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밥먹기를 거부하는 딸
얼렁뚱땅 이유식 요리사
"모찌는 정말 잘 먹어요. 코감기에 걸렸을 때도 이유식 한번 안 남기고 다 먹었거든요. 씹는 연습만 잘 시켜주시면 될 것 같아요." 보육원에서 모찌의 생활습관에 대해 전해들을 때 분명 그렇게 말씀하셨다. 밥을 정말 잘 먹는다고. 다행이다 싶었다. 잘 먹으니 다양한 시도를 해봐야겠다. 영양가 있는 재료들만 선별해서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야지. 그동안 못해준 한을 다 풀어내리라. 모찌가 집에 오기 일주일 전, 맹훈련을 시작했다.
"여보 한번 먹어봐봐."
"오~ 모찌 이유식 만든거야? 그럴 듯 한데? 어디 먹어보자."
"......."
"왜...? 이상해? 별로 맛 없어?"
"이유식이 원래 이런거야? 이상하네. 아무 맛이 나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좀 비릿, 아니, 에이 아무거나 잘 먹는다잖아."
실패다. 한우를 곱게 다져 끊인 이유식은 내 입에도 역했다. 상황의 심각함을 인지한걸까, 다음날 신랑은 친구 부부에게서 이유식메이커를 받아왔다. 이걸로 아이를 셋이나 키워냈다고. 설명서대로 해봤다. 기능은 매우 단순했다. 재료를 찌고, 밥과 함께 갈아 버리는 방식이다. 소고기와 당근 조각을 넣고 버튼을 눌렀다. 김이 나기 시작한다. 구수한 냄새와 함께.
"여보 어때?"
"기가 막히는구만! 당신 진짜 잘한다!"
그렇게 우리집 이유식 요리사가 되었다. 퇴근 후 늦은 밤, 콧노래를 부르며 재료를 넣고 버튼을 눌렀다. 모찌는 기대 이상으로 이유식을 잘 먹어주었다. 아기새처럼 오물오물 받아 먹는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한톨도 흘리지 않으려는 입매가 귀여웠다. 소고기, 닭고기, 생선, 당근, 단호박, 브로콜리, 감자. 재료를 넣을 때마다 어깨도 덩달아 올라갔다. 메이커에서 쉼없이 뿜어져나오는 수증기가 마음에 든다. 나, 아무래도 요리에 재능이 있는 게 분명하다.
넌 나에게 거절감을 주었어
하루에도 몇번씩 감정이 롤러코스터를 탄다. 스스로를 꽤 안정적인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섣부른 판단이었던 것 같다. 유아식을 시작한 모찌가 편식을 한다. '모찌야, 밥 먹자. 맘마 먹을 시간이야.' 다정하게 모찌를 부른다. 제법 말을 알아듣는 녀석이 신이나서 식탁으로 뛰어온다. 순간, 차려진 음식을 요리조리 살핀다. 불안하다. 마음에 안드는걸까? 다행히 숟가락을 들고 한 입 가득 밥을 넣는다. 딱 밥만.
"모찌야, 우리 예쁜 모찌. 반찬도 먹어야지? 이거 한번 먹어볼까?"
"안머거~"
퉤- 애호박 나물이 자판기의 캔음료처럼 떨어졌다. 엄마, 아빠, 할마, 오빠, 온니, 멍뭉만 할 줄 알았던 아기의 입에서 안먹겠다는 말이 나올줄이야. 당황한 나는 '아아, 오늘은 모찌가 애호박을 안 먹고 싶구나. 그럼 모찌 좋아하는 김 줄까?'하고 얼버무렸다. 조미 김에 밥 한그릇을 뚝딱한다. 속상했다. 내가 만든 음식을 안먹겠다고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이야기해준 사람이 처음이 아니었으니까.
신혼시절이 생각났다. 할 줄 아는 음식은 몇 없었지만 사랑과 의리로 잘 먹고 지내던 때다. 하루는 김치볶음밥을 만들었는데 신랑이 숟가락을 조심스레 내려놓으며 말했다. '혹시....마가린 넣었어?' 볶음밥은 당연히 마가린에 볶아야 제 맛 아닌가. 의아했다. 자신은 마가린이 조금 힘드니 다음부터는 참기름 정도만 넣어주면 좋겠다고. 차라리 맛없다고 하지, 돌려 말하니 더 얄미웠다. 사실 이 정도로 그때를 기억하고 있지만 맹렬하게 싸웠다. 이후로 입 짧고 양 적고 탈 자주나는 신랑 덕분에 음식 만들기에 흥미를 잃어갔다. 애써서 만들어도 잘 먹지않고, 뭐 좀 만들어 보려고 불앞에 서면 자기는 조금밖에 안먹을 거다 선전포고를 하니 기운이 빠졌다. 차라리 사먹자. 그 기운으로 다른 일을 하자 생각했다.
잘 먹는 모찌를 보며 기대 했는지 모른다. 이 기회에 '음식 잘하는 엄마'가 되어 볼 수 있다고. 나는 요리를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회가 없었을 뿐이라고. 하지만 오늘도 자신감없이 인스타그램에서 아기식단을 검색한다. 어른이든 아이든 안먹겠다는 거절의사에 여전히 적응하지 못한채.
밥은 좀 못하지만, 모찌가 좋아하는 엄마입니다.
정신없이 출근 준비를 하던 어느 날이었다. 친정엄마가 잠이 덜깬 모찌를 안고 방으로 들어왔다. '뭐라구 엄마?' 손에 들고 있던 헤어드라이기를 껐다.
"너는 좋은 엄마라구. 앞으로 더 좋은 엄마가 될꺼야."
"그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지금은 좀 부족한 듯 해도 나중에 되봐. 학교만 가도 예쁘고 멋진 엄마가 좋아져."
밥을 잘 챙기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들킨걸까? 평생 밥을 해 온 엄마 눈에는 그게 보이나보다. 엄마가 되고 싶었고, 엄마가 된 김에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어떤 엄마가 좋은 엄마인지 잘 모르지만 따뜻하고 맛있는 밥이 전제조건처럼 느껴졌다. 그게 안되니까 못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모습 또한 내가 만든 허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신랑에게 밥 잘 못하는 내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모찌에게도 그럴 수 있는데. 밥에 그만 집착하자.
저녁 6시, TV 앞에 앉은 부녀가 외친다.
"우-와-"
맛집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에 대형 피자가 나왔다. 치즈가 쭈욱,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인다.
"이번 주말, 피자 콜?"
부엌에서 끙끙대는 대신 모찌와의 신나는 외식을 선택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