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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처럼 Apr 17. 2019

벚꽃이 피어도 피지 않아도

우리는 웃음을 잃지 않는 입양가족입니다.

우리의 벚꽃 생일

     

벚꽃이 아름답게 피어오르는 계절, 모찌는 태어났다. 그 꽃잎이 하늘하늘 날리는 동안 신랑과 내 생일까지 있으니 나름 벚꽃가족이다. 보송보송한 아기 꽃잎이었던 모찌는 어느새 세 살 꽃송이가 되었고, 우리는 한 줄 두 줄 주름이 늘어 겹 벚꽃으로 피었다.


“여보, 올해도 대공원에 갈까?”

“좋지. 매년 모찌 생일 날 가보자. 같은 곳에서 사진도 남기고.”

“응. 그런데 올해도 작년처럼 하고 갈 건 아니지? 이번에는 좀 멋있게 하고 가자, 응?”

“나? 왜?”

“허이구, 이거 봐봐.”


작년 모찌의 생일날 찍은 동영상을 틀어보았다. 연분홍 빛이 흐드러지는 나무 아래 우리 셋이 있다. 커다란 하늘색 리본을 머리에 얹고 푸른 잔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모찌가 아장아장 걷는다. 뭐가 그리 좋은지 생글생글 싱그럽게도 웃는다. 나는 그 뒤를 ‘우와~ 우리 모찌 예쁘다, 너무 예뻐.’라고 말하며 쫓고 있다. 선물 받은 분홍색 트렌치코트 차림이다. 드디어 신랑이 등장했다. 윤기 넘치는 올빽 머리에 선글라스, 검은 후드티 차림이다. 입은 웃고 있으나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가 흐른다.


당시에 신랑은 헤나 염색약 부작용으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젊은 아빠로 보이고 싶었을텐데, 회색빛으로 변한 피부와 머리를 가리느라 애를 쓴 흔적이 다른 사람에게는 도전적으로 보였다.


“뭐야? 나 아직도 얼굴이 이렇게 까매?”

“아니, 지금은 엄청 많이 하얘졌지. 의사선생님이 명의라니까. 그리고 얼굴색이 문제가 아니라 머리하고 옷이 좀 그렇잖아. 올해는 염색약 바르면 절대 안 돼!”


처음 찍은 우리 셋의 사진을 보며 그 날의 공기와 온도, 햇살, 스치는 봄날의 풍경이 떠오른다. 평소 말쑥한 신랑의 모습이 아닌 것이 내심 아쉽게 느껴지지만 괜찮다. 마음에 꼭 들어오는 기념사진을 찍으면 되니까. 올해도 우리는 그 자리에서 봄을, 우리의 생일을 만끽할 계획이다.




너의 두 번째 생일


“아무래도 콧물이 안 떨어지는데 병원에 안 데리고 가도 되겠나?”


친정엄마가 걱정 어린 목소리로 물으셨다. 생일을 며칠 앞두고 모찌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어린이집에 다니면 감기를 달고 산다지만 콧물을 흘린 지 벌써 일주일째, 기침소리도 심해졌다. 집 앞 병원에서 약을 받아 먹이고 있었지만 차도가 없다. 이른 아침, 두꺼운 외투로 아이를 둘러싸고 근처에 잘한다고 소문난 소아과로 향했다.


“아이가 아픈지 얼마나 됐죠?”

“일주일 정도 된 것 같아요.”

“밤에 잠은 잘 자던가요?”

“아... 요 며칠 통잠을 못자고 보채는 일이 많긴 했어요.”

“아기들은 밤에 기침을 하면 위험해요. 많이 아프다는 뜻이니까. 편도가 조금 부었는데 아직 항생제 먹일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약 먹으면서 며칠 두고 보죠. 지금 열은 없지만 혹시 모르니까 해열제도 같이 드릴게요.”


몰랐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노는 아이라 밤에 보채는 것이 그저 무서운 꿈을 꿔서 일거라고 생각했다. 왜 아파서 보내는 신호라고 생각하지 못했을까. 약기운이 독한지 집에 돌아오자마자 긴 낮잠을 잔다. 미안한 마음에 괜스레 모찌의 볼을 쓰다듬었다. 팔베개를 하고 아이를 품에 안는다. 작고 보드랍고 여린 아기가 내 품에 누워 잠을 잔다.


무언가 뜨거운 기운이 느껴져 잠에서 깼다. 나도 모르게 모찌 옆에서 잠이 들었던 것 같다. 모찌의 얼굴이 내 얼굴 위에 있다.


“엄마 자고 있네?”

“어 모찌야, 우리 모찌 일어났어?”


불그레하게 달아오른 얼굴이 예사롭지 않다. 체온을 재보니 38.4도. 열이다. 안 먹겠다고 발버둥치는 아이를 붙잡고 억지로 해열제를 먹였다. 옷을 벗기고 아이를 안았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다행히 체온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밤이 되자 열과의 싸움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여보, 빨리 체온계.”

“몇 도야?”

“38.2도. 내가 물수건 좀 가지고 올게.”

“응급실에 가야 되지 않을까?”

“아냐, 지금 응급실 가봤자 대기만 길게 해서 더 힘들 수 있어. 해열제 한 번 더 먹이고 물수건해도 한 시간 내로 안 떨어지면 그때 가자.”


물수건을 아이의 머리에 얹고, 몸의 뜨거운 곳들을 닦아 주었다. 차가워서 놀라지는 않을까, 너무 아파서 경기를 하지는 않을까. 눈물이 나는데 그럴 여유가 없다. 마음속으로 ‘하나님 도와주세요. 우리 모찌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를 되뇌었다.


“아이, 션해.”

앙증맞은 목소리로 모찌가 말한다.


“시원해? 모찌야 시원해?”


눈을 꼭 감고 자면서도 시원하다고 말하는 모습이 얼마나 기특한지. 모찌의 한마디에 호랑이 기운이 솟는다. 신랑과 나는 소방차가 되어 모찌의 몸 구석구석 일어난 불길을 잡는다. 이내 등부터 뜨거운 기운이 가시기 시작한다. 아, 감사합니다. 첫날의 싸움이 마무리 되었다.


하지만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소방관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모찌의 열은 쉽게 잡히지 않았다. 매일 아침 병원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려 아이를 의사선생님께 보여드렸다. 다행히 독감은 아니었다. 열 바이러스일 수 있으니 약 먹이며 며칠 두고 보자는 말씀만 이어졌다. 긴 싸움에 지쳤는지 모찌도 잠에서 깨면 엄마만 찾았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지만 마음이 더 아파서 아이를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그 날 밤도 그랬다. 약 기운이 떨어졌는지 자다 깬 모찌가 자지러진다. 아빠가 안아주려고 하자 돌고래소리를 내며 운다. ‘엄마아- 엄마아아아-’ 아이를 신랑에게서 받아 꼬옥 안았다. 이내 울먹임이 잦아든다. 내 어깨에 오른쪽 뺨을 기대고 힘든 숨을 몰아쉰다. 며칠 밤을 샜더니 내 눈꺼풀도 무겁다. 모찌를 안은 채 쇼파에 기대어 앉았다. 눈을 감고 조용히 자장자장 노래를 불렀다. 아이에게 부르는 자장가일까 아니면 나에게 던지는 위로의 노래일까. 새벽이 온다. 거실 밖으로 해의 줄기가 비춰온다.


“꼬.끼.오.”


자고 있던 모찌가 눈을 뜨고 나를 올려다본다. 동그란 두 눈이 샛별처럼 깜박인다. 머리 위로 두 손바닥을 마주 올리고 닭 벼슬을 만든 뒤 손가락을 움직인다. 세상에서 가장 깜찍하고 아가아가한 목소리로 닭이 우는 목소리를 흉내 낸다. 귀가 밝은 녀석이 멀리서 들려온 닭의 울음소리를 들었나보다. 예상치 못한 모찌의 성대모사에 웃음이 터졌다. 내 눈에 카메라가 장착되어 있어서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담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랑스러운 아이의 모습에 며칠간의 수고가 녹아내린다. 피로에는 우루사가 아니라 모찌. 아픈 와중에도 유머감각이 살아 있는 우리 아기, 이제 조금 나아가는 걸까.




벚꽃이 피어도 피지 않아도 


벚꽃이 필 때면 마음이 두둥실 떠올라 물결처럼 일렁이는데 올해는 유독 그랬다. 작년 모찌의 생일날 추억이 너무 좋아서였을까. 올해도 그런 시간을 누리고 싶었다. 모찌가 많이 아픈 며칠간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는데 조금씩 컨디션을 회복하면서 욕심이 슬그머니 얼굴을 비췄다.


“여보, 내일 모찌 생일에 대공원에 갈 수 있을까? 일기예보 보니까 기온이 많이 낮더라구.”

“응, 가보자. 추우면 얼른 사진만 한 장 찍고 돌아오면 되지.”


내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신랑은 쉽사리 거절하지 못한다. 그래, 정말 딱 한 장만 찍고 오자 다짐하며 모찌에게 옷을 겹겹이 입혔다. 모찌에게 감기가 옮은 신랑은 차 뒷좌석에서 골아 떨어졌다. 천천히 차를 몰아 계획대로 대공원에 도착했다. 준비해 온 삼각대 앞에 선 순간 너무 추웠다. 찬바람이 온 몸을 휘감았다.


“으악 추워, 모찌 이러다 다시 감기 걸리겠어.”

“빨리 찍고 가자.”


유모차에 앉은 모찌 양 옆에 엉거주춤 앉아 사진을 찍었다. 반쯤 잘린 얼굴 위로 봉오리만 머금은 채 입을 굳게 다문 벚꽃 나무가 찍혔다. 상상했던 사진은 아니었다. 집에 돌아오는 차안에서 미안한 마음이 몰려왔다.


“여보, 미안해. 내가 너무 욕심 부렸나봐.”

“뭐가?”

“예쁜 사진 찍고 싶은 마음에 당신도 모찌도 아직 몸이 안 좋은데 나오자고 해서.”

“아냐,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 거지. 매년 모찌 생일에 이렇게 사진 찍은 거 모아 놓으면 추억이 될 거야. 모든 사진이 밝고 예쁘면 재미없잖아. 오늘같이 추워서 오들오들 떨면서 찍은 사진도 있고, 비 맞으면서 찍은 것도 있고.”

“그런가...그래도 당신하고 모찌한테 많이 미안해.”


작년 이맘 때 아기 스튜디오에 모찌의 돌 사진 촬영을 예약했었다. 그동안 못 남겨둔 순간들이 아쉬워서 돌때만큼은 예쁜 모습을 담아 주고 싶었다. 하지만 예정에 없던 돌 감사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몇 장의 사진을 남기는 것보다 축하해주시는 분들을 모시고 모찌와 한 가족이 된 것을 기념할 수 있으니 그것이 더 의미 있고 감사한 일이라 생각했다. 스튜디오 예약을 취소하고 그 돈으로 집에서 돌상과 손님상을 준비했다. 많은 축하를 받은 저녁, 몇 몇 분들이 보내주신 사진을 확인했다. 대부분이 흔들리거나, 모찌가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아쉬웠다. 특히 우리 셋이 찍은 사진이 없어 더 아쉬웠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생일날 벚꽃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기는 것이었다. 작년에는 성공적이었고, 올해도 성공하리라 다짐했다. 특히 어린이집 준비물을 챙기며 기대와 욕심이 정점을 찍었다. 아이 생일이 있는 달에 성장스토리보드를 만들어서 제출해야 했는데, 스토리에 공백이 있었다. 우리에겐 모찌의 신생아시절 사진이 없다. 보육원에서 전달받은 스무 장 남짓한 사진 도 백일 이후 포동하게 살이 오른 모습만이 남겨져 있다. 성장스토리보드를 어린이집 입구에 붙여둔다고 하니 한눈에 다른 아이들과 비교가 될 텐데, 한숨이 나왔다. 사실 지금이야 아주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커서 모찌가 느낄 공허함이 벌써부터 가슴 아프다. 그 전에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고 긍정적으로 인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지만 삶의 순간순간 마주하게 될 당황스러운 순간들이 걱정된다. 그런 우려와 걱정들이 엉켜 기념사진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진 것 같다.


그 날 저녁, 온 가족이 식탁에 둥글게 모여 앉았다. 작은 케이크에 불을 켜고 더 작은 초 2개에 불을 붙였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다. 합니..다!”

“사랑하는 모찌의 생일 축하합니다.”

“....하니다!!! 후우-”

“와~ 박수!!”


싱글벙글 웃는 눈의 모찌가 박수를 치며 생일 축하 노래를 따라 부른다. 가르쳐준 적이 없는데, 지난 달 어린이집 생일파티 때 보고 배운 모양이다. 마무리로 초를 부는 것까지. 그 쪼그만 입을 내밀고 ‘후’하며 초를 끄는 모습이 더없이 사랑스럽다. 그 모습을 자꾸만 보고 싶어 생일축하 노래만 다섯 번을 반복했다.


부엌 창가를 바라보았다. 커다란 유리 뒤편으로 곱게 핀 진달래와 벚꽃이 윙크한다. ‘이제 보이나요?’ 그렇게 힘겹게 달려가 벚꽃 사진을 찍으려 했는데, 바로 우리 집에 있었네. 케이크 앞에서 신이 난 모찌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이 꼬맹이가 원하는 것은 화려한 기념사진이 아닐 수 있겠구나. 입양아라는 사실을 가리기 위한 방편이 아니라 입양가족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것. 아플 때 함께 아프고 기쁠 때 함께 축하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살아가는 동안 매 순간 웃음을 잊지 않는 것. 모찌를 통해 배워간다. 아이가 있어서 엄마가 되었지만 아이의 마음을 통해 엄마가 되어간다. 벚꽃이 피어도 피지 않아도 우리가 한 가족이라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참 감사한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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