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하디 흔한 표현으로 담기 어려운 감정, 입양
우리 딸은 가슴으로 낳았어요
언젠가 TV에서 탤런트 신애라씨의 인터뷰를 본적이 있다. 봉사활동을 하다 두 딸을 만나 입양하게 된 사연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오랜시간이 지났지만 지금도 기억난다.
"저는 우리딸, OO이를 가슴으로 낳았습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는 그 말에 감격했다. 생각해 보지 못한 표현이었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대단한 표현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있어 보이는 것'에 관심이 많았던 그때의 나는 입버릇처럼 둘은 낳고 셋째는 입양할거다 자랑하듯 말하고 다녔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결혼 적령기에도, 결혼을 한 이후에도 입양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저 마음 좋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되는, 봉사정신이 투철한 사람들이 하는 선행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인생은 요지경, 내게 남은 선택지가 몇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입양은 현실이 되었다.
나도 한번 느껴보고 싶다.
입양을 하기로 결정한 뒤 자연스럽게 따라온 기대감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아주 오래된 내 안의 담론, '가슴으로 낳는' 경험이다. 도대체 어떤 감정이길래 입양한 분들이 너도나도 이야기하는 걸까? 출산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똑떨어지게 비교를 하기는 어렵겠지만 뭔가 극적인 느낌이 아닐까 상상했다. 출산한 선배로부터 들었던 밑이 쑥빠지고, 본능만이 존재하는 동물이 되어가는 경험, 뭐 그런것? 육체적으로는 아니더라도 정신적으로 그런 경험을 하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 고통스럽고도 성스러운 순간이 지나면 사랑스러운 아기가 내 품에 안겨 있을 것만 같았다. 몇년 뒤 TV 혹은 잡지에서 나 또한 말하겠지. "우리 아기는 가슴으로 낳았답니다." 세상의 평화를 품에 안은 듯한 얼굴로.
꼬꼬마 모찌가 우리 딸임이 확정 된 날, 정확히 말하면 법적으로 우리가 한 가족임을 통보 받은 날, 나는 당황했다. 사무실 복도 한켠에서 휴대폰을 들고 꺼이꺼이 울고 난 뒤였다. 너무 기쁘고 좋아서, 긴 기다림이 끝났다는 생각에 폴짝폴짝 뛰고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왜 내가 생각했던 느낌이 안들지? 모찌가 집에 온 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모찌가 집에 왔고 - 마치 어린이집에 다녀온 것처럼-, 우리는 자연스럽게 가족으로서의 하루를 시작했다.
우리의 오랜 출산, 입양
"여보, 우리 모찌 입양한 거 맞지?"
"당연하지, 왜 실감이 잘 않나?"
"응, 어떤 때는 그냥 내가 낳은 것 같기도 한데...."
"왜 낳아보지 않아서 섭섭해?"
모찌와의 시간이 쌓여 갈수록 모찌를 낳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과 감사함이 교차한다. 신생아 시절부터 돌봐주지 못한 것이 미안하고 그 앙증맞은 순간들을 함께 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한편으로는 겁많고 엄살쟁이인 내가 출산을 하지 않고도 엄마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깊은 밤, 스르륵 잠든 모찌를 보며 모찌를 만나기까지의 시간들을 떠올렸다. 한순간도 쉬운 적이 없었다. 매 순간이 생의 고비처럼 느껴졌고, 절망에 빠져 눈물만 뚝뚝 떨어뜨리기도 했었다. 기대와 한숨, 희망과 걱정이 뒤섞인 밤낮이 지나고 햇살이 비추기 시작했을 때 모찌가 우리에게 왔다. 그리고 그 시간들이 나와 남편에게는 출산의 시간이었다는 걸 깨달아간다. 아주 지난하고 오랜 우리의 출산. 그리고 그 경험은 어쩌면 세상의 많은 아빠들이 겪는 출산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여전히 그 표현에 완벽히 동의할 수는 없지만 '가슴으로 낳는' 정서적 출산에 대해 조금씩 배워나간다. 모찌의 키가 내 키를 훌쩍 넘어서면 온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누가 아기 낳을 때 어땠냐고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멀미가 심한 뱃놀이를 하는 기분이요. 그리고 그 여정은 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