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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처럼 Jan 31. 2019

알아봐 줘서 고맙습니다

가족을 만나는 방법

오당당씨, 나를 알아봐 줘서 고마워요


“뭐야, 그래서 걔가 올해 고시에 합격했다고?”

“그러게 내가 뭐랬어. 진즉에 걔를 만나야 된다고 했잖아. 쓸데없이 그 자식을 만나.”

“누가 로또 될 줄 알았나. 그러는 너는?”

“얘는 피자집 알바오빠 쫓아다녔잖아. 크크크. 그 오빠한테 차이고, 술도 못 먹는 게. 나 얘 업고 집에 가느라 허리 완전 나갔잖아.”

“맞네? 빨간모자 피자! 기억난다. 그래도 최고 헛똑똑이는 뭐니 뭐니 해도 OOO이지. 인기 많으면 뭐해. 사람 보는 눈이 발에 달렸는데. 흐흐흐.”

“에에? 내가 뭘?”


대학 동기들과 오랜만에 만났다. 재수생이라는 공통점으로 묶여 자발적 아웃사이더로 4년을 똘똘 뭉쳐 다닌 그녀들은 이제 마흔을 바라본다. 우리는 서로의 흑 역사, 특히 연애사에 대해 꿰뚫고 있다. 기억조차 나지 않는 이름과 사건, 그때의 감정들을 놀랍도록 대신 기억해 준다.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우리는 연애 찌질이였다. 낭만적인 연애를 꿈꿨지만 늘 실패했고 함께 울었다. 계산적인 척 했지만 선택은 늘 마음을 따랐다. 그때의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막말을 퍼붓기도 하지만 우리는 안다. 서로의 선택이 옳았음을.  


친구들 사이에서도 나는 으뜸 찌질이로 손꼽혔다.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나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인지 분별하지 못했기에. 흔히 말하는 ‘나쁜 남자’들만 만났다. 그리고 매번 차였다. 서른의 여름도 그랬다. 일방적인 이별 통보를 받은 지 1년이 되었을까. 연애에 대한 모든 자신감과 의욕을 잃은 상태였다.


“커피 한잔 갖다 드릴까요?”

정적을 깨고 한 남자가 나타났다. 대학원 상담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이었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흘끔 쳐다봤다. 멀끔한 얼굴을 한 남자의 손에는 커피 잔이 들려 있었다. ‘괜찮습니다.’라고 짧게 거절했다. 다음날, 또 커피를 들고 찾아왔다. 뭐야 이사람.


“선생님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새로운 프로젝트 전화통화를 많이 해야 해서 힘들죠? 저는 이번에 졸업을 하게 됐어요. 박사학위 받기까지 힘들었는데, 막상 박사가 되고나니.....”


말이 많다. 묻지도 않았는데 자기 이야기를 꺼낸다. 박사가 되어 자랑하고 싶은건가? 중간 중간 버터 바른 영어를 섞는 걸 보니 유학 다녀온 부잣집 아들내미인 것 같다. 세상사는 게 즐겁고 쉽겠지. 이런 사람일수록 조심해야 한다. 반바지 아래로 허옇게 드러난 그의 종아리를 보며 생각을 굳혔다. 하지만 홍삼물을 다려 마시는지 그는 지치지 않고 상담센터를 찾아왔다. 다음 학기, 내가 조교로 배정된 강의에 그가 교수로 왔다. 그리고 1년 뒤 우리는 결혼했다.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남편은 매일 교문 밖 커피 집에서 커피를 사왔다고 한다. 나와 무슨 이야기라도 해보고 싶어서. 유학은커녕 어학연수조차 가보지 못한 그의 있어 보이는 말투와 표정은 자신감일 뿐. 그의 집은 우리 집보다 경제적으로 더 어려웠다. 속사정을 이야기하면 줄행랑을 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다가왔다. 얼떨결에 가족이 되었지만, 참 고맙다. 사람 볼 줄 모르는 나를 먼저 알아봐줘서.



모찌야 고마워, 엄마를 알아봐 줘서


예비 입양부모들이 잊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 바로 아기를 만나는 날, 일명 ‘아기 선보기’다. 나 역시 모찌를 처음 만난 때를 또렷이 기억한다.


2017년 가을, 추석연휴가 막 끝난 뒤였다. 보육원 원장님의 안내를 받아 아기들이 지내는 방으로 올라갔다. 한 층 밖에 되지 않는 계단을 오르는데 식은땀이 흘렀다. 얼굴의 근육이 내 것이 아닌 것처럼 제 맘대로 움직였다. 이 모습을 보고 아기가 놀라면 안 되는데. 꼭 잡은 신랑의 손에서도 긴장감이 느껴졌다. 문을 열자 아기 하나가 엉금엉금 기어 나와 빼죽 쳐다봤다. 저 아기인걸까?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다. 여러 명의 아기들이 함께 모여 놀고 있었다.


“우리 OO이 이리 와볼까?”

보육선생님께서 엎드려 있던 아기를 안았다. 우리는 자리에 앉아 아기를 보았다.


“아가야 만나서 반가워.”

신랑이 아기를 번쩍 들어 올려 안았다. 공중에 몸이 뜨는 게 재미있는지 ‘까르르르’ 웃는다. 샛별 같은 작은 눈이 반짝였다. 모찌였다.


출산한 친구로부터 아기를 낳은 며칠은 내 아이가 맞나 실감 나지 않았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상상한 것과 너무 다르게 생긴데다 할아버지(?)같이 보였다고. 모찌를 처음 만났을 때 내 기분이 그랬다. 정말 반갑고 예쁜데 이 아이가 진짜 내 아이가 맞나 싶은 마음.


모찌는 유독 키가 크고 활동적인 아기였다. 분유를 1분 만에 원 샷하고 젖병을 옆으로 툭- 던지는 카리스마. 낮잠을 재우려 눕히면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잠을 이겨내고야 마는 강한 정신력. 언니들로부터 ‘OO스님’이라 불리 울 만큼 귀엽지만 독보적인(?) 외모. 선생님들로부터 ‘태능인 탄생’을 기대하게 만드는 근력과 운동신경. 그런 모찌를 신랑은 만화 드래곤볼에 나오는 ‘크리링’을 닮았다며 귀여워했다. 나는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았지만, 모찌를 떠올리면 그냥 웃음이 났다.


하루하루 모찌와 친해지던 어느 날 오후, 공원으로 산책을 갔다. 한참 영상을 찍고 있는데 어린 모찌가 말을 했다.


“여기요.”

“응? 여기요?? 모찌야 지금 말한거야?”


6개월밖에 안된 아기가 말을 하다니. 신랑과 나는 어리둥절했다. 찍었던 영상을 다시 돌려 보았다. 확실히 ‘여기요’라고 말을 한다. 순간 가슴이 멈칫했다. 모찌가 확신이 없는 나를 지켜보고 있던걸까? 우리 딸이 맞나 긴가 민가하는 엄마에게 말을 하고 싶었던걸까? 늦은 밤 다시 영상을 돌려보고 또 돌려봤다. 그리고 깨달았다.


“엄마, 나 엄마 딸 맞아요. 왜 이렇게 못 알아보는 거에요. 여기요~ 모찌가 있어요.”


눈물이 났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사람 보는 눈이 없다. 먼저 알아보는 법이 없다. 까막눈이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먼저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신랑과 모찌가 나를 알아봐주었다. 그렇게 보는 눈 있는 사람들과 함께 가족이 되어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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