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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처럼 Jan 18. 2019

아이를 갖고 싶었습니다만

난임의 끝에서 만난 우리

"솔직히 말씀드리면 앞으로 세 가지 선택을 하실 수 있습니다. 남편분이 수술을 받아서 시험관을 진행해보거나 정자공여를 받는 방법, 그리고 입양. 두 분이 같이 한번 고민해보세요."


진료실에 들어서자마자 의사선생님의 난처한 표정을 보고 직감했다. 결과가 좋지 않다는 것을. 왜 우리에게 아기가 생기지 않는지 의학적으로 길고 자세한 설명을 해주셨다. 눈물범벅이 된 나는 아무런 질문도 하지 못한 채 마지막 말만 가슴에 담고 신랑의 손에 이끌려 나왔다. 얼마나 울었을까? 눈을 떠보니 교회 앞이었다. '우리 목사님께 기도받을까?' 어쩌면 나보다 더 울고 싶었을텐데, 그는 꾹 참고 있었다. 


선택지는 3개였지만, 내 마음속의 답은 이미 정해져있었다.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고 싶었다. 우리에게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난임을 극복하고 아기를 얻지 않는가. 우리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온갖 임신출산육아 관련 정보로 가득한 카페를 탈퇴하고 난임카페에 가입했다. 수술후기를 모조리 찾아 읽은 뒤 가장 유명하다는 병원을 예약했다. 




얼음장처럼 차갑게 온몸이 굳어진 신랑이 들 것에 실려 병실로 돌아왔다. 두시간의 수술이 끝난 뒤였다. 담요를 덮어주려는 내게 간호사는 덮지 말라며 손을 밀었다. '잠시 환자분 깨어날때까지 기다리세요. 조금 있다가 원장님이 수술결과 설명해주실거에요.' 간호사가 나가자마자 나는 신랑을 끌어안았다.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을까. 


"여보...어떻게 됐어?"

눈을 뜨자마자 내 얼굴을 찾는 신랑에게 무어라 답해야할지 난감했다. 당신 너무 고생했다. 난 괜찮다. 나는 아무렇지 않다. 아이가 없더라도 우리 둘이 더 행복하게 잘살 수 있다. 해볼 수 있는만큼 해봤으니까 정말 괜찮다. 다짐도 위로도 아닌 말을 뒤섞어 얼버무렸다. 1년간 묵묵히 참아낸 눈물이 신랑의 눈에서 쏟아져내렸다. 유일한 선택지에 빨간 엑스표가 새겨졌다. 눈이 소복히 쌓인 겨울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엄마 얼굴이 보였다. 엄마-하고 불러보라는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주요 우울증(major depression)으로 인한 전환장애(conversion disorder)였다. 쉽게 말해, 말문이 막혀 버린 것이다. 




몇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말을 하지 못하는 3개월간 굉장히 편안했다. 생각도 멈췄으니까. 그냥 먹고 잤다. 더 이상 강박적으로 기도 할 필요도 없고, 병원에 가기를 망설이는 신랑을 답답한 눈으로 바라보지 않아도 됐다. 아주 깊숙한 심해에 누워있는 기분이었다. 구조선에 올라타려고 몸부림을 쳤는데 막상 미끌어지니 홀가분한 느낌이랄까. 하지만 그런 나를 지켜보는 신랑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삶이 정지해버린 아내를 돌보느라 그는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냈다. 만약 우리가 반대의 입장이 된다면, 나는 그가 한 것처럼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그토록 바랬던 기적은 모든 것을 포기한 순간 시작되었다. 내 입에서 '아이는 됐습니다.'라는 고백이 나오기를 기다렸던 것처럼. 인생의 모든 목적이 임신에 맞춰져 있던 나는 다른 인생을 찾아 나섰다. 전혀 다른 공부를 시작했고, 그 안에서 수많은 난임부부를 만났다. 그리고 내 문제에 갇혀 있던 시선을 바깥으로 돌릴 수 있게 되었다. 나와 신랑의 난임이 아닌 우리가 겪는 난임에 대해. 우스개말로 '어떻게 우울증을 이겨내셨어요?'라는 질문에 나는 '공부로요.'라고 답한다. 


시험관시도 한번 해보지 못한 우리도, 멍투성이가 된 배 위에 매일 아침 배란주사를 꽂는 A도, 몇달을 품은 아기를 허망하게 흘려보낸 B도 모두 난임이다. 겪어내는 난임의 모습은 천차만별이지만, 모두가 간절히 아이 갖기를 원한다. 하지만 정답이 하나 뿐인 인생은 너무 가혹하다. 이게 아니면 절대 안돼- 라고 생각하는 순간 내가 만든 동굴 속에 갇히게 되니까. 나는 아이를 낳지 못하면 신랑과의 사이가 틀어지고, 원하는 집단에 끼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난임을 겪어내며 전에 없던 친밀감이 생겼다. 나는 조리원 동기모임이 아닌 대학원 동기모임에 속했다. 아이를 낳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테지만 우리는 새로운 답안을 찾아가고 있고 그 안에서 행복하게 하루를 보내고 있다. 


난임진단을 받고 어쩔 줄 몰라하는 분을 보면 따뜻한 차 한잔 사주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그 분만의 정답을 찾아나가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그것이 아이를 갖는 것이든 그 무엇이든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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