지낸다. 그리고 한 아이를 양육할 만큼 성숙했다- 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엉뚱한 답변이 돌아왔다. 아무래도 친정엄마와 애착형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고. 


입양을 진행하려면 제출해야 하는 서류가 20여개 된다. 그 중 하나가 심리검사결과인데,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입양진행여부가 결정되기도 한다. 폭력적인 아빠 밑에서 자란 것, 난임을 겪으며 우울했던 것이 문제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엄마라니. 당혹스러웠다. 


"어린 시절 아빠가 OO씨를 때릴 때, 엄마는 어떻게 하셨나요?"

"엄마요? 엄마도 옆에 있긴 했어요. 대부분 제가 잘못한 일 때문에 그런 거였으니까. 그냥 계셨죠."

"엄마가 밉지 않았어요?"

"딱히 밉다거나 그런 생각은 못해봤는데...."

"그럼 아빠가 엄마를 때릴 때, OO씨는 어떻게 했나요?"

"제 방에 숨어 있었어요."

"적극적으로 아빠가 엄마를 때리는 것을 말릴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는 않으셨네요?"

"......."


한번도 아빠를 말려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다. 맞을까봐 겁이 났으니까. 아빠는 너무 큰 존재였고, 우리는 맞고 숨는 것이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결국 친정 엄마의 행동을 학대에 대한 방관으로 평가(?)한 상담사는 부정적인 소견을 결과지에 적었다. 




사실 난, 엄마를 미워해


억울했다. 이래저래 엄마가 될 수 없는 이유들만 듣고산다. 엄마에게 찾아갔다. 오랜만에 옛날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아니 엄마 때문에 입양도 못하게 생겼다고 원망을 늘어놓고 싶었다. 따지고 싶었다. 


"엄마, 엄마는 왜 아빠랑 결혼했어? 아빠같은 사람이랑 결혼 안했으면 좋았잖아. 폭력에 바람에. 아니 막말로 엄마는 엄마가 선택했으니까 그렇다 쳐. 나는 뭐야? 두들겨 맞기만 하고, 친구들하고 놀지도 못하고. 맨날 공부해라 공부해라. 그거 알아? 내가 백점맞았을 때랑 아닐때랑 엄마 표정부터 다른거. 한번이라도 못해도 된다고, 그만큼도 잘한거라고 말한 적 있어? 그리고 말야. 아빠가 집나가고 엄마 누워 있었을 때 나 고3이었어. 그때 내가 뭐만 먹고 일년을 버틴 줄 알아? 옆집 아줌마가 갖다 준 깍두기야. 엄마가 되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원하는 대학 떨어졌을 때 동네사람들 피해다닌 것도 내가 창피해서지? 일하면서도 얼마나 힘들었는데. 아빠가 진 빚을 왜 내가 갚아야 해? 왜왜. 엄마 아빠 때문에 내가 이모양 이꼴로 살아야 하냐구!"


지금까지 한번도 꺼내지 못한 말을 토해냈다. 입양을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분노가 되었다. 꼭꼭 숨겨 두었던 엄마에 대한 감정들이 와르르 쏟아졌다. 


"몰랐어. 네가 그렇게 기억하고 있는 줄. 정말 미안해. 널 더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그때는 엄마도 너무 어려서 잘 몰랐어. 아빠를 감당하기가 힘들어서 하루하루 사는 게 힘들었어."


엄마는 울었다. 우는 엄마의 얼굴이 싫다. 숱하게 보았던 그 표정. 말 잘듣고 착한 딸의 뒷통수에 엄마는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스물다섯 그리고 예순셋의 엄마


"우리 모찌 잘 자고 일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밥도 잘 먹고 반찬도 골고루 잘 먹고, 할마랑 사이좋게 보내게해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아- 멘- !"


이른 새벽 엄마가 모찌를 안고 기도를 한다. 큰 소리로 대답하는 모찌. 일년 넘게 그 모습을 보고 있지만 볼때마다 생경하다. 모찌 입양이 결정되자마자 엄마는 단숨에 경상남도 끝에서 서울로 이사를 했다. 육아에 서툰 우리부부를 위해 기꺼이 우주 최강의 지원군이 되어 주셨다. 덕분에 걱정없이 일하고, 쉰다. 간혹 내가 아는 엄마가 맞나 싶을 때도 있다. 무기력하게 울던 엄마가 아닌 세상 든든한 할마가 어느새 내 앞에 서 있다. 


엄마는 스물다섯에 엄마가 되었다. 멀리 서울로 시집와 친구와 가족도 없이 나를 키웠다. 남편은 쉴틈없이 바람을 피웠고, 딸의 울음 소리에도 고함을 질렀다. 내 울음이 커지는 밤, 조용히 나를 업고 밖으로 나와 자장가를 불렀다. 나는 살아가는 이유, 친구이자 남편이었다. 자신과는 다르게 똑똑하고 사회에서 성공한 여자가 되었으면 하고 바랬다. 생각해보면 지금의 나보다도 훨씬 어린 나이였다. 기댈 곳 하나 없는 세상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도망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남들의 눈에 방관일지 모르나 엄마는 늘 내곁을 지켰다. 


아주 오랫동안 어리고 미숙했던 20대의 엄마만을 기억하며 살았다. 그게 엄마라고 생각했고, 그때의 엄마를 미워했다. 하지만 지금의 엄마는 또 다른 엄마다. '그때 너에게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텐데.'과거를 통해 현재를 채워나간다. 나 역시 엄마가 되어서야 엄마를 용서하기 시작했다. 어떤 할머니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엄마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답한다. 


"늘 곁에 있어주는 할마♡"

이전 03화 엄마가 아니어도 너를 사랑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