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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대윤 Apr 17. 2021

이케아보다는 동서가구

오래될수록 더 소중해지는 것들에 대하여

나는 후회한다. 너에게 호마이커 책상을 사준 것을 지금 후회하고 있다. 그냥 나무 책상을 사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랬다. 어렸을 적 내가 쓰던 책상은 참나무로 만든 거친 것이었다. 심심할 때, 어려운 숙제가 풀리지 않을 때, 그리고 바깥에서 비가 내리고 있을 때, 나는 그 참나무 책상을 길들이기 위해서 마른 걸레질을 했다.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문지른다. 그렇게 해서 길들여진 반들반들해진 그 책상의 광택 위에는 상기된 내 얼굴이 아른거린다. 

- 이어령, 삶의 광택 중에서


이어령 선생의 "삶의 광택"이라는 글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글을 찾아서 다시 읽어보았다. 이 글을 처음 읽었을 때가 언제였던가. 고교 시절이었나, 아니면 다시 시험을 준비하면서였을까. 한 번을 읽을 때, 눈에 가득 들어왔고, 두 번을 읽을 때 살짝 미소가 지어졌으며, 세 번을 읽었을 때 몇몇 구절은 영원히 잊히지 않도록 내 가슴속에 깊이 남았다.




나에게는 책상이 하나 있다. 내가 중학교 1학년 무렵에 산 책상이니까 만으로도 30년이 다 된 책상이다. 이 책상 위에서 나는 중학교 시절을 보냈고 고등학교 시절을 지냈으며, 다시 공부를 시작해서 수의대에 입학을 했고 지금도 이 책상 위에서 전공 공부를 한다.


아직도 기억이 뚜렷하게 남은, 그래서 지금도 어디인지 바로 찾아갈 수 있는 가구 매장에서 봄날 나의 책상과 처음 만났다. 이런저런 책상들 사이에서 상판이 두껍고, 책상의 다리는 앞에서부터 끝까지 굵은 나무 판 하나로 고정이 되어있는 책상이었다. 더 넓은 책상을 사고 싶기도 했지만, 그 당시 내 방의 크기를 고려했을 때, 가장 적합한 크기, 아니 더 넓으면 오히려 불편할 수도 있는 딱 맞는 크기의 친구였다. 


이 친구가 처음 내 방으로 들어오던 날은 대전으로 처음 이사를 오던 날이었다. 새 아파트의 내 방에 새 책상이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책상의 위에는 책상과 같은 색과 같은 결을 가진, 같은 나무로 만들어진 튼튼한 책꽂이가 자리를 잡았다. 나는 이 책상이 좋았지만, 공부에서 거리가 멀어질수록 책상과 나의 만남도 소원해졌다. 책상은 혼자 덩그러니 방 안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좀처럼 자신을 찾아주지 않는 주인을 기다리고는 했을 것이다. 그렇게 나와 책상의 거리는 조금씩 멀어졌었다.




나는 친구의 얼굴(상판)에 눈물을 많이도 떨어뜨렸다. 어느 날, 사랑하던 사람과 이별을 한 뒤, 오랜 친구들이 나를 비웃고 떠나가던 날, 친지들이 나를 무시하던 날, 그 어느 힘든 순간 내가 자신의 얼굴에 굵은 눈물을 떨어뜨려도 아무 말하지 않고 묵묵히 나를 감싸주었다. 그리고 내가 시험을 다시 준비하고, 힘들 때마다 혼자서 엎드려 울 때도 친구는 말없이 나를 품은 채로 가만히 감싸주었다. 나는 혼자인 듯 느꼈었지만 다시금 돌아보니 언제나 나의 방 안에서는 그와 둘이었고, 우리는 같은 시간을 30여 년이란 시간을 함께 보냈다.


책상 위에 있던 책꽂이의 한쪽 켠에는 내 마음이 흐트러질 때마다 적어놓은 격언들을 붙여 놓기도 했다. 메모지에 적어놓은 격언들이 다닥다닥 늘어갈수록 책꽂이의 다리는 더 힘을 잃어갔다. 세월은 책꽂이 다리의 힘을 조금씩 빼앗아 갔고, 어느 날은 나의 메모지들과 나의 참고서, 노트들을 위에 얹은 채로 버티고 있던 책꽂이가 힘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그 날, 나는 친구와 생각보다 오랜 세월을 함께 했다는 생각에 문득 내 친구(책상)에 대한 감정이 쳐연해지기도 했다.


때로, 나의 친구는 얼굴에 무엇인가를 붙여야만 할 때도 있었다. 어여쁜 여자 연예인이나 여자 모델들의 사진이면 차라리 좋았을까?? 나는 친구의 얼굴에 내가 가고 싶은 대학들의 이미지들을 프린트, 코팅까지 해서 책상의 곳곳에 빽빽하게 붙여놓았다. 그리고 힘들 때면 그 사진들을 보면서 내가 그곳에 당당하게 서있을 그 순간을 수없이 상상하며 매일을 더 치열하게 살았다. 언제였던가, 내게 격려 대신 비난을 하는 사람들을 적어서 친구의 얼굴 위에 부쳤다. "나를 무시하던 당신들에게 끝내는 내가 옳았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라는 분에 가득한 문구와 함께, 코팅된 대학 사진들 사이 어느 구석에 또 그렇게 메모지 하나가 자리를 잡았다. 친구는 자신의 얼굴에 수없이 많은 것들이 붙여져서 답답하고 불편함에도 내게 그 어떤 불만을 표현한 적이 없었다. 그냥 묵묵히 내가 자신의 얼굴을 마주 보며 벌겋게 열이 오른 얼굴로 수없이 많은 책들과 오랜 시간을 싸우는 것을 바라보며 응원해주었다. 




책장이 사라지고도 다시 얼마인지도 모를 세월이 흘렀다. 책장이 있던 자리에는 모니터가 새로 자리를 잡았다. 모니터가 자리를 잡고 키보드가 한쪽을 차지하면서 내 친구는 급격히 좁아졌다. 내 친구는 컴퓨터라는 새로운 발명품이 그의 얼굴에 놓일 것이라는 계산과 함께 설계된 친구가 아니었기에, 그의 얼굴은 아주 조그만큼만 드러나게 되었지만 그래도 어쩔 수가 없었다. 몇 번이나 시험에 떨어진 능력 없는 장수생 주제에 새 책상은 과당 치도 않는 요구라고 생각했기에, 좁으면 좁은대로 책을 펼치고, 필기를 하고, 쓰면서 암기를 한 채 또 그렇게 세월을 보냈다.


어느 날, 내 친구의 아랫 서랍을 여는 손잡이가 힘없이 부서져 내렸다. 꽤나 큰 부피를 자랑하던 아랫 서랍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간간히 특별한 날에만 써오던 일기장과 다이어리 그리고 국민학교 시절, 나의 리즈 시절을 기억하고 싶을 때면 꺼내보던 물건들이 가득한 보물상자 같은 장소였다. 그 보물상자의 뚜껑을 여닫던 부서진 손잡이는 하염없이 작고 힘없는 존재에 불과했다. 어떻게든 그 손잡이를 다시 붙여보려 노력을 했지만, 세월의 힘에 의해 조각조각 삭아버린 손잡이를 다시 맞추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게 친구의 또 한 모퉁이가 세월 속으로 사라졌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 때, 나는 친구의 얼굴 위에 있던 사진도 다 떨어져 나간 것을 볼 수 있었다. 누군가를 향한 원망의 글도 사라져 있었고, 그 대신 내 친구의 얼굴에는 그때까지 자리를 잡고 있던 "언어, 수학, 영어"등의 책 대신 단어들도 생소한 의학용어가 가득 채워져 있는 책들이 올려져 있었다. 친구는 수없이 오랜 시간, 나와 함께 고생을 하며 내가 대학에 다시 합격을 해서 위아래로 뛰는 모습도 지켜보았고, 나름의 노력을 통해 장학금을 받으며 뿌듯해하는 나의 모습도 지켜보았다.


많은 과제를 하고, 많은 양의 시험 범위를 암기하는 내 모습을 계속해서 보면서 우리는 또 그렇게 나이가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전, 남아있는 웃서랍의 손잡이마저 부서져서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이 조각을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고민을 하다가 나는 억지로 부서진 손잡이의 끝을 가져다가 본드로 발라서 얽기섥기 임시방편으로 붙여놓았다. 그리고 아직도 튼튼하게 버티고 있는 내 책상을 바라보면서 아직은 헤어질 때가 아니라고 속삭였다.




그러고 보니 친구와 함께 왔던 의자는 이미 그 오래전에 떠나버려서 언제인지도 기억이 나지를 않고, 그 의자를 대신해서 나를 받쳐주었던 다른 의자들이 몇 번을 그 자리를 대신했는지도 아득했다. 아마도 대여섯 번 이상 의자를 바꾸면서도, 책상을 바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살아온 수없이 많은 시간 동안, 동고동락했던 친구였기에 쉽사리 친구와 헤어질 생각은 하지 못했나 보다.


문득, 이어령 선생의 "삶의 광택"이라는 글이 며칠 전 떠올랐다. 그리고 그 글을 소리 내어 다시 읽으면서, 선생이 자신의 책상을 마른걸레로 문지를 때의 마음은 어땠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그 날, 나 역시 내 책상을 정리하고 치우면서 구석구석 쌓인 먼지도 닦아주었다. 수없이 많은 것들을 붙였다 뗀 자국도 그대로, 혹은 언제 스며들었는지도 모르는 잉크의 흔적도 여러 곳, 지워지지 않는 흔적들까지도 모두 다 정성을 들여서 닦았다.


그러고 보니 요 근래는 내가 처음 친구를 만날 때와는 다르게 전반적으로 가구들을 구입하는 것도 간편해졌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자신이 좋아하는 모습의 가구를 고르고 주문을 하면, 택배를 통해서 배달이 되고, 그것을 혼자서도 조립을 해서 자신만의 가구로 완성할 수 있으니까. 스웨덴을 대표하는 두 가지 브랜드, 볼보와 이케아, 중 하나인 이케아의 가구들을 보면 참 간단하면서도 실용성 있는 가구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가늘고 가벼운 재질로 구성된 것 같지만 은근 강단 있어 보인다. 색상이나 모양마저 예뻐서 집안의 어느 장소에 놓아도 잘 어울릴 것 같으며, 집안의 분위기마저 산뜻하게 변화시킬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케아를 좋아하고, 이케아의 가구를 사러 이케아 전시장이 있는 곳을 자주 찾는 것 같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책상을 바꿔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현재 내 책상은 좁은 책상 면적을 플라스틱 책꽂이와 문구가 놓여있는 바구니 하나 그리고 작은 스탠드와 정확하게 그 대각선 반대편에는 전공 서적과 여러 가지 책들이 함께 쌓여있는 더미들, 그리고 그 복잡한 환경 속에서 내 맞은편에서 중앙을 자리 잡고 있는 모니터와 키보드가 있다.


이 것들을 보지 않고 머릿속으로만 그리고 있다면 아마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상당히 혼란스러울 것이다. 아니 나도 혼란스럽다. 어찌 보면 카오스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불규칙적이고 무모하며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기에는 상당히 비효율적인 동선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자꾸 "이어령 선생"의 "삶의 광택"을 떠올린다.

내 책상은 거친 참나무 책상은 아니다. 오히려 책상 면은 반들반들하지만, "이어령 선생"의 글에 대비하자면 참나무 책상이나 다름없다. 이케아의 예쁜 책상이나 최근에 만들어지는 가구들은 "이어령 선생"의 글 속 "포마이커 책상"에 가까울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참나무 책상"을 버릴 수 없다. 


이 책상 위에는 나와 함께한 세월이 있다. 문제가 풀리지 않았을 때, 고민하던 나의 모습도 그려져 있고, 입시에 실패하고 나서 눈물을 흘리던 나의 눈물도 스며들어 있다. 그리고 참나무 책상은 아니라 할지라도 30년이라는 세월 동안 책상 위를 청소하고 닦아대던 나의 모습도 그대로 새겨져 있다. 중학교 1학년의 까까머리 청소년이 처음 새 책상에 앉아 이사 온 아파트의 창 밖을 바라보며 미소 짓던 모습은 아직도 내 가슴속에 그대로 남아있다.


많은 것이 변했고, 나는 더 많이 변했다. 잘 사는 방법 중에 한 가지는 이별을 해야 할 물건들과는 빨리 이별을 해야 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나는 이 책상과 이별을 해야만 했던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나의 친구의 가치는 너무나도 크다. 나라는 사람은 변해가는 시대에 잘 부응하지 못한다. 그래서일까, 나와 함께 세월을 가져가는 친구를 보면 그 가치는 더 올라간다. 새로운 것은 또 다른 시대를 만든다. 그리고 또 다른 시대는 또 새로운 것을 만들며 세상은 발전을 할 것이다. 하지만, "동서가구"라는 이름을 달고 내게 왔던, 어쩌면 그나마도 "동서가구"가 아니었을 내 책상은 그 발전과는 무관할 수도 있겠지만, 변치 않는 무게 하나쯤은 세상에 존재해도 괜찮지 않을런지.


책상의 얼굴 곳곳이 너무나도 깊게 파였다. 때로는 급하게 원서를 쓰기 위해(한 때는 직접 손으로 원서를 썼었기에) 증명사진을 원서의 사진 첨부란에 맞게 자르기 위해 칼로 자르다가 생기기도 한 자국들이 고스란하다. 자, 이제 나의 친구와 얼마를 더 같이 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한다. 10년, 20년?? 어쩌면 그 이상 더 함께 할 수도 있을까. 내가 언제까지 (아니 평생 공부를 하겠지만) 그 끝까지 내 곁에서 공부하는 모습을 바라봐주었으면 한다. "가치"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한결같은 무거움까지 함께 품고 말이다.


2021-04-17


흔히 말하는 "번아웃"에 빠진 듯 힘이 없습니다. 다음 주부터 중간고사가 있는데 계획했던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책상 위의 얹혀진 모니터에만 눈을 고정한 채로 멍하니 있습니다. 몇 년간을 또 죽을 힘을 닿해서 살아왔으니까, 쉬어도 될 것은 분명함에도 제 사정이 허락을 하지 않으니 제 스스로도 숨이 막힙니다. 문득, 시험 준비하던 자료들을 다 덮고 글을 하나 써서 올려봅니다. 아주 오랫동안 함께 했던 제 책상에게 감사의 마음도 전할 겸 말이죠. 어쩌면 내일 다시 일어났을 때는 책상 덕에 열심히 시험 공부를 하고 보고서 작성을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4월임에도 날씨의 변화가 많습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행복하신 봄 날 이어가시길 바라겠습니다. 행복한 주말, 휴일 되시길 바랍니다.


-고대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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