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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처럼 Jan 25. 2019

실례지만, 입양한 사람 처음봐요?

입양한 사람을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당신에게 고합니다. 

모찌가 집에 온 뒤 언제쯤 말하면 좋을까 고민했다. 회사에 입양이야기를 꺼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십년 넘게 회사라는 곳을 경험해보니 말은 아낄수록 좋았다. 특히 연애, 결혼, 임신, 이직 등 입방아에 오를만한 이야기는 최후에, 더이상 물러설 데가 없다고 생각될 때 말하는 게 나았다. 반면 특수집단(?)에 속한 신랑은 입양 상담을 시작한 첫날부터 오픈, 입양의 모든 과정을 동료들에게 중계했다. 


"아무래도 친한 선생님들한테 먼저 이야기하는 게 좋겠지? 부장한테는 제일 마지막에 하고"

"뭘 그렇게 머리를 써? 그냥 이야기하면 되지. 다들 엄청 축하해 줄꺼야."

"그런가? 내가 너무 오바하나?"


동료들로부터 늘 응원을 받는 신랑이 내심 부러웠다. 하지만 이제는 나도 당당하게 축하받을 수 있다. 모찌사진을 보면 다들 놀라겠지? 달력 위 가장 좋아 보이는 날에  하트를 그려 넣었다. 




이러려고 말한 게 아닌데


여느 때처럼 팀원들과 점심을 먹고 있었다. 직장사 한바퀴, 세상사 한바퀴 돌고돌아 할 말이 바닥날 때 쯤이었다. 


"그런데 선생님, 선생님은 아예 아이 안갖기로 했어요? 딩크에요?"

"맞다, 자기 결혼한지 꽤 됐지? 부모님이 뭐라고 안그래?"

"아유~ 애 없는 게 훨씬 낫지 뭘 그래. 잘 선택한 거야. 갖지마 그냥."


대답은 듣지도 않고 서로 떠들기 바쁘다. 잠시 망설였다. 지금 그냥 말해버릴까? 아니다. 친한 선생님들이 섭섭해할꺼다. 그래도 이렇게 자연스럽게 분위기 조성됐을 때 말하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이 떼굴떼굴 머리 속을 굴러간다. 그래, 언젠가는 말해야 하니 고민하지 말고 지르자. 


"저... 사실 이번에 입양했어요. 지난주에 드디어 아기가 집에 왔어요."

"............."

정적이 흘렀다.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걸까? 입양이 아닌 이직하게됐다고 잘못 말했나? 


"어어... 그래? 잘됐네."

"............."

"그나저나 이번주에 회식한다며? 어디로 간데?"


기대했던 순간이 유리알처럼 흩어졌다. 상대방에게 내가 원하는대로 행동하고 말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지만 이건 아니었다. 상상했던 모든 경우의 범주에 이런 상황은 없었다. 당연히 축하한다고 말할 줄 알았고, 아기 이름은 뭐냐고 물어볼 줄 알았다. 살면서 다양한 무시를 경험했지만 이건 색다르다. 옆집 아줌마가 아이를 낳아도 축하한다고, 아기 귀엽다고 말하는 게 보통 아닌가. 잘됐다니. 도대체 뭐가 잘됐다는 건가. 예상치 못한 전개에 할말은 잊은 나는 다 먹고 남은 칼국수 그릇만 젓가락으로 휘저었다. 


퇴근 후 신랑에게 울분을 토하자 설마 사람들이 진짜 그랬는지 되묻는다. 내가 왜 입아프게 거짓말을 해 이사람아. 둘이 식탁에 앉아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당황해서'다. 어떤 악의가 있어서도 아니고 나를 미워해서도 아니고 단지 당황해서. 단 한번도 입양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모를 수 있다. 축하해야 할 일인지 가슴 아파해야 할 일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까지 나와의 호의적인 관계를 생각해봤을 때 그게 맞는 것 같다. 그럼 방법과 대상을 바꿔보자. 




이게 뭔가요


회사의 그녀들과 둘러 앉았다. 직장생활의 부조리함에 대해 함께 분개하고 희노애락을 같이하는 사람들. 팀원들과는 맺은 끈의 겹이 다르다. 분명히 내 마음의 반은 이해할것이다. 


"있잖아. 나 말할 게 하나 있어." (활짝 웃으며)

"뭔데? 뜸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봐."

"음... 나 드디어 엄마가 됐어. 오랫동안 입양을 준비해왔는데, 지난주에 드디어 아기가 왔어."(더 활짝 웃으며)

"뭐? 진짜? 딸이야 아들이야?"

"헐 대박! 시댁에서 뭐라고 안해? 진짜 입양한거야??"

"야 근데, 그럼 회사는?"

"잠깐만,,, 입양해도 육아휴직 줘?"


너무 커리어우먼이다. 워킹맘인 것이다. 아이가 이미 있는 그녀들에게는 아이가 생겼다는 사실보다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하느냐가 포인트다. 입양에 대한 나의 들뜬 감정을 정말 절실히 표현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예상을 뒤엎었다. 왜 이렇게 축하받기가 힘든 것일까. 축하 좀 해주면 안되나. 그 말 한마디 뱉는 게 그렇게 어려운가. 끝내 그 말을 듣지 못하고 필요한 걸 사주겠다며 서로 아웅다웅하다 우리는 자리를 파했다. 


그날 저녁, 식탁 위에 하얀 공단 리본으로 곱게 포장된 상자가 놓여 있었다. 신랑이 동료에게 받아 온 모찌의 선물이었다. 돌때 입히라고 예쁜 드레스를 선물해주셨단다. 만년필로 꾹꾹 눌러쓴 카드에는 진심어린 축하의 인사말이 적혀 있었다. 울고 싶었다. 나, 지금까지 잘못 살아온걸까?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변하지 않는 것


좋은 기회에 이직을 하게 되었다. 아쉬움도 있었지만 오히려 잘됐다 싶었다. 중간에 '나 별안간 아기가 생겼어요.'라고 말하는 것보다 '아기가 한명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편이 훨씬 쉬울 것 같았다. 직종의 특성상 상대방을 배려하고 공감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이 더 많으리란 기대도 물론 있었다. 전 직장에서 씁쓸한 맛을 봤기에 두번째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부서배치 첫날 깨달았다. 사람들의 반응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내게 더 많은 연습과 훈련이 필요함을.


새로 일하게 된 팀은 결혼유무와 상관없이 앞으로 아이를 가질 계획이 없는 분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아이가 없을 때는 워킹맘에 둘러싸여 일했는데, 아이가 생기고 나니 반대의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아이러니하다. 나 또한 아이가 없던 시절, 회사에서 아이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기에 자연스레 입을 닫았다. 물론 입양한 사실을 팀원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서로 궁금해하거나 말하지는 않는다. 간혹 귀여운 모찌 사진을 보다 옆자리 선생님께 자랑하고 싶을 때가 있다. '우리 모찌 진짜 귀엽지 않아요?'  하지만 이내 마음을 고치고 이어폰을 꽂은채 어제 찍은 모찌의 동영상을 잠시 본다.  


새로운 곳에 갔으니 굳이 입양했다고 말하지 말라고- 직장에서 왜 사생활을 꺼내냐고 물을 수 있겠다. 하지만 모찌를 입양한 것은 팩트고, 내 삶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누군가 궁금해 한다면 망설임없이 이야기하고 싶다. 하루에 최소 9시간, 인생의 많은 시간을 보내야하는 곳에서 벽을 세우고 살고 싶지도 않다. 서로 지켜야하는 경계는 있되 따뜻한 관심은 갖고 싶다. 


다만 입양에 대한 사람들의 예기치못한 반응에는 더 이상 민감해지지 않기로 했다. 축하든 무시든 혹은 무덤덤함이든 받아들이려 노력한다. 반응에 내재된 의미 따위 깊이 생각하지 않고, 아 이사람은 이렇게 보는구나 하고 말기로. 그것에 대한 가치판단은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에게 축하받으려고 모찌와 가족이 된 게 아니니까. 상대방이 우리의 입양을 어떻게 바라보든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더 자유롭게 입양에 대해 이야기 한다. 마음 내키는대로.






여담이지만 참 많은 사람들에게 모찌의 입양을 알렸다. 그리고 그 반응은 각양각색.

만약 당신이 누군가로부터 입양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면 무어라 말하겠는가?

지금까지 내가 들었던 답변 중 베스트.


"모찌는 선생님이 엄마여서 정말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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