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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처럼 Mar 12. 2019

편견에게 전하는 인사

인사요정 모찌가 세상을 대하는 법 

모찌엄마의 소원은 마트에 가는 것?

     

“모찌가 집에 오면 제일 먼저 뭘 해보고 싶어?”

“나? 글쎄, 뭘 하든지 다 좋을 것 같은데. 당신은 특별히 해보고 싶은 게 있어?”

“응, 나는 모찌랑 마트에 갈 거야. 아주 예쁜 유모차에 모찌를 태우고, 어깨 쫙 펴고 당당하게 몇 시간이고 마트를 빙빙 돌 거야.”


상상만으로도 벅차다. 아이가 없던 시절, 대형마트에 가는 것은 몹시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 아이를 많이 낳지 않아 사회적으로 문제라고 하던데 주말이면 마트는 아이들로 붐볐다. 아이가 없다는 사실이 부끄럽지는 않았지만 단란한 가족의 모습과 마주하면 나도 모르게 위축이 되었다. 더 진심을 드러내어 말하면, 불임 판정을 받고 한동안은 마트나 쇼핑몰에서 스치는 유모차만 보아도 눈물이 흘렀다. 부러움 때문이기도 하고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억울함에서 비롯된 눈물이기도 했다. 신랑과 같이 가는 날에는 의식적으로 아이들을 쳐다보지 않았다. 혹시라도 속상해하는 모습을 보이면 그에게 너무 큰 죄책감을 안겨줄 것 같아서다. 하지만 마트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새댁’이 아닌 ‘애기엄마’라는 호칭으로 부르기 시작하면서 더 마음이 불편하고 우울해졌다. 장은 되도록 목요일 밤에 혼자 보았다. 최대한 아이들과 덜 마주치기 위해서. 


고민 없이 우리의 첫 외출 장소로 대형마트를 떠올렸다. 모찌를 만나기 전의 속상함이 얼룩진 그 마트로 가자. 모찌가 집에 온지 2주 정도 되었을까. 마음이 급한 나는 퇴근길에 모찌와 친정엄마를 차에 태웠다. 


“엄마~ 모찌 내복 입혀서 나왔지?”

“당연하지. 근데 알라를 이래 늦은 시간에 데리고 나와도 되겠나?”

“에이 오늘 하루만. 나 진짜 모찌랑 마트에 가보고 싶어서 그래. 그때 보육원 선생님도 그러시던걸. 보육원 아이들은 일상생활을 경험해 볼 기회가 적다고. 모찌도 태어나서 한 번도 마트에 가본 적이 없잖아. 벌써 돌인데.”


준비해둔 유모차를 차에서 꺼내고 모찌를 앉혔다. 혹시라도 추울까봐 모찌의 머리에 두툼한 헤어밴드를 씌우고 점퍼의 지퍼를 단단히 올렸다. 


“모찌야, 여기가 어디 게? 여기는 마트야. 먹을 것을 사려고 왔어. 우리 모찌 마트에는 처음 와보지? 엄마랑 할머니랑 옆에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맛있는 거 많이 사서 가자!” 


드디어 마트 출입구로 진입, 가슴이 떨렸다. 조심스럽게 유모차를 앞으로 밀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 다행이다. 자연스럽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식품관으로 이동했다. 한 바퀴를 천천히 돌았다. 지금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시금치며, 두부 등을 담았다. 요거트를 판매하는 분이 ‘아기들도 좋아해요. 한번 드셔보세요.’라고 한다. 내가 진짜, 엄마처럼 보이는 걸까? 뭉클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찌는 눈을 크게 뜨고 여기저기를 휘둘러보느라 정신이 없다. 기둥에 있는 거울에 모찌와 내 모습을 비춰보았다. 유모차 앞에 낯선 내가 서 있다. 모찌가 벙긋 웃는다. 나도 싱긋 웃어 화답한다. 이게 뭐라고. 명치에 묵직하게 자리 잡았던 돌덩이가 빠져 나가는 것 같다. 그날 밤, 어린 아이를 데리고 늦은 시간에 나갔다 왔다고 신랑에게 한소리 들었다. 첫 마실에 피곤했는지 모찌도 집에 돌아오자마자 곯아 떨어졌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날의 느닷없는 외출이 오래도록 엉켜있던 마음을 푸는 첫 지점이었음을. 단절되어있던 세상에 함께 손잡고 한걸음을 내딛는 첫 순간이었음을 말이다.  




모찌의 소원은요

     

처음이 어렵지 그 다음은 쉽다. 신랑까지 합세하여 우리는 주말이면 신이 나서 외출을 했다. 대형마트, 쇼핑몰, 공원 등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갔다. 유모차를 미는 것도 즐겁고, 벤치에 잠시 앉아 간식을 먹는 것도 좋았다. 미지의 세계였던 유아휴게실에도 서슴없이 들어갔다. 젖병을 양손에 꼭 쥐고 야무지게 우유를 먹는 모찌는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기저귀를 갈아 줄때도 ‘아이고 예뻐라’ 소리가 절로 나왔다. 애써 모른 척 했던 삶에 눈을 떴다. 더 이상 의도적으로 유모차 부대를 피해 다른 길을 택할 필요가 없다. 모찌가 아니었다면 이런 기쁨이 있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첫 외출 이후 모찌는 크게 달라졌다. 긴장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리기만 하던 녀석이 마트를 다시 찾았을 때는 눈빛이 반짝였다. 그리고 모찌의 귀여운 소원풀이가 시작되었다. 


“아찌 빠빠이~.”


유모차에 탄 모찌가 인사를 한다. 평일 오전이어서인지 사람이 드물었다. 일하시는 분들은 매대를 정리하고 있었다. 모찌는 마치 국위선양을 하고 돌아온 국가대표선수처럼 그분들께 인사를 건넸다. 작은 유모차는 어느새 퍼레이드 카가 되었다. 차가 앞으로 나갈 때마다 양손을 격하게 흔들며 ‘빠빠이’를 외쳤다. 그 모습이 기가 막혀 웃음이 나온다. 모찌의 우렁찬 안부인사에 놀란 분들도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빠빠이-’라고 답해주셨다. 보육원 작은 방을 떠나 낯선 세상에 갑자기 서는 것이 두렵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나보다. 모찌는 이미 세상에 인사를 건넬 준비가 되어 있었다. 첫날은 잠시 탐색의 시간을 가진 것일 뿐. 엄마 아빠를 기다리는 동안 모찌도 나처럼 작은 소원을 품고 있었나보다. 


하루는 백화점에 있는 화장실에서 모찌의 기저귀를 갈 때였다. 


“할마니, 빠빠이-.”


모찌가 화장실 청소를 하고 계신 어르신께 인사를 한다. 언제나 그렇듯 정감 있는 목소리로.


“세상에, 고맙다. 아가야. 나한테 인사해주는 사람은 네가 처음이구나. 애기 엄마, 애기 정말 잘 키웠네. 어쩜 어린 애기가 이렇게 인사성이 좋아.”


“네? 아... 고맙습니다. 모찌야 이제 인사하고 가자.”

“빠빠- 빠빠이-”


갑작스러운 칭찬에 얼떨떨했다. 사실 내가 가르친 것이 아니라 모찌가 스스로 한 것이라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살면서 잘 알지 못하는 분께, 아니 청소를 하시는 분께 인사를 건 낸 적이 없었기에 부끄러웠다. 


사람들의 긍정적인 반응이 재미있는지 모찌의 인사열정에 불이 붙었다. 낮은 2층에 자리한 우리집 환경도 모찌를 도왔다. 출근하는 옆집 자동차, 학교 가는 예쁜 언니, 커다란 택배상자를 들고 온 아저씨, 나뭇가지에 앉아 졸고 있는 까치, 서로 먹이를 갖겠다고 으르렁대는 고양이들까지. 모찌에게는 모두가 인사하고픈 대상이었다. 잘 잤냐고- 오늘도 안녕하라고- 


“야~ 꼬마야, 오늘은 할머니가 아니라 엄마랑 어디 가냐?”

집 앞 공사현장에서 일하시는 분이 모찌에게 인사를 하신다. 나는 처음 뵙는 분이다. 친정엄마에게 물으니 그 앞을 지날 때 마다 모찌가 인사를 자주 해서 아저씨가 기억하신다고. 


“어? 모찌 어디 갔어요?”

아랫집 꼬마 아가씨가 모찌를 찾는다. 그 집 할머니께 여쭈니 모찌가 하도 ‘온니 안녕- 어? 온니 없네?’해서 잘 알고 있다고.  


아무래도 나 없을 때 모찌가 동네를 섭렵 한 듯 싶다. 




두려움도 편견도 없이


지난 주 협력기관의 반복되는 요청에 골머리가 아팠다. 반나절이면 끝낼 수 있는 일인데 요청사항을 번복해서 일주일을 끌었다. 관련된 기관들도 많아서 수정사항이 생길 때 마다 조정하고 설득해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금요일 즈음 되자 짜증이 몰려왔다. 누군가의 가벼운 결정 때문에 왜 내가 사과를 하고 화를 받아줘야 하는지. 불편한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아침이 되었다. 오늘은 정말 마무리를 해야지, 결심을 하고 나섰다.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있는 내게 모찌가 달려왔다. 


“엄마, 뽀뽀.”

“아~ 우리 딸, 뽀뽀.”

통통한 아이의 입술에 뽀뽀를 쪽- 했다.


“엄마, 빠빠- 빠빠이-.”

“고마워 모찌야, 엄마 회사 잘 다녀올게! 모찌도 어린이집 잘 다녀와.”


반달눈의 모찌가 양손을 위아래로 흔들며 인사한다. 어떻게 웃지 않을 수 있을까. 나도 질 수 없다. 다리를 게다리처럼 왔다 갔다 하며 우스꽝스러운 얼굴로 ‘빠빠이’를 외친다. 자지러지게 웃는다. 격한 인사를 끝으로 현관문을 닫고 계단으로 내려왔다. 이미 마음은 충전 백프로다. 주차장 앞에서 우리 집을 올려다보았다. 베란다 창에 찰싹 붙어 선 모찌가 격하게 손을 흔들고 있다. 새벽부터 괜히 눈물이 난다. 모찌가 볼 수 있도록 팔을 쭈욱 뻗어 흔들었다. ‘엄마~!’하고 소리치는 게 보인다.  


모찌의 인사를 볼 때마다 내가 움켜쥐고 있는 삶의 실타래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숨고 싶고 숨어 왔다. 사람들의 태도와 말을 내가 가진 열등감의 프레임으로 바라보았다. 그래서 실제보다 더 상처받고 움츠러들었다. 억울함이 쌓였다. 


이제 막 세상을 알게 된 모찌에게는 편견이 없다. 아무리 어린 아기라도 태어나서 혼자되었던 시간을 몸의 어딘가에서 기억하고 있을 텐데. 모찌는 숨지 않고, 무서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세상에 인사를 한다. 예상치 못한 인사에 많은 사람들이 감사한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모찌는 자신을 매우 자랑스러워한다. 의기양양한 어깨춤이 그 증거다.  


모찌 덕분에 쇼핑몰에 원 없이 갔다. 더 이상 유모차를 몰고 다니는 또래 여성들이 부럽지 않다. 엄마의 소망을 이뤄 준 고마운 딸이다. 그리고 그 딸 앞에 조금 부끄럽다. ‘아이가 없어서 슬픈 사람입니다.’라는 타이틀로 나를 가두고 세상에 벽을 세웠던 내 모습이 민망하다. 신념이나 양심보다 상념에 사로잡혀 사람들을 재단했던 마음을 아이에게 들킬까봐 두렵다. 


모찌가 자라서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지금의 모찌처럼 당당했으면 좋겠다. ‘나를 낳아준 엄마에게 버려졌다.’가 아니라 ‘나는 입양되었어. 그래서 뭐?’라고 말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밝은 인사를 무시하거나 비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의 태도에 상처받지 않고 ‘어? 저렇게 반응하는 사람도 있네. 오늘 무슨 일이 있었나?’ 가볍게 넘길 수 있다면 좋겠다. 나를 무시해서가 아님을 늘 기억했으면 좋겠다. 


모찌의 밝고 활기찬 인사에 전염되어 한 주를 시작한다. 전화하기가 망설여졌던 담당자들에게 주저 없이 인사를 건넸다. 


“차장님, 주말 건강히 잘 보내셨어요? 지난주에 변경사항이 많아서 너무 힘드셨죠?”


이미 상황은 끝났다. 

밝은 인사에 당황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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