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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대윤 Apr 30. 2021

나는 또 그렇게 이별을 했다.

인연과 이별에 대하여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뿐만 아니라, 사람과 동물 사이에도 혹은 나무와 꽃과도 인연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어쩌면 전생에는 반대였을 그들과 나와의 인연은 수없이 길고 긴 시간을 흘러서 다시 이 곳에서 만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생명이 있는 생명체들과 더불어 나는 내가 만나는 물건과도 어떤 인연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사진"을 찍어야 할 때 처음 만났던 "로모 LC-A+"카메라나 아니면 내가 가장 좋아했던 나의 자동차도, 모두 다 인연이 있었기에 만날 수 있었다고 생각을 한다.


특별히 더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이유는 나는 특히 카메라의 경우는 새 제품을 사지 않는다. 왜 새 제품을 사지 않느냐는 질문에 답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첫 번째로 카메라는 출시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업그레이드된 새 모델이 출시되는 경우도 많고 두 번째로는 새 카메라를 들고 카메라에 흠집이 나지 않으면서 자유롭게 사진을 찍을 자신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보통 평화로운 "XX나라"에서 주로 카메라를 중고로 입양을 하는 편이고, 그러다가 두 번 정도 사기도 당했다. 하지만, 두 번의 사기를 당한 안 좋은 기억이 있어도 나는 새 카메라를 구입할 자신이 없다. 이미 넘치게 올라버린 카메라 가격과 그 카메라에 맞는 렌즈들까지 구입을 하다 보면 어느새, 몇 백만 원이 훌쩍 넘어가고 그 정도가 되면 내가 사진을 찍는 것인지, 아니면 카메라를 모시고 다니는 것인지, 주객이 전도될 것이 분명하니까.


글쎄, 만약 현재보다 내가 조금 더 여유가 있다면 모르겠다. 가령, 수억이 훨씬 넘는 집을 소유하고 있으며,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큰 병원에, 몇 억을 호가하는 자가용과 매달 어디서 들어오는지도 모를 정도로 넘치는 수입이 있다면, 나는 그런 것을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글쎄, 그래도 나는 "모르겠다."라고 대답하고 싶다. 왜냐하면, 내가 얼마만큼의 여유를 갖고 있느냐와 어떤 대상을 어떤 목적을 갖고 만나냐는 크게 다른 문제니까 말이다.




나의 첫 필름 카메라는 "로모 LC-A+"라는 작은 플라스틱 카메라였다. 그 카메라를 위에서 언급한 평화로운 "XX나라"에서 입양을 했다. 다른 녀석들보다 가격이 저렴했던 이유는 판매자의 동생이 홍콩에 여행을 갔다가 무심코 떨어뜨려서 모서리에 상처가 생겼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와 동시에 '사진을 찍는 것에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만약, 문제가 있으면 환불해드릴게요.'라고 말씀하시는 판매자의 마음이 너무 믿음이 갔기에, '만약에 고장이 나면 제가 고쳐서 쓰면 되죠.'라는 말과 함께 녀석을 입양했다. 그리고 돈을 입금하고 나의 첫 "필름 카메라"(아!! 우리 가족이 어릴 적에 쓰던 카메라가 있기는 하지만..)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사진에서 보았던 대로, 정말 카메라에는 상처가 있었다. 한 1cm가 되려나?? 자세히 보면 보이고, 무시하자면 무시할만한 그 상처를 보면서 오히려 나는 마음이 편해졌다. 다른 곳에 상처가 나도, 이미 조그만 상처가 하나 있으니까, 그래도 마음이 덜 아플 것이리라...


그 카메라와 함께 나는 사진을 참 많이 찍었다. 사진을 좀 찍는다는 분들께는 "형편없는 장난감 카메라"라는 비판과 "카메라가 좋지 않으면 실력도 늘어나지 않는다."는 험담도 들었지만, 꿋꿋하게 필름을 사서 수없이 사진을 찍고, 현상을 하며 내 삶의 기억을 모아나갔다.


그렇다가 고장이 나면, 또 얼마간의 돈을 주고 수리를 했다. 그리고 또 사진을 찍고, 그렇게 몇 년 동안 "로모"로 사진을 꾸준히 찍었을 때, "로모"로 거리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는 별명도 얻을 때가 되었을 때쯤, 블로그 이웃으로 만난 한 사기꾼(??)이 내게서 "로모 LC-A+"를 빌려가서 그 뒤로 연락을 끊어버렸다. 참, 세상에 벼룩에 간을 빼먹지, 수백만 원 하는 자기 카메라의 몇십 분의 일도 하지 않는 내 카메라를 갖고 도망가버린 놈을 원망하다가 갖게 된 생각이 "너와 나의 인연은 여기까지 인가 보다."라는 것이었다. 더 이상, 그 친구의 작은 파인더를 통해서 세상을 바라볼 수 없게 되었지만, 분명 또 다른 인연을 통해서 세상을 내다보게 될 것이다, 라는 설렘도 싣고 말이다.




그 뒤로도, 나는 중고 카메라를 고수했다. 필름 가격이 한 참 저렴할 때는 필름 카메라를 사용했기에, 어쩔 수 없이 중고 카메라를 구입할 수밖에 없었고, 디지털카메라도 다 중고로 구입을 했다. 보통 출시된 지 몇 년이 지났거나, 아니면 어느 집의 장롱에서 잠자고 있었을 그런 아이들을 맞이해서 사진을 찍었다. 카메라의 판매자에게는 어떤 가치를 가진 녀석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손에 들어오면 모두 다 한 녀석, 한 녀석이 소중했다.


하지만, "인연"이라는 것은 분명 존재하는 듯했다. 중고로 입양을 해서 그런 것인지 혹은 작은 카메라를 선호하는 내가 녀석들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 이상으로 사용을 했기 때문인지 종종 유명을 달리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나의 경제사정이 너무 좋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자본을 마련해야 할 때면, 한 녀석씩 떠나보내야 할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내 다음으로 카메라를 사용하실 분들에게 필름을 하나씩 넣어드리거나, 아니면 입양 보내기 전 최대한 깨끗하게 청소를 해서 입양을 보내드리고는 했다. 그것이 나와 그 친구와의 "인연"의 마지막인 이별이자, 그 친구가 더 사랑받기를 원하는 나의 작은 정성이기도 했다.


재작년, 나는 출시된 지 몇 년이 지난 콤팩트 카메라를 입양했다. 그다음 세대가 나오고, 또 그다음 세대가 나온 그래서 "구형"으로 분류가 되는 그 녀석을 나는 평화로운 그곳에서 조우했다. 사실, 다음 세대의 성능과는 큰 차이가 나지 않는 그 친구를 나는 조금 저렴한 가격에 입양을 할 수 있었다. 다른 카메라를 사기 위해서 저렴한 가격에 보낸다는 판매자의 말이 어찌나 고맙던지, 나는 구매자에게 바로 입금을 하고 이틀 뒤 녀석과 첫 만남을 가졌다.


처음의 어색함도 잠시 녀석은 내 손 안에서 오랫동안 머무르던 친구처럼 내 손의 일부같이 감겨들었고, 나는 녀석으로 많은 거리 사진을 찍었다. 그 녀석과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던 도시도 다녀왔고, 가보고자 했지만,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서울 거리도 걸었다. 녀석과 나는 서로 다른 심장과 뇌를 품은 친구지만 교류를 했고, 세상을 나눠보았다. 가방 안에도 녀석이 항상 함께 했고, 집 앞을 나갈 때도 내 주머니 안에서 잠을 자다 가다도 깨어나 세상을 저장했다. 나만의 일기를 다시 쓸 수 있도록 해주는 녀석은 나의 또 다른 작은 창이었다.




지난 3월부터 시작된 감기는 낫는 듯 낫는 듯 낫지 않았다. 반복되는 스트레스와 내 안에서 무엇인가 다 사라져 버린 것 같은 허기가 몸을 휘감았다. 목에서 피가 나는 인후염으로 시작된 증상은 몸살로 넘어갔다가, 기침으로 넘어섰고, 나중에는 임파선 염증으로 자신만의 길을 찾아 꿋꿋이 나갔다. 그럼에도 그 어떤 순간에도 녀석은 내 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아프면 아픈 대로 만나는 순간순간의 시간의 모습들을 채워나갔다.


그러던 지난주, 녀석이 이상한 징후를 보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렌즈를 잡고 있는 부분이 앞뒤로 움직이다가

전원이 꺼져버리는 현상이 계속 나타났다. 그래도 다시 전원을 온오프 하면 괜찮아져서, 나는 녀석이 꽤 병을 부린다고 생각했다. 아니, 사실은 녀석도 아파서 큰 병원에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병원비가 얼마가 나올 것인가에 대해서 염려가 되기도 했다.그럼에도 "꽤병"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던 이유는 '조금만 더 잘 버텨주면 좋겠는데, 지금 손에 너무나 잘 익숙해져서 좋은데, 아프면 솔직히 요즘 같이 내 경제적 사정이 좋지 않을 때, 너를 잘 치료해주지도 못할 텐데...'라는 불안감에서였다.


"이별"은 늘 불현듯 찾아오는 듯 하다. 그것은 이별이라는 사건이 갖고 있는 특성 때문일지도 모른다.하지만, 이별은 아주 작은 곳에서부터 아주 먼 시점에서부터 이미 어느 정도 만들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이별은 그래서 "인"연과 다르다. "인연"은 갑자기 나타날 수도 있지만, "이별"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가능하기에.


병원을 가기 위해 그날도 집을 나선 날이었다. 물을 마시지 않으면 늘 목이 갈라지듯이 아픈 통증이 있어서, 그날도 물을 사러 마트에 들렀다. 그것이 녀석과 나의 이별을 더 빨리 앞당긴 하나의 방아쇠가 되고 말았다.

만약, 내가 마트에 들르지 않았다면 이런 불상사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여러 가지 선택이 있었지만, 나는 목이 아팠고, 그 통증을 줄이기 위해서 마트에 들렀다. 그것은 내가 마킹할 수 있는 최선의 답안이었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내가 마트를 나오면서 왜 녀석을 꺼냈을까, 에 대한 것도 그 녀석과 나의 인연이 이제는 그 끝을 향해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마트에서 나오며 녀석을 내 손목에 두르고 물병의 뚜껑을 열었다고 생각하던 그 순간, 녀석은 나의 손목에 감겨있지 않았고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내 눈 앞에서 부서져 내렸다. 적어도 몇 년은 더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친구인데, 그렇게 녀석과 나와의 인연은 끊어져버리고 "이별"이 그 자리를 대신 채웠다.




한 동안, 물끄러미 녀석을 쳐다보았다. 부서진 조각들을 다 하나하나 주어서 급한 대로 가방의 한쪽 파우치에 넣었다. 왠지 녀석의 한 조각이라도 남겨두고 오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걸려도 한 조각, 한 조각 다 주어서 가방에 넣고 병원에 다녀온 후, 내 방의 책상 위에 녀석의 잔해를 늘어놓았다. 녀석과의 인연은 비교적 길지 않았다. 사람과의 사랑도 그랬었을까?? 오랜 시간 인연을 이어가고 싶었던 사람들과 오히려 더 오랜 인연을 이어가지 못했던 적이 있었을까?? 한 동안, 의자에 앉아서 녀석의 잔해들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별"은 끝내 찾아오는 것이다, "이별"을 어떻게든 피하고 싶지만, 그렇다고 내 힘으로 되지 않는 것이 상대방에 대한 "인연"과 "이별"이다. 이제 우리는 "이별"을 맞이했다. 이런 갑작스러운 사고를 통해서 헤어짐을 맞이하더라도 먹먹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는 늘 누군가의 손을 거친 물건들을 선호했다. 하지만, 그런 것도 아니라는 것을 시간이 갈수록 나이를 먹어갈수록 처절히 느낀다.다시 말해서, 내게 오는 순간 그들은 내게 "새로운 존재","새로운 인연"이 되는 것이기에.


누군가 사용했었기 때문에 '내게는 조금 더 편안한 관계가 되겠지..'라는 생각은 어쩌면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내게 온 사람이기에 그 사람과의 만남이 덜 소중한 것이 아니듯이,

세상의 많은 것들과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교류하고 사랑을 이어나가야 하나 보다. 이제는 내 곁을 떠난 친구에게 문득 한 마디를 해줬다. "고맙다, 그리고 내 곁에 머물러줘서 정말 행복했다."...

나의 손을 처음부터 거치지 않은 존재, 그리고 내가 첫 "인연"이 아닌 존재에 대해서는 가벼이 생각해도 된다는 착각을 하고 살았다. 하지만, 그런 모든 "인연"과 "만남"들도 그리 가볍지 않다는 것을 느끼는 이유는 나이때문일까?? 세상에 그 어떤 존재와의 "이별"도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으며, 그 "이별"로 인해서 배울 것은 또 한 수도 없이 많다. 누군가의 손을 거치면, 혹은 누군가와 "인연"을 가졌던 사이라면, 조금 더 편안할 것이라는 우리의 착각은 철저한 오산인 것 같다. 적어도 나에게는 누군가와 먼저 "인연"을 맺었던 간에, 어떤 "관계"를 이어갔던 간에, 나와 어떤 "이별"을 맞이 하던 간에 의미없는 순간은 없다는 것을 체득한다.


세상의 그 어떤 존재에도 애정이 가지 않는 존재는 내 곁에 있을 수 없다.


2021년 4월 30일


사진을 찍은 지 대략 10여 년이 되어갑니다. 어떤 사진들은 정말 좋아해서 다른 분들에게 한 번도 보여드린 적이 없었죠. 그런데, 어느 날 내가 사진을 찍기 시작한 이유가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생각이 변화하는 것을 보여드리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이 곳 브런치에 제가 찍었던 사진과 그때 들었던 생각들을 정리해서 저만의 작은 사진집을 만들려고 합니다. 부디, 부족하고 모자란 사진들과 글이라도 할지라도 함께 해주시고 또 공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날씨 변화가 많습니다. 저는 2개월 동안 감기에 시달렸지만, 제 글을 읽어주시는 많은 분들, 꼭 무탈하시고 건강하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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