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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처럼 May 03. 2019

내 딸의 엄마에게

모찌의 엄마가 모찌의 엄마에게

모찌에게 남겨진 편지    


모찌가 보육원을 떠나는 날, 기저귀 상자 하나가 함께 차에 실렸다. 고이 들고 온 상자 안에는 그동안 모찌가 입었던 옷 몇 벌과 기저귀, 칫솔 등이 차곡차곡 담겨 있었다. 소박한 짐 꾸러미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하나하나 만져보며 먹먹한 마음을 삼켰다. 우리가 선물했던 옷에는 모찌의 이름이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많은 아이들을 꼼꼼히 챙기는 것이 쉽지 않을 텐 데, 선생님들의 꼼꼼한 배려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신랑이 남은 소지품을 마저 받아왔다.   


“여보, 가지고 왔어?”

“응, 한번 볼래?”   

 

상기된 얼굴의 신랑 주변으로 친정엄마와 나, 그리고 모찌가 둘러섰다. 작은 지퍼백 안에 USB 하나와 배냇저고리 한 벌, 태어날 때 병원에서 채워주는 팔찌가 들어 있다.  

   

“그리고, 가져오지는 못했지만..... 모찌를 낳아주신 분이 남긴 편지도 받아 적어왔어.”

“편지?”

“응, 다행히 모찌가 베이비박스에 놓일 때 편지를 남긴 것 같더라고. 우리가 가질 수는 없고 보육원에서 보관해두신다고 해서, 양해를 구하고 적어왔어.”    


생각지 못한 긴장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혹여 원망하거나 부정하는 내용이면 어쩌나. 모찌가 읽고 상처받을 만한 내용이면 어떡하지. 차라리 나도 읽어보지 말까. 아직 마음의 결정을 하지 못했는데, 신랑의 낭독이 시작되었다.    

 

“OO에게, 정말 미안해...미안해, 세상에 혼자 두게 해서 정말 미안해. 그리고 많이 사랑해...”    


짧은 글인데, 듣는 동안 시간이 멈추어버린 것 같다. 눈물이 너무 흘러서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아무리 어리지만 모찌도 지금 이 감정을 그대로 느끼고 있지 않을까. 안그래도 눈물이 많은 친정엄마는 오열하기 시작했다. 내가 싫어하는 엄마의 울음소리.  

   

“장모님, 왜 울고 그러세요? 모찌가 놀라잖아요. 마음 아파하지 마시고 그만 우세요.”

“모찌 엄마가 좋은 사람이었나 보다. 좋은 사람이었어. 글만 봐도 따뜻하잖아. 따뜻한 사람이야. 그래서 우리 모찌가 이렇게 마음이 예쁜가보다.”  

  

엄마의 느닷없는 답변에 눈물이 들어갔다. ‘모찌 엄마’라는 단어가, 그 표현이 가슴에 뾰족하게 꽂혀 아리기 시작했다. 모찌 엄마는 나인데, 왜 모찌 엄마라는 표현을 써야하는 걸까. 엄마가 누구보다 내 마음을 잘 알면서. 하지만 그 상황에서 엄마를 나무랄 수가 없다.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엄밀히 말해 틀린 말도 아니니까.

    

하지만 그날 저녁, 불연 듯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제 법적으로나 심적으로도 모찌 엄마는 나인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리 가족이 다른 사람에게 ‘모찌 엄마’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속상하다. 앞으로도 엄마가 그런 표현을 쓴다면 마음이 상할 것 같다.    

 

“여보 있잖아. 아까 엄마가 편지 보고나서 ‘모찌 엄마’라는 표현을 썼잖아. 나 그게 마음에 자꾸만 남아.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화가나.”

“에이 장모님이 별 뜻 없이 하신 말씀이잖아. 모찌 낳아준 분이니까, 그렇게 말씀하신 거지. 잘 알면서 왜 그래?”

“그러니까, 나도 잘 아는데. 다른 표현을 쓸 수도 있잖아. 그냥 낳아준 분이라던가 아니면 생모?”

“OO아, 생각해봐. 입양을 한 건 우리지 장모님이 아니야. 우리야 입양에 대해 공부도 계속 하고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접근할지 고민하지만 장모님은 아니잖아. 어떤 표현을 쓰는 것이 좋은지 전혀 모르실 수 있어.”  

  

맞다. 예상치 못한 편지에 대한 당혹스러움이 엉뚱하게 친정엄마에게 튀었다. 언제나 만만한 것이 엄마라고, 나 아닌 다른 존재에 대한 불편함이 이렇게 드러난다. 모찌가 너무 예뻐서, 정말 간절히 오랫동안 기다려 만난 아기여서 온전히 내 딸 이기만을 바랬나보다.   


          


우리를 떠난다 해도    


우리에게 특별한 방법으로 가족이 늘어났다는 소식이 퍼진 뒤, 알음알음 연락을 주시는 분들이 있다. 자신도 입양아라며 뜻밖의 고백을 하시는 분도 계시고, 입양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묻는 분도 계셨다. 조심스러운 데이트 요청도 더러 있는데, 그날 받은 연락도 그랬다.    

 

“저...OO님, 오랜만에 연락드려요. 가정에 좋은 소식이 있다고 전해 들었어요. 혹시 시간 나실 때 잠깐 뵐 수 있을까요?”

“오랜만이에요! 건강히 잘 지내시죠? 그럼요, 어디서 뵐까요?”    


긴장된 얼굴의 그녀 앞에 앉았다. 무슨 고민이 있는 걸까? 서로의 안부를 나눈 뒤 망설임 없이 물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저....저희 부부도 입양에 관심이 좀 생겨서요. 그런데 그전에 너무 고민되는 것들이 많아서.”

“어머나 그러셨군요. 저도 모찌 만나기 전에 고민이 많았어요. 지금도 많구요. 하하하. 뭐가 제일 어렵게 느껴지세요?”

“음....왜 그런 말 많이 하잖아요. 잘 키워놨는데 나중에 친엄마 찾아가면 어떻게 하냐고. 저도 그렇고 남편도 그렇고 나중에 아이가 우리를 떠날까봐 좀 두려워요.”   

 

종종 들었던 질문이다. 내 안의 대답을 만들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지금도 마음속으로 연습 중인 바로 그 질문.

    

“그죠. 저도 그 순간이 까마득하긴 해요. 그런데 아이 입장에서는 당연히 궁금하지 않을까 싶어요. 만약 제가 입양 되었다면 저는 매일매일 궁금할 것 같거든요. 엄마아빠를 좋아하지만, 그 감정과는 별개로요.”    

“그럼, 나중에 찾아간다고 해도 괜찮으시겠어요?”    

“마음은 쓰리지만, 찾을 수 있다면 찾도록 도와주고 싶어요. 그 후에 결정은 아이의 몫이겠죠. 예전에 입양가족모임에서 들은 이야기인데요.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를 떠나지 않으면 그게 더 문제라고요. 마흔 될 때까지 끼고 있을 거냐고. 자주독립을 하든 낳아주신 분을 찾아보고 싶든, 어쨌든 성인이 되었으니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해봐야 한다고. 그리고 생각보다 별일 없이 자기 삶을 계속 살아간다고. 그 말 듣고 저도 많이 마음이 달라졌어요.”      


서슴없이 대답했지만, 나 역시 자신이 없다. 내가 아닌 모찌 입장에서 내린 결론이기에. 이렇게 자신감 있는 어조로 답하면서 다짐을 쌓는다.  

  

몇 년 전 예비입양부모교육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기억난다. 해외로 입양 갔던 분이 엄마와 함께 생모를 찾기 위해 한국에 오셨다고. 다행히 입양기관에서 생모의 정보를 확인했고, 다음 날 함께 만나기로 약속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날 밤 엄마가 하염없이 울더란다. 아들은 ‘엄마가 싫다면 만나지 않고 돌아가도 좋다.’고 이야기했다. 엄마는 ‘아니라고, 네가 궁금해 하는데 당연히 만나봐야지, 멀리서 한국까지 왔는데. 꼭 만나보자.’라고 답했다. 하지만 엄마의 눈물은 그치지 않았다. 다음 날 모자는 생모를 만나지 않고 고국으로 돌아갔다. 왜 만나지 않고 그냥 가냐는 질문에 ‘이렇게 한국에 와본 것으로 충분하다. 엄마를 생각하니 만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고 답했다고 한다.   

  

우리 모찌는 어떨까? 만나고 싶을까. 만난다면 무슨 이야기를 가장 먼저 하고 싶을까. 그때 나도 함께 있는 게 좋을까.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어떻게 모찌의 마음을 위로해야 할까. 이런 저런 질문을 하다 보니 어느새 이야기 속의 엄마가 되어 간다. 아이와 생모의 만남을 적극적으로 돕고 싶은 것도, 돕고 싶지만 꼭 만나지 않았으면 싶은 것도 모두 진심이다. 지금은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모찌엄마로 불려질 수도 있다는 사실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아직 시간이 있다. 마음을 다듬어 갈 시간이 아직은 많다.  

   

그리고 설령 모찌가 성인이 되어 먼 나라로 독립해가거나 생모를 찾는다 하더라도 나에게는 모찌와의 추억이 남는다. 나만, 우리 가족만 기억하고 추억할 수 있는 시간들. 그 시간들을 기억하고 곱씹으며 행복하게 남은 시간들을, 씩씩하게 살아갈 거다. 그리고 모찌의 삶을 응원하며, 힘들 때면 기대고 비빌 수 있는 엄마로 남아 있을 거다.      




내 딸의 엄마에게    


아주 오래전 이정애님이 쓰신 ‘내 딸의 엄마에게’ 라는 책을 구입했다. 입양한 딸의 생모에게 전하는 글을 모아 놓은 것인데, 반도 채 읽지 못하고 접었다. 아마 아이를 혼자 남겨둔 사람에 대한 원망과 불편함이 커서 거부감이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요즘, 그 책에 다시 눈이 간다. 그리고 용기 내어 앞으로 만날 수도 만나지 않을 수도 있는 그 분께 나 또한 짧은 글을 전하고 싶다.  

       


내 딸의 엄마에게    


안녕하세요,

벚꽃 잎이 살랑이는 계절

모찌를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견디고 이겨내 주어 고마워요.  

   

모찌는 건강하고 맑고

손끝이 야문 아이로 자라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찌를 통해

사랑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아파하지 마세요.

마음도 몸도

   

과거가 아닌 현재의

당신으로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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