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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처럼 Jan 21. 2019

엄마가 아니어도 너를 사랑해

베이비박스 아기들을 만나다

"정말 안아봐도 되요?."


홍이를 만났다. 바닥에 누워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옹아리를 하는 중이었다. 쭈삣쭈삣 서 있는 나를 선생님이 반겨주셨다. 정말 안아봐도 괜찮은지 재차 확인한 뒤에야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작은 홍이가 내 품에 쏙 들어왔다. 이제 막 햇빛에서 걷어 올린 솜이불처럼 폭닥폭닥하고 보드라웠다. 작은 숨을 쉴새없이 내뱉는 아기의 얼굴을 천천히 들여다보았다. 엇? 송중기를 닮았네. 


홍이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베이비박스 아기다. 낳은 분들의 애석한 연유는 알 수 없지만 한 교회의 베이비박스를 거쳐 보육원에서 자라게 되었다. 같은 방에서 하루를 보내는 친구들도 대부분 베이비박스 아기다. 사전지식이 전무했던 나는 아기들을 만난지 한참이 되어서야 알았다. 그리고 무수히 많은 아기들이 베이비박스에 홀로 놓여 진다는 사실에 가슴이 무너졌다. 


'남'이 아닌 '나' 돕자고


뭔가 사회적으로 뜻깊은 일을 하거나 이력서의 한 줄을 보태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저 내 안의 두려움을 쫓기 위해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아이를 낳는 문제에서는 벗어났지만, 아이를 보는 문제에서는 여전히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트에서 유모차에 탄 아기만 마주쳐도 눈물이 주르륵 흘렀으니 중증이었다. 평생을 아이들을 피해 살 수 없으니 맞닥뜨리기로 결심한 것이다. 


후배의 소개로 찾아간 보육원 앞, 한참을 망설였다. 내 욕심에 아기들을 만나도 되는 걸까? 혹시라도 아기들을 보는 것이 더 힘들어지거나 우울해지면 어떡하지? 잘할 수 있다며 큰소리 뻥뻥치고 왔지만, 두려웠다. 힘들면 하루만 갔다와도 된다고, 그것만으로도 정말 훌륭한 거라 말하는 신랑의 말이 생각났다. 그래, 일단 들어가보고 못하겠으면 죄송하다고 하고 나와 버리지 뭐. 보육원 계단을 힘차게 걸어 올라갔다. '똑똑똑' 아기들이 자고 있으니 조용히 들어오라는 안내문구를 확인하고 조심스레 방 안으로 들어갔다. 홍이를 만났고, 나는 5분도 지나지 않아 반해버렸다. 

 



내 사랑 홍이


단 한번, 선생님이 좋았던 적 있다. 천사들의 합창에 나오는 히메나 선생님처럼 곱고 다정한 분이었다. 

"선생님, 선생님은 어떻게 선생님이 됐어요?"

"음.... 수학선생님이 너무 좋아서. 그 선생님한테 예쁨 받고 싶어서 매일매일 수학 공부를 했어. 모르는 문제를 찾아서 다음 날 선생님을 찾아갔거든. 그러다보니까 교과서도 다보고, 이 문제집 저 문제집 다 풀게됐지. 나중엔 모르는 문제가 없는거야."

나 또한 그리 되리라 굳은 결심을 했다. 수학문제집은 5장을 채 넘기지 못했지만, 매일매일 새로운 구실을 만들어 선생님을 찾아갔다. 끈기 있고 성실하게. 


2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끈기 있고 성실하다. 틈만 나면 홍이 생각이 났다. 오늘 이유식은 잘 먹었는지, 트림하다 올리지는 않았는지, 혹 배밀이를 하다 머리를 쿵 하지는 않았는지 걱정됐다. 봉사활동이 있는 날이면 뒤도 안돌아보고 보육원으로 달려갔다. 빨리 홍이를 만나야 하니까. 어깨위로 번쩍 들어 올리면 까르르 웃음이 터지는 홍이가 예뻤다. 저명한 의사선생님과 뛰어난 상담사도 하지 못한 일을, 홍이가 해냈다.  


홍이를 안아주면 현이가 와서 안아달라며 벙긋 웃었다. 현이를 안아주면 솜이가 다리에 매달렸다. 홍이를 시작으로 다른 아기들이 하나 둘 눈에 보였다. 아기들과 온몸으로 구르고 뛰며 놀았다. 다른 봉사자들과 선생님들이 보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할 때면 민망했지만, 뭐 아무렴 어때. 한바탕 놀고 땀범벅이 되면 편의점에 갔다. 캔커피를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육아에 커피가 필수라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창가에 아기들의 얼굴이 동그랗게 떠올랐다.  



우리 함께 할까요?


'뭐가 그렇게 좋은 거야?' 봉사활동에 다녀온 날은 낯빛이 다르다며 신랑이 물었다. 좋으니까 좋은거지 좋은걸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아기들을 만난지 반년째, 신랑도 따라나섰다. 입이 닳도록 칭찬한 홍이도 만나고 신생아 여드름때문에 사춘기 형아 같은 요한이도 만났다. 그리고 날때부터 귀가 들리지 않아 말하기가 서툰 정이도 만났다. 신랑은 네가 정이구나, 요한이구나, 홍이구나- 한눈에 알아보며 반가워했다. 나는 보았다. 그가 얼마나 아이를 사랑하는 사람인지를. 그동안 나 때문에 내색도 못한채 가슴 한켠에 웅켜쥐고 살았음을.


여윳돈이 있을리 없지만 틈이 보이면 아기들 옷과 신발을 샀다. 그리고 틈이 없던 가을, 공모전에 나갔다. 상금타서 아기들 크리스마스 떼떼옷을 사는 것이 목적이었다. 뒷걸음치다 얼떨결에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받았다. 12월 24일, 신랑 옷밖에 살 줄 몰랐던 내 손에 아기들 내복박스가 들려 있었다. 감사하게도 민망한 소문을 접한 신랑의 지인 한분이 지속적인 후원을 약속해주셨다. 바쁜 자신을 대신해 좋은 일을 해달라고. 나는 아기 옷가게의 만수르, 아니 메신저가 되어 아기들이 필요한 물건을 날랐다. 옷가게 사장님은 자신도 꼭 동참하고 싶다며 아기 양말이며, 손수건, 인형 등을 매번 챙겨주셨다. 




엄마가 아니어도 괜찮아


아기 보는 것이 힘들어서 시작한 일이다. 내 아이가 없어서 허전하고 울적한 마음을 달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른들은 나를 '아이가 없어 슬픈 사람'으로 정의했지만, 아기들은 나를 '반갑고 헤어지면 섭섭한 사람'으로 대해주었다. 나는 아기들을' 베이비박스 아기'가 아닌 '사랑둥이'의 시선으로 보았다. 우리는 서로를 편견없이 마주했다. 엄마가 아니어도 사랑할 수 있다. 그것은 조건없는 사랑이었고, 그 사랑으로 나는 두려움의 껍질을 또 한번 벗었다. 


결혼전, 오랜시간 청첩장 문구를 고민하던 신랑이 성경 말씀 하나를 보내왔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허투루 보았던 그 말씀이 오늘따라 더 가슴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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