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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처럼 Feb 12. 2019

49개의 서류,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입양과정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서류에 대처하는 법

아직 내야 할 서류가 잔뜩 남아있습니다


단언컨대 입양은 서류와의 싸움이다. 아기를 만나기까지 견뎌야 할 시간의 무게만큼 준비해야 할 서류와 거쳐야 할 행정절차가 무겁다. 사전에 그런 것들을 꼼꼼히 알아보았다면, 솔직히 멈칫했을 것 같다. 준비성 없고 희망찬 성향 덕분에 겁 없이 덤볐지만 우왕좌왕하면서 2년을 보냈다. 



“여보, 아직 양육계획서 다 안 적었어?”

“OO아, 이왕 쓰는 거 잘 쓰고 싶은데 조금 더 기다려주면 안될까? 자꾸 보채면 마음이 급해져서 잘 못 쓸 것 같아. 내가 12월 안으로는 꼭 쓸게.”


입양기관에 제출해야 할 서류 리스트를 받은 지 두 달 째. 신랑은 여전히 양육계획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하루 만에 자기소개서와 양육계획서를 작성한 나로서는 속이 바짝 타들어갔다. 하루라도 빨리 아기를 만나고 싶은데, 아직 서류 제출조차 못하다니. 마음 같아서는 책상에 앉혀놓고 한 시간 내에 마무리를 지으라고 하고 싶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성격차이가 이런 건가. 진중한 성격의 신랑은 글을 고치고, 고치고 고쳐서 작품으로 다듬어 갔다. 


사실 기다려야 하는 서류들이 또 있었다.


“OO병원이죠? 혹시 입양관련 건강진단 하시나요?”

“네? 뭐라구요? 입영이요? 군대 말씀하시는 거 에요?”

“어 아니요, 아기 입양이요. 일반 건강검진에 약물중독이랑 알코올 중독검사가 들어가면 된다고 하는데요.”

“아 저희는 안 합니다-.” 


입양 건강진단에 대해 질문하고 설명하기를 수 십 번, 집근처에 있는 모든 병원을 뒤졌지만 건강진단서를 발급해주는 병원을 찾지 못했다. 결국 집에서 2시간 거리의 병원에서 검진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다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입양 건강검진 예약이 밀려 3주 후에나 검사가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래도 그게 어딘가. 감사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거듭했다. 검진은 생각보다 간결했고, 결과는 일주일 뒤에 나왔다. 


“여보세요, OOO씨 되시나요?”

“네, 저 맞는데요.”

“아 여기 OO병원인데요. 지난번 검사하신 거 결과가 나와서요. 혹시 그 날 뭐 드신 거 있으세요? 약물검사에서 이상반응이 나왔는데, 특별한 약 같은 것 드시나 해서요.”


약은커녕 금식하라고 해서 물조차 제대로 마시지 않았다. 그런데 약물반응이라니. 다시 한 번 검사를 진행해보기로 했다. 다시 예약, 그리고 기다림. 2주 뒤 이상소견 없음 판정을 받았다.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다. 심리검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정된 임상심리사와의 예약, 검사, 결과통보까지 참 길었다. 의지와 상관없이 늘어지는 시간에 분이 났다. 그래도 한 생명을 만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니까 감내하자. 감사히 생각하자 다짐했다. 3개월 동안 준비한 서류는 29개. 이제 끝이다. 





처음이자 마지막 끝이고 시작인 


“어머니, 서류 잘 받았습니다.”

반가운 담당선생님의 전화다. 봄이 되면 아기를 만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한껏 기분이 들떠 전화를 받았다. 


“네 선생님, 생각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렸어요. 이제 다 된 거죠? 아기는 언제 만나요?”

“아 그게 말이죠. 추가 서류가 조금 더 필요할 것 같아요. 작년에 전달해드리지 못한 것도 있고. 어머니 심리검사결과나 의료기록 때문에 더 필요한 것도 있구요. 제가 서류들 메일로 보내 드릴 테니까 한번 확인해보세요.”


가슴이 무거웠다. 난임 때문에 정신과 치료를 받은 것이 문제가 된 걸까. 마음을 다잡고 연 메일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 개인정보 제공동의서 (오케이-)

- 근로활동 및 소득신고서 (오케이-)

- 근로소득확인서 (위의 것과 무슨 차이?)

- 납세증명서, 지방납세증명서, 잔액증명서 (그러니까...무슨 차이??)

- 입양부모 적격추천서 

- 우울증에 대한 의사 소견서


두 개의 항목에 눈이 갔다. 올 것이 왔구나. 왜 예감은 빗겨 나가는 법이 없는 걸까?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더 잘 준비해서 나와 신랑이 한 아이를 양육하기에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내자. 입양부모 적격추천서는 우리를 잘 아는 지인의 추천서면 된다고 했다. 신랑은 십년 넘게 알고 지내며 기도해주셨던 목사님께 추천서를 부탁했다. 그리고 나는 지도교수님께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가족 외에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던 입양에 대해 이렇게 말을 하게 될 줄 몰랐지만. 양식을 드린 지 하루 만에 두 분 모두에게 답장이 왔다. 정성어린 글에는 우리 부부에 대한 애정과 신뢰, 힘 있는 추천의 말이 담겨 있었다. 목 안쪽 깊이 두껍고 뜨거운 무언가가 느껴졌다. 우리를 증명해내기 위한 끝 모를 사투 속에 든든한 지지자를 얻었다. 


2년간 나를 지켜본 의사선생님을 찾아갔다. 한마디도 나오지 않아 종이에 글씨를 써서 상담했던 그 자리에 다시 앉았다. 선생님을 만나면 또 눈물이 덮칠까봐 두려웠는데, 환하게 반겨주시는 눈빛에 마음이 놓였다. 한 시간 정도 대화를 나눴을까. 내 손에 소견서 한 장을 쥐어 주셨다. 과거에 주요 우울장애가 있었으나 현재는 그 증상을 발견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허무할 정도로 짧고 건조한 그 글이 얼마나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사람들은 알까? 의사로서 이런 소견서를 적는 것이 얼마나 부담이 되는 일인지 짐작조차하기 어렵지만 마음을 다해 감사했다. 참 좋은 의사선생님을 만났구나, 그래서 이렇게 빨리 회복될 수 있었구나. 


부담으로 느껴졌던 추가서류가 힘든 시절 우리를 도왔던 분들을 기억하게 해주었다. 그동안 기도와 상담, 강의와 치료로 전달받았던 진심을 정돈되고 따뜻한 글로 선물 받았다. 





그럼에도 입양을 합니다


이후로도 서류제출은 끝없이 이어졌다. 두 달을 기다려 부모교육 이수증을 받았고, 시간이 경과되어 효력이 없어진 서류들을 다시 제출했다. 두 차례의 가정방문 끝에 가정방문조사서가 나왔다. 모찌를 만난 뒤 필요한 서류가 추가되었고, 법원 판결이 난 이후에는 행정적으로 제출해야 하는 것들이 뒤따랐다. 신랑과 나의 이름 아래 모찌의 이름이 적히기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서류들이 오고 갔다. 


아이를 낳으면 출생신고만 하면 된다는데, 입양은 왜 이렇게 어려운걸까. 반가웠던 담당 선생님의 전화가 점점 받기 싫어지고 낯선 이름의 서류가 더해질 때마다 맥이 풀렸다. 내가 이렇게 가진 것이 없었나 보잘 것 없는 숫자 앞에 어이가 없었다. 또 잠재적인 아동학대행위자 취급을 받는 것 같아 기분이 상했다. 우울했던 이유가 난임 때문인데, 우울하면 입양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말이 모순처럼 들렸다. 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우울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텍스트로는 전달하기 어려운 썩 괜찮은 내가 있는데 증명하기가 어렵다. 여러모로 억울하다. 


그럼에도 이 모든 과정을 달갑게 받아들인 것은 우리와 한 가족이 될 아기를 생각해서였다. 아기에게 새로이 만나게 될 부모는 미지의 세계다. 얼떨결에 만난 엄마 아빠가 흔들린다면 아기의 세계도 흔들릴 수 밖 에 없다. 내 욕심만으로 입양을 진행할 수는 없다. 이미 헤아리기 어려운 아픔을 겪은 아기를 위해 최소한의 검증과정은 당연한 절차다. 


서류의 징검다리를 밟으며 앞으로 걸었다. 사이가 너무 멀어 용기를 내어 펄쩍 뛰어야 했고, 끝이 보이지 않는 길에 막막하기도 했다. 하지만 손잡고 함께 걷는 사람이 있었고 파이팅을 외치는 이들이 있었다. 한낱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지만 한 장 한 장 야무지게 밟으니 내가 보이고, 우리가 보였다. 그리고 그 길 끝에는 우리 모찌가 있었다. 이보다 더 멋지고 드라마틱한 여행이 있을까.  





* 제목에서 언급한 49개의 서류는 

2년간 우리 부부가 제출했던 서류의 수로 

지금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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