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원이 아닌 어린이집에 갑니다.
나 밖에 모르는 딸이어서 미안합니다
가능하면 모찌가 만3세가 될 때까지 집에서 보살필 계획이었다. 태어나자마자 보육원에서 단체생활을 시작한 아기이기에 안정적인 가정생활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다. 보육원 원장선생님도 아기를 너무 빨리 어린이집에 보내면 보육원과 헷갈려 할 수 있으니 여유 있게 보낼 것을 권하셨다.
“언니, 모찌 어린이집은 안 보내?”
타지에서 4살 된 딸을 키우고 있는 친구에게 카톡이 왔다.
“응, 아직 모찌가 너무 어려서 조금 더 크면 보내려구. 채나는 어린이집 잘 다니지?”
“어어, 잘 다녀. 오후시간도 보내고 싶은데 아직 자는 게 익숙하지 않은가봐. 선생님이 다른 애들한테 방해된다고 집에 가서 낮잠 자는 연습 좀 더하고 오라고 하셔서. 근데 어린이집 안보내면 어머니가 너무 힘들어하시지 않아?”
“우리 엄마? 아니? 아기 보는 거 크게 힘들다고 안하시던데?”
“아이고 언니, 그거다 하는 말씀일거야. 혼자 애 보는 게 얼마나 힘든데. 그리고 어머니 연세도 있으시잖아. 애보다보면 폭삭 늙어.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모찌 어린이집 한번 생각해봐.”
“그래, 한번 고민해보지 뭐.”
별 생각 없이 대화를 마무리했다. 모찌가 우리 가족이 된 지 두 달, 아직은 이르다. 친구는 도와주는 사람 한명 없이 아이를 키우느라 고생했지만 우리는 나와 신랑, 그리고 친정엄마가 교대를 하고 있다. 힘들겠지만 몇 년 정도야 잘 감당할 수 있지 않을까?
일은 석 달 째 터졌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니 이불 위에 피가 여기저기 묻어 있었다.
“엄마~~~ 이게 뭐야? 이불에 피가 묻어 있는데, 엄마 손 다쳤어?”
“어? 아아 아까 모찌 씻기다가 코피가 좀 났는데, 그게 묻었나보다.”
“뭐? 모찌가 코피 흘렸어?”
“아니, 모찌가 아니라 내가. 별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어.”
별일 아니라 생각했다. 피곤 할 때면 종종 코피를 흘리셨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런 줄 알았다. 집에 가서 얼른 쉬시라고 당부한 뒤 나도 모찌와 함께 자리에 누웠다. 새벽 1시쯤 되었을까,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엄마?”
“어, OO아. 지금 코피가 멈추질 않는데. 병원에... 좀 가야 할 것 같아.”
엄마 집으로 달려갔다. 빌라 앞에 도착하자 두려움에 몸을 덜덜 떨고 있는 엄마가 있었다. 코 아래 통째로 갖다 댄 두루마기 휴지는 피에 젖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차 옆자리에 엄마를 태우고 힘껏 엑셀을 밟았다. 15분 거리를 가는 동안 귀에 걸어드린 비닐봉지가 묵직해졌다. 응급처치를 받는 동안에도 피는 울컥울컥 쏟아졌다. 아무리 긍정적인 눈으로 보려 해도 초보 의사의 처치가 마뜩치 않았다. 혈관이 약해지면 그럴 수 있다는 확신 없는 답변에 답답함이 몰려왔다. 알 수 없는 기구를 코에 넣은 지 두 시간 정도 지났을 때 다행히 코피가 멈췄다.
“우짜노, 니 내일 출근해야 되는데. 나 때문에 이렇게 잠도 못자고 고생해서.”
“뭔 소리야. 됐어. 엄마가 아픈데...회사는 쉬엄쉬엄 하면 돼.”
솜을 우겨넣은 코가 주먹 만해졌다. 그런데도 내 걱정만 하다니, 짜증이 난다. 엄마를 집에 모셔다 드리고 돌아왔다. 걱정으로 밤을 샌 신랑이 반겨주었다. 쌔근거리며 자는 모찌의 얼굴을 보니 피곤이 몰려왔다.
“OO아~ 또 그런데이. 이거 우짜면 좋노. 흑흑 아무래도 나 죽나보다.”
다음날 밤, 처음 듣는 엄마의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로 들려왔다. 피를 멈추게 하는 장치를 빼자마자 피가 쏟아졌다고 한다. 미친 사람처럼 차를 몰았다. 엄마는 울고 있었다. 연이은 응급실 행에 의료진도 생각이 달라졌는지 검사가 진행됐다. 한참이 지나서야 의사가 나타났다.
“보호자 되시나요?”
“네, 제가 보호자인데요.”
“어머니 염증수치가 굉장히 높게 나왔어요.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지금 알아보고 있는데, 현재로서는 담낭염일 가능성이 높아요. 바로 입원수속 하시고 검사 진행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눈물이 났다. 아침저녁으로 만나고 함께 밥을 먹었는데 엄마가 아픈 줄 몰랐다. 아니 아프다는 사실을 모른 척 한 걸지도 모른다. 며칠 전 몸이 좋지 않아 모찌를 유모차에 태우고 병원에 다녀왔다고 말한 게 그제 서야 생각났다. 괜찮다고 해서 괜찮은 줄 알았고, 별일 아니라고 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내가 일을 하는 동안 엄마가 모찌를 돌봐주시니 편했고, 넉넉하지는 않지만 사례를 하니 조금은 마음을 편하게 먹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어린 아기를 돌보는 일이 젊은 사람에게도 결코 쉽지 않은데, 모찌를 잘 돌보고 싶은 욕심에 엄마를 돌보지 못했다.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자신 있었던 건지. 엄마가 병원에 입원한 그날 아이사랑사이트에 처음으로 접속했다. 카드를 신청하고 가까운 어린이집에 대기를 걸었다.
나보다 나은 딸이어서 감사합니다
“모찌 어머니 되시나요?”
“네 그런데요.”
“여기는 OO어린이집인데요. 입소대기자 1순위에 모찌가 있어서요. 혹시 등록 하실 건가요?”
“아아 네, 제가 가족들하고 상의한 다음에 다시 전화 드려도 될까요? 언제까지 연락드리면 되나요?”
“대기하는 아동들이 많으니 가능하면 오늘 중으로 전화 부탁드릴게요.”
“네, 고맙습니다.”
어린이집 전화다. 대기를 걸어 놓은 지 7개월 만이다. 아무리 대기 1순위어도 신학기가 되지 않으면 자리가 나지 않는다기에 잊고 살았다.
원인을 밝히지 못한 채 3주를 병실에 누워있던 엄마의 건강은 기적처럼, 회복되었다. 모찌를 돌보는 스킬도 놀라울 정도로 업그레이드되어 술렁술렁 즐겁게 봐주신다. 모찌도 할머니 품에서 자유롭게 지낸다. 그래서 전화를 받고 잠시 망설였다. 지금처럼 한해만 더 보내면 안 될까. 하루만 더 생각해보자. 하지만 다시금 코피를 쏟았던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일을 하지 않고도 모찌를 돌볼 여력이 된다면 유치원 전까지 끼고 있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내가 돌보고 가끔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정도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사회적인 성공이나 경력만을 위해 일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내가 일을 해야 모찌와 우리가 살아갈 수 있다. 혹자는 능력도 되지 않으면서 왜 아이를 입양 했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예전 같으면 ‘아이를 돈만으로 키우나요?’라고 반문 했을 테지만, 지금은 자신이 없다. 모찌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기 때문에. 그래도 모찌를 사랑하는 엄마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기에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저녁 식사시간, 가족이 식탁에 모였다.
(나)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어. 3월 입학라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
(친정엄마) “아이고 그래 빨리 가노? 아직 너무 얼라 아이가.”
(신랑) “아휴, 장모님. 장모님도 좀 쉬셔야죠. 1년 동안 애쓰셨잖아요.”
(나) “맞아 엄마, 이제 모찌도 3살이고 잘할 수 있어.”
(신랑) “모찌 좀 보세요. 애가 당당하고 밝잖아요. 사람도 너무 좋아하구요. 이게 다 장모님 덕분이에요. 좋은 성품 길러주셨으니 잘 적응할거에요. 또 모찌도 집에만 있는 것보다 가서 선생님도 만나고 친구들하고도 어울리는 게 훨씬 재미있을 거 에요.”
(나) “우리 모찌, 어린이집 갈 거 에요?”
(모찌) “네!”
(나) “가서 친구들하고 재미있게 지낼 거 에요?”
(모찌) “네에!”
우렁찬 모찌의 목소리가 단숨에 걱정을 날려버린다. 참 시원시원하다. 어른들과의 대화가 재미있어서 한 대답이겠지만, 그 한마디에 힘을 얻는다. 어쩔 때 보면, 아니 대부분의 순간 나보다 낫다. 기가 막힌 우리 딸.
그렇게 모찌의 어린이집 입성이 결정되었다. 단, 아주 길게 적응기간을 가지기로 했다. 첫 주는 하루 한 시간, 그리고 그 다음 주는 2시간, 조금씩 늘려가며 모찌가 가장 즐겁게 지낼 수 있는 정도를 찾기로 했다. 적응에 실패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또 그때의 최선을 찾아보려 한다. 어린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이 마음 아프다고 전전긍긍하면 그 마음이 아이한테 오롯이 전달될 것 같다. 입양된 아기라고 해서 무조건 가정양육만을 고집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건강하고 행복해야 모찌도 행복한 거니까.
나보다 나은 우리 딸 모찌
너의 첫 사회생활을 응원해.
친구들과 우당탕탕 뛰놀고
마음껏 웃고 안아주렴.
선생님께 배꼽인사하고 돌아오는 길
할머니와 손 꼭 잡고
길가에 흔들리는 강아지풀을 보아.
훌쩍 큰 키만큼 보드라운 네 볼만큼
자라 있을 거야.
네가 좋아하는 사과를
토끼 친구로 변신시켜 놓을게.
와그작와그작 맛있게 먹고
우리 뽀뽀를 하자.
사랑해 우리 아가, 어여쁜 모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