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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대윤 Feb 10. 2021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친구의 말에 그랜져로 답했습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넘치거나 모자라는 것을 알아가는 것이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친구의 말에 그렌져로 답했습니다.
- 현대자동차, 그랜져 뉴 럭셔리 CF


광고를 제작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천재가 숨어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제품이 나오지만, 그럼에도 끊임없이 사람들의 구매력을 자극하는 짧고도 강한 무엇인가를 만든다. 그 결과, 사람들은 충분히 더 쓸 수 있는 물건 가령, 가전제품이나 자동차를 옆에 두고도 새 제품으로 다시 구매를 한다.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가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악덕이자 미덕이며 원동력이다.




이런 말이 있다. 어느 날, 연락이 없던 지인에게 연락이 오면 결혼 아니면 아이 돌 혹은 부모님의 장례라는 말. 하지만, 나는 여기에 특이하게도 하나가 더 있는데, 자신이 타고 다니던 차를 바꾸려는 친구들도 심심치 않게 나에게 연락을 한다는 것이다. 1990년대 말 혹은 2000년대 초반, 대학생이 자기 차를 가지고 다닌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이상으로 집안이 부유하지 않으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혹, 가정 형편이 좋지는 않더라도, 야간 알바(가령, 술집 웨이터라든가, 심지어는 호스트 바) 같은 곳에서 일을 해서 차를 마련하는 친구들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소위 요즘 말로 "카푸어"라고 말하는 이들이 현재만 있었던 것은 아니고, 오래전 약 20여 년 전에도 그런 이들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그들은 비슷비슷한 행동들을 한다. 왜냐하면, 여러모로 생각을 해봐도 비웃음이 나오는 그 행동들을 하는 이유는 아마도 "내가 이런 사람이다." 혹은 "내가 이만큼 갖고 있어."라는 자기만의 과시를 할 수 있는 방법 중에 가장 간편하고도 확실한 방법이 될 테니까 말이다. 가령, 그들은 술자리에서나 카페 혹은 여러 사람이 모여있는 곳에서 자동차 키(그 당시에는 스마트키는 없었다. 리모컨이 달린 자동차면 거의 최고급 자동차였으니까.)가 달려있는, 더불어 어디를 열고 닫을지도 모르는 열쇠들까지 주렁주렁 매달린 키홀더(이탈리아나 프랑스의 명품 마크가 눈에 확 띄는)를 테이블에 딱 꺼내놓았다. 한눈에 보기에도 묵직해 보이는 그 키홀더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딱 좋았다. 또는 추운 겨울 반팔 차림 혹은 얇은 옷을 걸친 채로 차를 잠시 갓길에 주차를 해놓은 채, 비상등을 켜놓고 담배를 태운다는지 하는, 그들(?)만의 특별하고 럭셔리한 행동들을 함으로써 오고 가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나는 상대적으로 운전면허증 취득이 늦었다. 20대 초반에는 대학 입시사회적패배자로,잉야인간으로. 대학 서열과 직업으로 인간을 평가하는 대한민국의 분위기에 따라 일류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자식은 실패한 자식 농사라는 부모님과 친지들의 정의(??) 아래에서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 당시 아버지의 차가 그렌져였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공무원이신 아버지께서 그 당시 대한민국에서 제일 고급 승용차였던 그랜져의 오너 셨다는 것이 마치 앞뒤가 맞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그 이유는  지금의 그랜져의 위치와는 달리 그 당시의 그랜져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장 고급 승용차였다. 아버지의 검은색 커다란 대형 국내 최고급 세단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심히 편치 않았다. 아버지의 자동차 편력은 심하셔서, 그랜져도 오래 타시지 못했다. 그리고 새로 출시되는 다른 대형차로 교체를 하시고, 또 다른 차로 교체를 하셨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나는 자동차는 3년 이상 타면 안 되는 것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3년 보통 6만 Km, 흔히들 말하는 무료 AS기간을 넘어서면 자동차는 당연히 교체를 해야만 한다는 그릇된 인식은 한동안 나를 힘들게 하기도 했다.


어찌어찌하여 20대 중반 나도 나만의 자동차를 갖게 되었다. 한 때, 자동차 키를 카페나 술집의 테이블 위에 슬며시 올려놓는 행동을 하던 친구들에게 "너는 인마, 그 깟 차 하나 없냐!!"라며, 종종 무시를 당하던 것과는 다르게, 나의 첫 차는 그들의 첫 차보다 남다르게 좋았다. 아마 그래서였을까, 예전에 무시를 하던 친구(??)들이 나를 다르게 평가하는 것을 느끼며 나도 20대 중반부터 사람들을 그 사람이 가진 것이 무엇인가로 평가하기 시작했다. 다만, 내가 그들과 달랐던 것은 테이블 위에 자동차 키를 슬며시 올려놓고 주위를 둘러보며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는 유치한 행동을 하지 않았을 뿐, 나 역시 조금씩 속세의, 그리고 허세의 물에 젖어들어가고 있었다.




사람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을 거스를 수 없는 이유는 수도 없이 많지만, 그중 한 가지를 간단하게 들자면, 자동차 동호회를 꼽을 수 있다. 같은 자동차 회사에서 나온 같은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모이는 자동차 동호회가 있는가 하면, 혹은 빨리 달리는 자동차를 좋아해서 끼리끼리 모이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게 모여든 사람들 사이에는 벤츠를 가진 사람도 있었고, BMW를 가진 사람도 있었으며, 그 당시까지만 해도 그리 흔하지는 않던 포르셰와 페라리의 오너도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가장 안타까운 점은 내가 그들과 같은 울타리 안에(사실, 같은 울타리도 아니었음에도) 속해 있다 하여도, 나와 그들과는 전혀 다른 경제적, 사회적 위치의 사람들 임에도 가끔 나도 그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라고 착각을 하고는 했었다는 것이다.


이런 착각은 사람을 더 병들게 하기에 충분해서, '왜 나는 더 좋고 빠르며 비싼 자동차를 가질 수 없는가.'에 대한 끝없는 자책에서부터 '더 비싼 시계'혹은 '더 높고 호화로운 집'을 소유할 수 없는가에 대한 끝없는 욕심으로부터 시작된 괴로움에 시달렸다. 그 괴로움으로 시작된 갖가지의 환상과 번민을 잠재우기에 나의 허영심은 끝도 없이 커져있어서 수없이 많은 낮과 밤을 괴로워해야 했다.


어느 순간, 사람은 깨닫게 되는 때가 있다. 물론,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어느 순간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죽도록 노력을 해서 얻을 수 있었던 것도 있지만, 죽도록 노력을 해도 얻을 수 없는 것도 있으며, 그리고 그것을 소유하게 된다고 할 지라도 그것이 내게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결국,

어찌 되었든 나의 삶에 결정적으로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자동차의 가격도, 시계의 무브먼트의 무게도, 아파트의 평수도 아닌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라는 것을.


간단한 듯 하지만, 내게는 간단하지 않았고, 가벼운 듯 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았던 나만의 깨달음(??)을 얻기까지 내게도 그리 편하기만 한 체득의 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 스스로가 역으로 그런 비릿한 시선의 폭력과 무시의 경험을 겪음으로써 비로소 아주 깊이 하나씩, 두 개씩 알아갈 수 있었다.




얼마 전, 내게 문득 전화를 걸어 "형, 잘 계세요??"라고 운을 띄운 친구는 자퇴하기 전부터 유달리 친한 동생 녀석이었다. 둘 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특히나 스웨덴의 "사브"라는 자동차를 좋아하는 공통점으로 맺어진 우정은 꽤나 오래 지속되었다. 만약, 내가 학교를 그만두지 않았다면 더 깊어졌겠지만.


그는 오랜만에 전화를 해서 뜬금없이 물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무슨 차 타고 다니세요??"라고 묻는 내게 "그랜져"라고 대답을 했더니, 갑자기 그가 놀라며 "형이 그랜져를 타신다고요?? 그게 가능한 일인요??"라며 되물었다. 나는 그의 말에 두 가지 의미가 함께 존재하는 것을 눈치챘다. 첫 번째, "너같이 허세에 찌든 놈이 지금 그 차에 만족을 한다는 뜻이야??"라는 의미와 두 번째, "그토록 돈이 많아 보이더니 끝내는 너도 별반 다를 바가 없구나."라는 의미, 그 두 개 모두를 포함하고 있는.


그 역시, 나와 같은 연식이 조금 이른 그랜져를 타고 있었기에, 그의 물음은 일종의 추궁으로 들리기도 했다. 이어지는 그의 말은 나에게 조금 더 가슴 깊이 송곳을 찔러 넣었다.

"형, 이 번에 제가 차를 바꾸는데요, 제네시스 G80 하고 벤츠 E 클래스, BMW 5 시리즈, 이 세 가지 중에서 한 대를 구입하고 싶은데 형 생각은 어떠세요??"

이런 질문은 사실 참 나를 난감하게 할 뿐이다. 그 어떤 차도 현재의 나와는 거리가 있는 차들이다. 제네시스,

벤츠, BMW 그 모두가 다 나에게는 아직 먼 이야기이다. 거기에 덮어서 녀석은 "데일리로 포르셰는 조금 무리인 것 같더라고요, 옵션을 조금 넣으니 카이맨이 1억을 가벼이 넘어가네요. 허허..."

이럴 때 하고 싶은 대답은 한 가지뿐이다. "그래서 이 놈아,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냐..."라고.


이 녀석은 분명, 내가 차를 좋아했던 것을 알고 이런 것이다. 내게 무엇인가 자랑을 하고 싶어서 전화를 한 것일 수도 있다. 최근 내게 전화를 하는 사람들은 그 목적이 뚜렷했다. 어떤 놈은 얼마 전에 개원한 자신의 병원 자랑, 이미 돈을 좀 번 놈은 자신의 자동차 자랑, 그것도 아니면 자신의 와이프 자랑 등등. 심지어는 처갓집에서 병원을 오픈할 때 얼마를 버프 해줬다는 이야기도 빼놓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 어여쁜 와이프의 남편이 자기라는 것은 절대로 제외하면 안 되는 것이고.




한 동안, 녀석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전화받을 때의 습관 중 하나인 메모지에 통화 내용들 중 요점 적으며 동그라미 그리는 것을 보니 온통 돈 이야기, 건물 이야기, 차 이야기이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하고 살았을까.


나는 그동안 아팠다. 하나가 나으면 다른 또 하나가 나를 괴롭혔다. 자살도 생각을 했고, 때로는 너무 괴로워서 거실에 있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살려만 주시면 무엇이든 다하겠습니다." 혹은 "앞으로는 착하게 살겠습니다."를 끊임없이 입으로 되뇌고 무릎 꿇고 허리를 구부리며 기도를 하던 때도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아픈 시간을 거치고 다시 정신을 차린 뒤, 위에서 말한 대로 예전에 내가 잠시나마 하던 그대로, 나 역시 사회에서 다시 무시를 당하고 비웃음을 사며 살았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던 삶의 조건이나 어떤 기준이 "내"가 아닌 즉, 그 당사자가 아닌 그 누구도 평가하고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을 처절하게 배웠다.


아버지는 정년 퇴직을 하셨다.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각본처럼 아버지가 퇴직하신 후 하시는 일이 잘 되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형편에 동생마저 사고를 당했다. 동생의 수술비와 병원비는 어마어마했다. 그럼에도 나는 감사하게도 "그랜져"를 타고 있다.(사실, 그랜져는 동생의 차였고, 동생의 사고 후에 내가 타고 있을 뿐, 나의 차도 아니며, 우리 집은 그동안 소유하고 있던 차 중에 아버지의 수입차와 어머니의 차를 매각했다.) 수리를 해야 할 부분도 많다. 현재 앞 범퍼는 시험에 늦지 않기 위해 학교에 도착해서 급하게 주차를 하다가 부딪혀서 부서지고 상처가 낫다. 바퀴 쪽에는 이제 연식이 조금 되어서 잡소리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하지만, 나는 당장 이 친구가 없으면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동생에게 가는 것에 큰 불편을 느낄 것이다.


어떤 대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것은 나의 눈과 마음에 달려있다. 물론, 그것이 내 마음에 쏙 들지 않거나, 완벽한 만족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어떤 부분에서는 그 부족함 들은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주기도 하지만 반면, 그것을 다시 어루만질 수 있는 관심과 애정을 불러오기도 한다. 지금 내 그랜져는 12만 Km를 주행했다. 아주 오래전, 3년에 한 번 6만 km마다 차량을 교체해야 하는 기준에서는 미쳐도 한 참이나 미친 일이다. 더불어, 나는 현대차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세상을 살아가면서 모든 것이 다 내 의지대로 될 수도 없고, 또 현재 갖고 있는 것에 감사하지 않으면 앞으로 더 나아갈 수도 없다. 그래서 나는 현재 내 진주색 그랜져가 너무 소중하다.




참, 며칠 전에 내게 차를 물어봤던 녀석에 다시 연락이 왔다. 나의 대답은 아주 간단하고 명료했다. "너의 능력이 포르셰를 운영할 수 있다면 포르셰를 구입해라.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떤 차가 너에게 가장 편안하고 안락한 지 네 스스로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네게 해 줄 수 있는 충고의 전부라서 안타깝다.

지금 현재 내게는 6년이 된 나의 그랜져도 많이 버거우니까. 너는 현명한 선택을 하기를 바란다. 내가 진심으로 아끼는 동생으로 너의 선택이 부디 잘못되지 않기를 바란다."



2020년 2월 10일



한 때, 내가 사진을 찍었을 때 내 사진 속에 담겨 있는 의미를 보려고 하지 않고, 내가 어떤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는지부터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심지어는 내가 가진 카메라를 가지고는 절대 사진 실력이 성장할 수 없다고, 내게 직접 말하지 않고 내 친구들에게 돌려 말한 어른도 있었다.

과연, 그는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너의 카메라는 내 카메라보다 형편없으니 네 사진도 내 사진보다 형편없을 거야, 라는 말로 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가 말하는 싸구려 카메라, 골동품 카메라로 계속해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사진이라는 것이 비싼 카메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마치 내가 예전에 나보다 좋지 않은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외면했던 것이 내게는 카메라를 통해서 똑같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뭐라고 해도 어느 순간, 내가 찍는 사진이 만족스러워지면서 카메라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다. 자동차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 구매하지 않는 것이고, 자신에게 조그만 집이 필요하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것이겠지. 모든 것이 다 크고, 화려하고 비쌀 이유는 없다. 나는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친구의 말에 그랜져로 대답했다." 록, 녀석이 앞으로 구매하려는 자동차보다는 구식의 차이지만, 나는 지금 내 차가 좋고 그것만으로 소중하기에 그것으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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