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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대윤 Apr 04. 2021

빌라에 살면서 수입차 타면어때요.

어쩌면 부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라 불리는, 흔히 "독 3사"라고 부르는 "벤츠, BMW, 아우디" 외에 "폭스바겐"을 비롯하여 수많은 외산차들이 국내 도로를 점령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중심이라고 하는 서울의 "강남"에는 예로부터 "강남 소나타"니 "강남 싼타페"니 등등, 국산 자동차의 이름에 "강남"을 붙이면 수입산 자동차들 중 가장 많이 팔리는 자동차로 대표되고는 했다. 나는 시골뜨기로 "강남"이라는 땅이 얼마나 부가 많은 사람들이 사는 곳인지도 잘 모르고, 가본 적도 몇 번 없어서 오히려 "강남" 혹은 "청담동"등의 왠지 있어 보이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들에 대한 선망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알면 병이 된다."라고 했던가. 어설프게 그것도 아주 표면적으로 그곳을 접했거나, 그곳의 문화를 접한 사람들은 잘못된 인식과 선망을 갖게 되는 것을 수없이 많이 볼 수 있었다. "강남"의 어디를 가면 어느 "카페"가 있는데 그곳에 가보니 연예인들이 즐비했다던가, 아니면 "강남"의 "XX대로"를 가면 주말마다 "슈퍼카"라 불리는 비싼 차들이 수도 없이 그 도로를 달리며 그 자태를 뽐낸다든가 하는 말들을 하며, 마치 자신이 그곳에 살거나 혹은 그 차들의 실소유자인 것처럼 행세하는 것을 보며 혀를  끌끌 찰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뒤집어 생각해보면,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그렇게 살 수 없기에 그렇게 사는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 그리고 열망을 넘어서서 자신도 그런 사람이라는 "착각"까지 하게 되는 경지에 이르렀나 보다.




"게다가 강남이잖아, 강남 압, 서, 방..."
- 영화, 건축학개론 서연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여주인공 "서연"은 작은 빌라의 반지하로 이사를 하지만 "강남"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만족해한다. 이렇듯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강남"은 어떤 부러움과 열망의 장소임은 분명하다.


"강남"에 멋지고 높은 빌딩도 많은 반면에 "서연"이 새로 이사 간 "빌라"처럼 작은 집들도 수없이 많은 것들도 분명하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의 성공을 꿈꾸고 갈망하며, "서울"에서도 가장 중심지인 그 비싼 땅값의
"강남"에 자신만의 둥지를 틀고자 열망하는 이들을 위한 공간도 분명 있어야 하기에 높고 화려한 빌딩에 대비되는 빌라들 역시 소중한 보금자리임에 분명하리라.


그렇게 형성된 "강남"의 빌라촌에도 역시 수입차가 많다고 한다. 벤츠, BMW, 아우디 등등의 수없이 많은 외제차들이 높고 좋은 빌딩과 고층 아파트의 주차장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빌라촌에도 수없이 많다고 "강남"을 곳곳이 다녀본 "Z"라는 이가 내게 말을 하며 그들을 비판했다.

"Z"가 애써 침 튀기며 강조한 말은 "세상에 집도 없이 반지하 월세에 세 들어 XX들이 머리에 허영만 가득 차서 외제차부터 사는 병신 같은 XX들이 다 있다."였다.




내가 살던 "대전"의 작은 주상복합 아파트의 지하주차장에도 수입차는 즐비했다. 평수도 작은 아파트지만, 그 아파트의 집값을 상회할 듯한 수입차들은 허다하게 많았다. 흔히 볼 수 있는 벤츠, BMW, 아우디 등의 메이커가 아닌 "포르셰"등의 자동차도 자주 보였다. 물론, 나도 왠지 모를 이질감이 가득해 보이는 그 모습에 물음이 생기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왜 그들은 더 좋은 집을 구매하지 않고, 저렇게 비싼 자동차들을 구입해서 타고 다니는 것일까...'


한 때는 가까이 지내며 우정을 쌓아갔던 친구 "A"가 있다. 친구 "A"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취업을 했지만, 빠른 취업 대신 그는 그의 "페이"를 포기했다. 그가 선택한 직업이 내 기준으로 좋다,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가 살아가면서 만족을 하면 그것보다 더 좋은 직업은 없을 것이기에. 더군다나 그는 술을 마시지도 않았고, 담배를 태우지도 않는 남자이기에 특별히 자신의 벌이를 많이 사용하지 않는 남자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가 어느 날, 큰 일을 쳤다. 그 큰일이 무엇이냐면, 집을 마련하는 대신 독일의 "BMW"에서 판매하는 고성능 자동차 버전인 "M"시리즈의 자동차를 구매(?) 한 것이었다. 사실, 엄밀히 말해서 구매라기보다 "리스"라는 형태를 이용하여 자신의 차를 임대한 형태로 운영한다고 해야 할까?? 그가 "M"이라는 글자가 붙은 자동차를 소유하면서 그의 삶은 미묘하게 뒤틀어졌다. 그전까지 타인에게 돈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던 그가, 언제부터인가 스스로의 지인들에게 돈을 융통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내게 "저녁"을 사줄 수 있냐고 물어왔다.


나: "너 예전에는 누구한테도 돈도 안 빌리고, 밥도 한 끼 안 얻어먹더니 웬일이야?? 오히려 사람같이 느껴져서

      좋기는 하다만..."

A: "....."

나: "무슨 일 있냐??"

A: "실은 나 M 갖고 있는 것 알고 있지?? 근데 그 차 월 리스비하고 집세를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다. 솔직히 차     도 거의 주차만 해놓고 못 갖고 다닌다. 타이어를 교체해야 하는데, 타이어 하나 값이 원..."

나: "그럼 처분을 해야지... 너무 힘들잖아..."

A: "그게 처분을 하기도 힘들어서..."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A"는 "유예리스"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하고 있었고, 그 금융 프로그램은 사람을 거의 파멸로 이끄는 정도로 터무니없는 조건의 족쇄였기에, "A"는 끝끝내 그 늪에서 헤어 나오지를 못하고, 거의 파산에 가까운 손해를 입으면서 "BMW의 M"을 처분했다. 하지만, 그 뒤에 다시 만난 "A"의 말에 일견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었던 이유는 "A"는 계속해서 오르는 집값에 자신이 끝끝내 집을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았고, 그래서 자신이 가질 수 있는 꿈 중에 가장 높은 꿈인 "M"을 소유해보는 것으로 자신의 인생 최대의 목표로 삼았었다는 말은 측은하게 들리기까지 했다.




이제 와서 본다면, "A"와 서울의 "강남"의 작은 빌라에 거주하며 비싼 수입차를 소유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도 한다. 어쩌면 지방의 그 어느 도시보다 훨씬 집값이 높은 서울에서 자신들의 "집"을 소유하는 것은 이미 어렵다고 판단했기에,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더 빠른 판단을 내린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했다. 아파트 한 채에 수십억을 주고 마련해야만 한다는 압박감은 사람을 숨도 못 쉬게 내몰 수도 있는 일이기에 나는 은근 수긍을 하기도 한다.


나?? 나 역시 마찬가지다. 웃기게 들릴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대전의 아파트 한 채의 가격도 이제 10억 가까이하는데, 내가 졸업을 하고 병원을 개원한다고 가정할 때, 내가 대출할 수 있는 한도 금액은 아파트를 마련할 수 있는 금액에도 미치지 못한다. 가끔은 내가 그토록 원했던 삶은 이제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나 역시도 숨이 막힌다.


서울 강남 빌라에 살면서 수입차를 소유한 사람들을 비판한 "Z"는 구로의 원룸에 거주하면서 자신 역시 "폭스바겐"의 승용차를 구입하면서 자신이 비판한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었다. 그는 대신 자신은 아직도 직장에 다니고 있으며, 그들보다는 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며 스스로를 위로하지만, 그 위로가 과연 얼마까지 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나도 모르겠다.


"Z"나 "A"를 보며 가끔 하는 생각은, 오히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 특히 어떤 것 가령, 집이나 병원이나 등등에 얽매여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것들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것이 아닐까. 빌라에 살면서 수입차를 타지 말라는 법도 없고, 원룸에 살면서 수입차를 타지 말라는 법도 없다. 자신이 살아가면서 자신의 삶 속에서 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그 모습들을 나는 부러워하는지도 모르겠다. "바른 소비를 하며 살아라.", "분수에 맞지 않는 일은 하면 안 된다." 등등의 도덕 교과서에나 나올 것만 같은 가르침은 삶을 더 빡빡하게만 했다. 그렇다고 그런 가르침을 내게 전해준 이들도 그 가르침을 절대적으로 지키며 살지 않는다. 내게 그런 가르침을 알려준 사람들에게 그런 진리를 가장한 사실도 안 되는 말들을 가르쳐준 그 위의 사람들도 역시 똑같았을 것이다.


결국, 삶이란 가치관의 결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타인이 누군가의 삶에 "옳다, 그르다, 미친놈이다, 병신이다." 따위의 비속어를 쓰며 자신만의 가치관의 잣대로 판단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다. 더더군다나, 자신도 끝내는 스스로 비판했던 이들의 모습을 닮아간다면, 그것보다 더 세상에서 부끄러운 것은 없다.


나는 떳떳하게 말할 수 있다. "나도 그렇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고 싶습니다. 하지만, 제 능력이 안되기에 그렇게 못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오히려, 나는 당신들을 부러워하며 살아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2021-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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