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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처럼 Feb 07. 2019

까꿍, 엄마가 여기 있어

함께인 날도 함께하지 않은 날도

괜찮아 괜찮아 


모찌는 효녀다. 저녁 8시면 잠이 들어 새벽 6시에 일어난다. 간혹 잠이 깨서 울음을 터트릴 때도 있지만 대부분 바르고 확실하다. 덕분에 밤 시간을 여유롭게 보내는 보너스를 얻었다. 반면 아쉬움도 크다. 모찌와 함께하는 절대적 시간이 적어서일까. 기회가 생기면 신랑과 나는 모찌 돌보기 경쟁에 돌입한다.   


“아빠! 으아아아앙 아빠!”


남편이 달린다. 이 순간만큼은 우사인 볼트다. 가느다란 다리를 휘청거리며 거실에서 안방까지 3미터가 채 되지 않는 구간을 질주한다. 간택 받지 못한 나는 입과 귀를 빳빳하게 세우고 안방에서 나는 소리에 집중한다. 


“(뽀뽀, 뽀뽀) 우리 모찌, 무서운 꿈 꿨쪄여? 괜찮아 괜찮아. 아빠가 여기 있잖아. 아빠가 등 쓸어줄까? 배 만져줄까? 이제 하나도 안 무섭지? 아빠가 늘 옆에 있을게. 모찌가 하나도 무섭지 않게 옆에 있을게.”


조용하고 편안한 공기가 돌아왔다. 의기양양한 신랑이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린다. 쳇. 내키지 않지만 인정할 수 밖 에 없다. 현재스코어, 모찌의 잠투정 부문 랭킹 1위는 그다. 


“점점 느는데?”

“당연하지, 녀석 요즘에는 등만 쓸어줘도 잘 자잖아. 점점 스킨십을 좋아하는 것 같아. 내가 말했나? 오늘 아침에 자고 있는데, 모찌가 와서 뽀뽀를 하더라니까. 예전에는 그렇게 발로 얼굴을 까더니 이제는 뽀뽀를 해. 다 컸어.”

“진짜? 뽀뽀를 하면서 당신을 깨웠다구?”


거짓말 같지만, 거짓말 같은 변화다. 함께 자기 시작했을 무렵 모찌는 우리에게 곁을 주지 않았다. 낮에는 생글생글 안아달라고 조르고 어깨에 올라타며 신나했지만, 밤은 달랐다. 잠이 들면 손끝 하나 댈 수가 없었다. 옆에 누우면 발로 차고 얼굴이라도 쓰다듬으려 하면 소리를 질렀다. 마치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하는 것처럼. 곡을 하며 우는 아기가 안쓰러워 어쩔 줄 몰랐다. 옆구리에 꼭 껴안고 숨소리를 들으며 자고 싶었지만 멀리서 자는 모습을 지켜 볼 수 밖 에. 우리 사이가 친하고 가까워지면 조금씩 나아지겠지 하는 희망으로 섭섭함을 견뎠다. 기대의 크기만큼 아기에게 시간이 필요함을 인정해야했다. 그리고 보리쌀 같은 믿음이 자라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었다.  





너에게 달려가는 토요일


생후 6개월, 막 기기 시작한 모찌를 처음 만났다. 함께하지 못한 6개월을 돈으로 살수 있다면 전 재산을 내놓고 싶을 만큼 아쉬움이 컸다. 태어나자마자 젖 한번 물지 못하고 작은 베이비박스에 눕혀졌을 때, 차가운 주사 바늘이 여리디 여린 살을 파고들 때, 처음 보는 선생님 품에 안겨 낯선 보육원 방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 백일기념 케이크 앞에 앉았을 때, 첫 이유식을 입에 넣었을 때, 감기로 밤새 콜록대며 뒤척일 때.... 그 모든 순간에 함께 할 수만 있다면, 그림자가 되어서라도 그 옆에 있어 줄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감사한 분들의 돌봄이 우리 아기를 살렸지만 모찌가 홀로 감내했을 시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조여 온다. 작고 어린 생명이 얼마나 외롭고 고단했을까. 그 시간들을 모자람 없이 온전하게 채우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하루라도 빨리 ‘우리 집’에서 ‘우리’로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그것조차 쉽지 않았다. 입양특례법이 개정된 이후 베이비박스 아기들은 법원허가가 나야지만 엄마 아빠 품으로 갈 수 있다. 쉽게 말해 모찌를 입양하기로 했지만 판사님의 판결이 날 때까지 한 가족으로 살 수 없다는 뜻이다. 


다행히 보육원의 배려로 매주 한번, 2시간의 만남이 허락되었다.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지만 감사했다. 토요일 아침, 모찌의 선물을 차에 싣고 고속도로를 달릴 때면 행복했다. 우리 아기가 한주동안 얼마나 많이 자랐는지 상상하며 쏟아지는 피곤함을 이겨냈다. 5개월을 그렇게 모찌를 만나기 위해 왕복 2시간을 달리고 또 달렸다. 


“선생님~ 저희 왔어요!”

“어머나, 어머니 혹시 연락 못 받으셨어요?”

“네? 무슨 연락이요?”

“아이고 이걸 어쩌나.... 어머니 전화번호가 누락이 되었나보네요. 지난주에 다른 아기 가족 분들이 방문을 했는데, 그때 독감이 돌았나봐요. 아기 방에 비상이 걸려서 외부인 방문이 당분간 금지되었어요. 미리 연락을 드렸어야하는데 정말 죄송해요.”

“우리 모찌는 괜찮아요, 선생님?”

“네, 다행히 모찌는 독감에 걸리지 않았어요. 그런데 다른 아기들이 심한 상태라 만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혹시라도 또 옮게 되면 큰일이어서요.”

“그럼....그냥 현관에서 모찌 얼굴만이라도 보고 가면 안 될까요?”

“죄송해요, 방침이 그래서 어쩔 수가 없네요. 어떡하죠?”


가슴 한 가운데서 눈물이 쏟아졌다. 신랑 손에 이끌려 나왔지만 다시 달려가고 싶었다. 다음 주에 꼭 오겠다고. 1분도 늦지 않고 올꺼라고 모찌에게 약속했는데. 아무리 어려도 다 알텐데. 헤어질 때면 바닥에 엎드려 엉엉 울었던 모찌의 둥근 등이, 안쓰러운 눈망울이 떠올랐다. 


늦은 저녁, 모찌를 돌봐주시는 선생님으로부터 카톡이 왔다. 모찌의 영상이다. 옹알이를 한다. 

“아아빠아” 정확하게 ‘아빠’라 말한다.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지독한 독감이 한 달 넘게 방해공작을 펼치는 동안 영상을 보고 또 보았다. 





언제나우리는 함께야


“까꿍”

문 뒤에 숨어 있던 모찌가 앙증맞은 얼굴을 드러낸다.


“엄마 까꿍-”

다시 한 번 나를 향해 환하게 웃는다. 이내 통통통통 튀어서 냉장고 뒤로 숨는다. 


“우리 모찌 어디 있지?”

살금살금 걸어가 와르륵 모찌를 들어 올린다. 모찌같이 포송포송한 볼이 까르르르 웃는다. 허락한지 얼마 되지 않은 작은 입술을 쭈욱 내민다. 뽀뽀 연속 10회. 우리는 뽀뽀머신이다. 


한 집에서 살을 부비며 산지 1년, 많은 것이 변했다. 기다림과 이별이 길었던 만큼 서로를 밀어내고 끌어당기며 산다. 거친 발차기에 속이 상하고 멍들기도 하지만 한 뼘씩 다가오는 모찌를 보며 줄다리기가 잘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경기가 진행될수록 함께한다는 믿음이 쌓여간다. 승부 따위는 없다.   


앞으로도 끝없이 줄이 이어질 테지만 한없이 주고 싶다. 모찌가 우리를 완벽하게 신뢰할 때까지. 그리고 그 힘으로 세상에 대한 믿음이 돋아날 때까지. 언젠가 모찌가 자라 멀리 날아갈 때가 오더라도 늘 곁에 엄마 아빠가 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아낌없이 사랑하고 싶다. 함께인 날도 함께하지 않은 날도 우리는 가족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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