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처럼 Feb 25. 2019

기도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열심히 기도하면 엄마가 될 수 있나요?

모두가 손 모아 기도하면

     

“어머나~ 신부가 너무 예쁘다!”

“아 뭐야 이러려고 늦게 결혼하는 거였구나? 어머 안녕하세요? 저희는 OO이랑 친한 선배에요. 결혼 진짜 축하드려요.”

“우리 OO이 나이도 많으니 얼른 아이 가져야할텐데. 예쁜 아기 빨리 가지시길 기도할게요!”


삼십분 째 모르는 얼굴들이 신부대기실을 찾아왔다. 대부분이 신랑 손님일 거라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에어컨을 틀어 놓았는데도 7월의 무덥고 습한 기운이 작은 공간을 빈틈없이 채웠다. 연신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미소를 놓치지 않기 위해 힘을 다했다.


(복화술) “뭐야, 왜 다들 너한테 애를 낳아라 마라 난리야?”

(미소를 머금고) “몰라, 다 축하해주고 싶어서 하는 말이겠지. 엄한 소리 하지 말고 거기 물통 좀 줘봐. 왜 이렇게 더워?”


들러리를 자처한 친구의 입에서 볼멘소리가 나왔다. 입에 갖다 댄 빨대로 물을 삼키며 잠시 생각했다. 하긴 처음 만난 사이에 주고받을 덕담은 아닌 듯하다. 그래도 뭐 어떠한가. 오늘 주인공은 바로 나, 결혼식을 축하해주기 위해 오신 분들이니 어떤 덕담도 그저 감사하다. 오랜 신앙생활을 해온 양가 부모님과 신랑 덕분에 많은 기독교인들이 결혼식을 찾아 주셨다. 이제 막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나로서는 어색한 부분이 없지 않지만 따뜻한 격려의 말들이 듣기 좋았다. 무엇보다 아빠도 없고, 친구도 적은 내가 이렇게 많은 축하를 받으며 결혼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교회에서의 결혼이 감사했다.


유쾌하고 경건했던 결혼식의 마지막 순서, 초청 목사님의 축복기도가 이어졌다. 앞으로 이뤄갈 가정에 대한 책임과 무게감이 느껴지는 문장들이 지나가고 축복의 말들이 쏟아졌다. 모두 기억에 담지 못했지만 진심이 스민 기도였다. 그리고 마지막 한마디,


“이 가정에 하늘의 별처럼 무수히 많은 자손을 허락하여 주소서.”

“아멘.”


모두의 아멘소리가 커다란 복덩어리가 되어 가슴에 콕 안겼다. 이렇게 많은 축복을 받아 본 적이 있던가. 참 운도 없고 복도 없다고 생각했던 내 삶에 은하수가 물결처럼 쏟아지는 것 같았다.


신랑은 삼십대의 마지막 해, 나와 결혼했다. 장가가기를 포기한 듯 보였던 사람이 결혼을 하니 축하의 크기가 남달랐다. 덩달아 빨리 아이를 갖기를 바라는 응원(?)의 열기도 대단했다. 내심 그 응원이 싫지만은 않았다. 반장이 될 생각은 딱히 없지만, ‘OO이를 반장으로 추천합니다.’ 라는 친구들의 말에 터져 나오는 웃음을 누르고 어깨를 으쓱하며 단상 앞으로 나올 때처럼 말이다. 그래서 신혼 초에는 아이를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다. 왜? 당연히 아이가 생길 테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축복했으니 의심할 여지가 없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뒤 친한 동료와의 점심식사 자리였다.


“선생님 그거 알아요?”

“뭐요? 나 없는 동안 회사에 무슨 일 생겼어요?”

“아니. 하하하. 우리 회사에 임신의 축복 있는 거요.”

“에에? 그게 뭐에요?”

“우리 회사 직원들 임신 엄청 잘 되잖아요. 우리가 하는 일이 그래서 그런가. 아무튼 반 이상이 허니문 베이비 아니면 6개월 내로 아이를 갖는다니까요. 이 사진 좀 봐요.”


휴대폰 화면 위를 보았다. 동그랗게 부푼 배를 안고 있는 A팀 김대리님과 C팀 이과장님 그리고 H팀 신입사원 OOO선생님.... 사진 속에는 모두 9명의 임산부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같은 해에 아이를 가진 것을 기념하여 사진관에서 사진을 남겼다고 한다.


“우리 아기도 허니문 베이비잖아요. 전 진짜 그렇게 빨리 아이를 갖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확인하고 나서 얼마나 놀랐던지. 요즘에는 또 갑자기 둘째 생기면 어쩌나 좀 걱정 되요. 잠깐만, 선생님도 혹시 허니문?”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결혼하면 바로 아이가 생기는 사내문화(?)에서 나만 예외일리 없지. 그 날 바로 테스트기를 샀다. 결과는 꽝이었지만 상관없다. 허니문베이비가 아닐 뿐 금세 아기가 생길 테니까.


몇 달이 흘렀다. 비슷한 시기에 결혼한 직장 동료들의 임신 소식에 조금씩 마음이 흔들렸다. 약속이나 한 듯 6개월 내에 임신을 한 그녀들은 당당하고 맑은 얼굴로 ‘잠시 출산 휴가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단지 임신이 늦어질 뿐인데, 왜 전쟁터에 홀로 남게 된 군인 같은 기분이 드는 걸까? 퇴근시간,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임신을 하게 되면 신을 낮은 단화를 검색했다.




아이를 가지지 못하면 복이 없는건가요


결혼 전, 익숙하지 않은 교회문화에 대해 걱정할 때 엄마는 말했다. 사람들이 곤란한 질문을 하거든 예쁘게 웃으며 ‘잠시 화장실에 좀 다녀올게요.’라고 말하라고. 결혼 2년차, 나는 자주 화장실에 가게 되었다.


상황 1> 로비

“아휴, 새댁 결혼한지가 꽤 됐는데 왜 아이가 안 생길까?”

“왜 그런 곤란한 질문을 하고 그래. 하나님이 어련히 알아서 주실까.”

“네. 주시겠죠. 하하하. 잠시만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상황 2> 수요일 저녁

“어머나, 열심히 기도하는 거 보니까, 아기기도 하는 거 맞죠? 사람들은 쉽게 애가 생긴다고 생각하는데 아니라니까요. 나도 아이 달라고 얼마나 정성을 다해 기도했는지 몰라요. 이게 한 사람 기도로는 절대 안 돼. 중보가 필요하다니까. 내가 같이 기도해줄게요.”

“네, 감사해요. 저 잠시 화장실이 급해서...”


상황 3> 신랑과 다투고 분해서 눈물이 났을 때

“뭐야 새댁? 지금 우는 거야? 그래 맞아, 눈물이 나지. 왜 안 그러겠어. 속상하지. 그렇게 다 쏟아내며 기도해야 하는 거야. 그럼 하나님께서 들어주시거든. 모쪼록 아이 가지려면 마음을 편하게 가져야 해요.”

“네에. 저 잠시만요...”


상황 4> 가족 모임

“우리 OO이 태를 열어 주시고.... 귀한 아이를 보내주셔서....”

“...........”


상황 5> 선배와의 전화통화

“아무래도 교회에서 봉사를 적게 해서 그런 거 아닐까? 생각해봐. 너 기독교인 된지 얼마 안됐잖아. 그런데 이것저것 달라고만 하면 주겠어? 너도 네가 믿는 하나님한테 뭘 드릴 게 있나 한번 생각해봐.”

“그런가?”


상황 6> 조모임

“이게 다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는 거 아닐까요? OO님이랑 OO님을 좋은 신앙인으로 훈련시키기 위해서요. 그 훈련이 끝나면 하나님께서 분명 선물을 주실 거 에요.”

“여보 나 배가 좀 아파서. 잠시만요.”


정작 내가 기도하고 있는 신은 묵묵부답인데 주변의 해석이 어지럽게 춤을 췄다. 그냥 하는 말이려니 넘기고 싶었지만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어려웠다. 사람들로부터 도망쳐 우두커니 앉은 화장실 안에서 그들의 말을 떠올렸다. 신앙의 선배, 아니 아이를 먼저 가진 경험자들의 말을 무시할 수가 없다. 마음의 중심이 다부지지 못한 내가, ‘아이는 좀 나중에 가지려구요.’그런 식상한 거짓말조차 하지 못하는 내가 미웠다.


그러던 어느 날, 가까운 친척의 임신 소식에 어렵게 붙들고 있던 멘탈이 허물어져 내려앉았다. 거짓 없이 말하자면 축하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의 도리를 하라는 가족의 권유에 못이겨 몇 번을 지우고 다시 써서 축하의 말을 문자로 전했다. 이윽고 답장이 왔다.


“축하 감사해요! OO님도 언젠가 하나님께 선물을 받게 되실꺼에요. 평안하시길 바랄게요!”


그녀의 카톡 프로필을 보았다. ‘하나님 땡큐, 선물 감사’라는 메시지와 함께 태아사진이 있었다. 눈물이 뚝 떨어졌다. 친구목록에서 삭제 버튼을 눌렀다. 바로 몇 시간 전, 산부인과에서 아이를 갖기 어렵다는 말을 듣고 난 뒤였다.


무슨 이유로 누구는 선물을 받고 누구는 선물을 받지 못하는 걸까. 그동안의 내 기도는 모두 헛된 것이었을까. 아니면 혹자의 말처럼 눈물로 쌓은 기도가 높이 쌓여야 하늘에 닿는데 아직 덜 쌓인 걸까. 나를 좋은 신앙인으로 거듭나게 만들기 위한 신의 훈련이라면 거절하고 싶다. 애초에 좋은 신앙인이 되고 싶은 생각 따위 없었다. 그냥 큰 욕심 없이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어 살아 보고 싶었다. 고난을 겪은 뒤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는 거라면 평생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살고 싶다. 왜, 이렇게까지 비참한 기분을 느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도 없다. 인간관계라면 ‘에라이, XX XXX!’ 욕 한번 우렁차게 쏟아내고 끝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미련이 많다. 기도라도 해야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는 그 시간을 견딜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기도했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내게도 선물을, 복을 달라고.



    


‘선물’이 아닌 ‘기적’입니다.


남편의 수술이 끝나고, 기도를 멈췄다. 말을 할 수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더 이상 기도할 거리가 없어서다. 목 놓아 울지 않아도 되니 좋았다. 사람들이 그토록 강조했던 마음을 편안하게 먹는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무념무상, 아무생각도 나지 않고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이를 바라는 기도를 시작하며 쓴 일기장을 펼쳤다. 빼곡하게 적어내린 글씨에는 나의 부족함과 죄에 대한 고백이 반복해서 쓰여 있었다.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이런 고해성사가 아이를 갖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다고. 한 장 한 장 정성을 들여 찢었다. 내게 잘못된 신앙을 강요하고 종교적 죄의식을 심어 주었던 모든 이들과 함께.


얼마 전 모찌와 함께 갓 태어난 아기가 있는 집에 갔다. 우리보다 더 오랜 기간 난임으로 마음 앓이를 한 부부는 올해 초 아이를 낳았다.


“정말, 정말 축하드려요. 어디 보자, 우리 상진이. 세상에 선생님을 쏙 빼닮았네요!”

“어 진짜네? 강선생님이 강선생님을 낳은 거 에요?”

“모찌야~ 아기 상진이야. 상진이 알지? 엄마가 얘기해줬잖아.”

“샹지니이? 아가아?”


동일한 기독교의 테두리 안에서 난임과 불임을 겪은 우리는 쉽게 이야기 하지 못한다. 우리의 아이들이 ‘축복’이나 ‘선물’이라고. 입양과 시험관시술로 얻은 이 아이들은 그저 우리 인생에 일어난 ‘기적’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기도의 산물이나 적절한 선행, 우월한 신앙의 결과가 아님을 잘 안다.


돌이켜보면 내가 믿는 신이 나의 기도를 꼭 들어줘야 할 이유는 없다. 모찌가 울고 불고 달라고 애원해도 안되는 게 있는 것처럼. 아니, 다른 계획이 있다면 더 들어 줄 이유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또 신이 그리 했는지 알 수는 없으나 나의 바람과는 반대로 악몽 같은 일들이 이어지기도 한다. 이렇게 야박하게 느껴지는데도 여전히 내가 신을 믿는 이유는, 내가 경험한 기적 때문이다. 누구는 주고 누구는 주지 않는 선물이 아니라 내 삶에 줄기차게 이어지는 크고 작은 기적들 때문에. 아이가 생기든 아니든 그 기적들이 내가 생각하거나 계획한 장면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모찌와 한 가족이 되고 한 달 뒤, 신랑은 10년 넘게 다니던 직장을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두달 뒤 친정엄마는 원인도 모른 채 병원에 입원을 했다. 또 한달 뒤 신랑의 목과 허리 디스크가 터졌다. 울고 싶은 일들이 쉴새없이 터졌다. 아이가 생겼다고 불행 끝, 행복 시작이 아니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그 와중에 웃을 일이 참 많다는 것, 상상도 못했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고통 중에도 기쁨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이 기적이다. 다만 지금은, 내 삶의 경험을 토대로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조언을 하지 않으려 무던히 애쓰고 있다. 진짜 기도할 게 아니라면 기도하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입양에서 얻은 기쁨이 크지만 아이를 갖지 못해 가슴 아픈 분들께 함부로 입양을 권하지 않는다. 각자의 바람을 응원한다. 그리고 그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모두에게 찾아올 또 다른 기적을 기대한다.

이전 11화 이제 어린이집에 가도 될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